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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동강의 비경인 나리소. 수중 생태계는 죽었다.
ⓒ 강기희
동강, 한때 동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렜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동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동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마을이 상상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찾았던 동강의 물은 첨벙 뛰어들어 벌컥벌컥 마신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동강은 이제 '국민의 강' 아니라 '죽음의 강'

그 시절 동강의 물빛은 맑고도 청명했습니다. 유리알을 헤쳐 놓은 듯 반짝이던 곳이 동강의 물이었습니다. 수심이 조금이라도 깊은 곳은 어김없이 옥빛을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동강 주변의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동강을 찾은 사람들은 펼쳐진 풍경을 보며 탄성을 자아내기 바빴습니다. 사람과 자연은 어느 하나 어긋남 없이 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동강이 중국의 계림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호사가들이 꾸며낸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전국민도 아는 사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적어도 동강에 댐이 들어선다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동강은 숨겨진 보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동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0년 동강댐 건설 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동강변 주민들은 생존을 건 투쟁을 했고, 전국민은 동강에 댐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성지순례 하듯 동강을 방문했습니다.

▲ 동강변 마을인 귤암리에서 본 동강. 강바닥은 확인 불가능.
ⓒ 강기희
그때부터 동강은 단순히 지역적인 문제가 아닌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동강의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한 국민들은 '동강은 흘러야 한다'라는 말에 공감했고, 동강댐 반대 운동에 기꺼이 동참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국민들은 '국민의 정부'로부터 동강댐 건설 백지화 선언을 받아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백성의 민의가 참여되는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동강댐 반대에 동참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동강이 두 동강 날 뻔 했던 것을 살려낸 것은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전국민의 힘으로 살려냈기에 동강은 '국민의 강'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동강은 그렇게 살아났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호사비오리가 아름다운 물질을 하던 동강은 생태계의 보고였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국민의 강'인 동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생태계가 죽어가면서 동강은 무간지옥이 되고 있습니다. 원앙도 떠나고 호사비오리도 떠났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동강을 '국민의 강'이 아니라 '죽음의 강'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동강변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인간이라고 강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물이 죽으면 인간도 살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악취 풍기는 동강은 거대한 하수구

지난 3일(금) 동강에 나갔습니다. 강원도 정선을 관통하는 동강은 거대한 하수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면 위로는 허연 거품이 둥둥 떠 있고 오염 덩어리들이 끝도 없이 떠내려 왔습니다. 이제 동강은 '사람과 함께 하는 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수구에서 흘러내린 시궁창 물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동강을 '국민의 강'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동강 입구에선 입장료를 받습니다. 동강댐 백지화 이후 강원도에서 동강을 '자연휴식지'로 만든 까닭입니다. 한 술 더 떠 환경부에서는 동강을 '생태보전지구'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동강은 전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보전되어야 할 생태계도 보호되지 않고 있습니다.

동강을 자연휴식지로 또는 생태보전지구로 지정하고 난 후부터 동강은 살아나기는커녕 오히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괴한 일을 만든 것은 정부입니다. 그 일은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하니 참여정부라고 해서 달리 할 말도 없습니다.

▲ 동강변 마을 귤암리 다리에서 내려다 본 동강. 물빛이 검게 죽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는 기본.
ⓒ 강기희
동강을 이렇듯 잔인하게 죽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도암댐입니다. 도암댐은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에 있다 하여 수하댐이라고도 합니다. 도암댐은 전두환 정권 때 건설되었으며, 하류 주민들은 댐이 만들어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1985년이었고, 무지막지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댐을 만들면서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도암댐은 감사원으로부터 환경오염에 대한 지적도 많이 받았습니다. 도암댐은 전기를 생산하는 댐으로 만들어졌지만 발전 10년 만인 지난 2001년엔 오염된 물을 방류한다는 죄를 물어 발전마저 중단된 상태입니다. 용도폐기된 채 흉물로 남은 도암댐이 '국민의 강'인 동강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동강변 마을은 철새마저 날아들지 않습니다. 수달이 떠난 지도 오래입니다. 휴가철이지만 동강변의 민박집은 텅 비었으며, 어쩌다 찾아든 이들도 강변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강이 악취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동강변 마을인 가수리에 가면 마을 입구에 '물이 아름다운 마을 가수리'라는 입석이 서 있습니다. 가수리의 지명은 '아름다울 가(佳), 물 수(水)'가 조합되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조상들께서 지어준 지명을 우리들은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후손들에게 물려 줄 강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고개를 들 수도 없는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에 담갔던 손, 비누로 씻어도 악취가 안 가셔

