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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狂不及'(불광불급)- 미쳐야 미친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 아닌가? 다들 미치는 방향과 방법과 목적은 다를지라도 미쳐야 한다는 당위는 같다. <불광불급>을 읽으면서 느낀 생각 하나.

 

과연 조선 지식인들이 미침이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의 미침과 얼마나 공유점이 있을까? 정민은 같은 미침이 별 없다는 이유로 <불광불급>을 쓴 모양이다. 다들 미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지만 인간의 사악한 본능이 그들의 미침을 왜곡시켰다.

 

유옹은 부스럼에 미쳤다. '부스럼' 요즘은 없다. 청결하니까(?) 머리에 덕지덕지 붙은 부스럼을 경험한 우리의 과거 세대가 유옹을 만났다면 무엇이라 말할까?

 

당연히 '정신나간 놈', '더러운 놈', '불결한 놈'이라 비웃지 않을까?

 

나의 옛 삶도 부스럼과 동행한 적이 있기에 똑 같은 반응을 보이리라. 부스럼을 먹은 유옹의 미침이 다른 이들, 김용, 이덕무, 김득신, 박제가에 비해 무엇을 이루었는지 모르지만 정민이 맨 앞에 유옹을 등장시킨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사는 인생살이를 반추해보니 유옹에게 '불결한 놈'이라 차마 말할 수 없다. 왜 더러운 것 엄청 토해내고 있으니까? 구린내가 나서 역겨울 정도다. 시궁창도 이런 시궁창이 없다. 살 껍데기에 붙은 부스럼은 사라졌지만. 마음과 속에 난 부스럼은 서로 먼저 죽겠다는 다툼 외에 다른 뜻이 없다.

 

그 시대 살 껍데기 부스럼은 생명을 앗아 갔는데 오늘은 마음의 부스럼이 생명을 앗아 가고 있다. 그러니 살 껍데기 청결에만 미쳐있으면 무엇할 것인가? 생명의 끈을 스스로 놓고 있으면서 잘 살겠다고 하는 우리네 인생살이. 유옹에게 부끄럽고, 그가 산 인생살이가 부럽다. 내 마음의 부스럼을 깨끗하게 하는 때와 가능성이 있을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간서치가 있었다. '看書痴 - 책만 읽는 멍청이'. 그가 누군가 이덕무이다. 나는 <불광불급>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덕무를 몰랐다. 이런 무식쟁이가 이덕무(책읽기에 미친 바보)를 만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바보, 멍청이'. 오늘은 이런 부류의 인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똑똑이'를 원한다. 돈 버는 똑똑이, 일류대학 들어가는 똑똑이, '사' 자 들어가는 똑똑이를 원한다. 다들 똑똑이를 만들기 원하지만, 자칭 똑똑이라고 말하지만, 구로(劬勞)하여 낳아 보니 '윤똑똑이들'만 될 뿐이다.

 

이 윤똑똑이들은 이덕무에게 물을 것이다. '책을 그렇게 읽고 왜 그는 멍청이가 되었는가?'

 

'책은 마음의 양식이요. 진실에 이르는 길'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가짜 질문이요, 책에 대한 가짜 정의일 뿐이다. 윤똑똑이들의 껍데기가 그렇다는 것이지 속마음은 책은 돈 버는 기계일 뿐이다. 돈이 되지 않으면 책 읽을 이유가 없는 인생살이가 작금의 우리들이다. 그러니 이덕무가 간서치라고 할 때 우리네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덕무는 책 팔아 술 사먹고, 밥 사먹었다. 밥맛과 술맛이 어땠을까? 눈물의 맛이었을까? 아니 가장 맛있었을까? 나도 이런 술 한 잔 했으면 한이 없겠다. 맹자를 팔아먹은 '간서치' 이덕무. 그렇게 살았기에 어머니를 영양실조로, 누이를 폐병으로 보냈을까? 이덕무는 그들을 보내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정민도 말했지만. 이덕무가 밉다. 이 미움을 무엇을 뜻할까? 아들로서의 불효, 가장의 무능력에 대한 미움은 아니리라.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에 매이고, 어머니에게 매이고, 자식에게 매이고, 혈연, 지연, 학연에 매여 사는 우리 인생이 이덕무의 간서치에 미치지 못하니 밉다.

 

이덕무는 자기 갈 길을 갔다. 어머니와 동생을 보냈고, 동상과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했지만 그는 자기 길을 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이덕무가 지은 <송유민보전(宋遺民補傳)>에 두준지(杜濬之)라는 이기 지은 시가 있다.

 

"차라리 백 리 걸음 힘들더라도
 굽은 나무 아래선 쉴 수가 없고
 비록 사흘을 굶을지언정
 기우숙한 쑥을 먹을 수가 없네." (본문 82쪽 인용)

 

이덕무는 두준지에게서 동질감을 느꼈을까?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이익을 위하여 신념과 사상, 정의와 