▲ 이 물은 하수구 물이 아닙니다. 동강 물입니다. 이 물이 동강 물이라고 하면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 강기희
누군가 농담조로 말합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동강 물을 보며 '가수리'가 아니가 '폐수리'라고요. 요즘의 동강을 보면 그 말이 딱 맞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즘이 아니라 10여년 전부터 진행되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가수리는 천년고찰인 정암사에서 흘러온 지장천이 동강과 만나는 지점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폐광 침출수로 인해 지장천이 동강보다 더 오염되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기실 따지고 보면 지장천이 맑아졌다기보다 동강 물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이 아름다운 마을인 가수리에서 동강의 물을 작은 페트병에 담았습니다. 페트병에 담은 물은 대통령께 진상할 물이기도 합니다. 죽음의 물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가장 깨끗한 물입니다. 동강변 사람들인 정선군민과 영월군민, 평창군민, 한강변 마을인 단양군민과 여주군민, 양평군민, 서울시민 등이 마시는 물이기도 합니다.

동강의 물을 담는데 악취가 심하게 풍겼습니다. 악취는 어린 시절 하수구를 치울 때 나는 냄새와 비슷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는 고약한 물입니다. 페트병에 담긴 동강 물은 탁하기 그지없어 겉보기에 검게 탄 누룽지를 끓인 숭늉처럼 보였습니다. 물을 담기 위해 담갔던 손은 비누로 씻어도 악취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악취가 풍기는 물도 정부기관에서는 1급수라고 우깁니다. 5급수도 되지 않은 물을 어찌 1급수라고 우기는지 그 속내를 백성들은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동강 바닥엔 슬러지(퇴적물)가 쌓여있어 강바닥을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유속이 느린 곳은 쌓인 슬러지가 무릎까지 빠집니다.

죽은 동강 물을 마시는 이들은 가난하고 착한 백성들

▲ 동강변 마을인 가수리. 지장천과 동강이 만나는 모습이다. 검붉은 빛이 동강.
ⓒ 강기희
동강의 오염 덩어리가 결국 한강으로 흘러가고, 그 물이 서울 시민의 수도꼭지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동강의 오염 문제에 대해 분노해야 할 이는 동강변 사람들이 아니라 서울 시민들이어야 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동강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오염된 물 흘러 흘러 서울로 가지

서울로 간 동강은 어디로 가나
오염된 물 흘러 흘러 집으로 가지

집으로 간 동강은 어디로 가나
찌개되어 밥되어 우리가 먹지 - 노래 '동강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전부


동강 물을 먹는 이들은 정선군민뿐이 아닙니다. 한강변에 사는 이 나라의 가난하고 착한 백성들이 마시는 물이 다 동강의 물입니다. 이들의 건강을 정부에서 얼마나 책임지려 하십니까. 건강보험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아유, 말도 말아요. 피부병 걸릴까봐 물에 들어가지도 않아요. 저게 어디 강물인가요. 똥물이지. 도암댐 해체 하지 않고서는 동강 살릴 수 없어요. 대통령이 뭐한데요. 이럴 때 큰 일 하는 게 대통령이지."

동강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제장마을에 사는 주민의 말입니다. 동강변에서 태어나 환갑을 넘겼으니 동강을 보며 산 세월도 환갑이 넘은 셈입니다. 주민은 동강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고 합니다. 저도 주민과 비슷한 마음입니다.

도암댐을 두고 정부 각 부처의 이견이 큽니다. 도암댐 해결을 위해 그 책임을 서로 미루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젠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께서 나서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썩는 동강 살리려면 대통령의 결단 있어야

▲ 동강변 마을인 제장마을을 찾은 휴가객들. 동강을 찾았지만 발을 담그지 못하고 물가에서 논다.
ⓒ 강기희
참여정부가 환경정책에서 큰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고 보면 동강은 참여정부의 마지막 남은 숙제이기도 합니다. 앞선 정부의 잘못이긴 하지만 그 잘못을 과감하게 털어내지 못하면 참여정부는 환경정책에 있어 국민의 정부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하여 대통령께 몇 가지 요구를 담아 진정을 합니다.

1. 대통령께서는 죽어가는 동강과 도암댐을 방문하여 현재의 상황과 실태를 점검하여 주십시오.
2. 대통령께서는 동강 죽이는 도암댐 해체를 위해 적극 나서주십시오.
3. 대통령께서는 도암댐 해체 후 동강살리기에 적극 나서주십시오.
4. 대통령께서는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도암댐 상류의 각종 오염원(난 개발로 인한 오염원, 축산폐수, 고랭지밭 등의 비점 오염원) 해결을 위한 대책을 만들어 주십시오.
5. 대통령께서는 관계부처에게 신음하고 있는 동강의 생태계를 조사하여 생태계 복원에 힘써주도록 해주십시오.


대통령께 위의 진정을 감히 공개적으로 올립니다. 이러한 사항들이 선행되지 않고는 죽어가는 동강을 살릴 수 없습니다. 민족의 젖줄인 동강을 살리지 않고는 동강변 사람들의 미래와 이 나라의 미래 또한 없습니다. 고속도로 하나 만드는 일 보다 동강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깊이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 동강변 사람들의 분노가 매우 큽니다. 정부에 대한 저항의 싹이 곳곳에서 움트고 있습니다. 썩어 들어가는 물을 보며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경제적 손실은 이만저만 한 게 아닙니다. 동강변 주민들의 건강도 염려되는 시점입니다. 동강 이대로 두면 영영 회복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동강에 관해 깊은 성찰과 관심, 그리고 적극적인 대처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지난 8월 3일 가수리에서 채취한 동강 물. 사진 좌) 지장천 물. 지장천도 오염되긴 마찬가지이지만 물빛이 맑다. 사진 우) 동강의 물. 물빛이 검게 죽었다. 이 물을 동강변 사람들과 수도권 사람들이 마신다.
ⓒ 강기희


도암댐, 어떤 댐인가?


1984년 송천계곡에 도암댐 건설 계획 발표.
1985년부터 발전전용 사력댐으로 건설 시작.
1990년 도암댐 건설 완료. 담수량 최대 5천1백만톤.(소양댐 29억톤)
1991년 강릉 남대천으로의 유역변경식으로 발전방류시작.
1995년 동강으로의 폐수방류로 동강 유역주민들에게 76억 배상.
2001년 남대천으로 방류된 물이 농작물과 양식어폐류를 집단 폐사하였다는 강릉시민들의 민원으로 발전방류 중단.
2001년 이후 용도폐기된 채 방치. 2002년, 2003년 태풍 매미와 루사 때 댐 방류로 정선지역 수몰 원인 제공. 홍수조절 실패.
1995년 이후 도암댐으로 인해 동강 오염 진행.
2007년 동강은 도암댐으로 인해 '죽음의 강'이 됨 /강기희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이자 '도암댐 해체를 통한 범국민동강살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동강살리기운동본부, #동강, #도암댐, #도암댐 해체, #환경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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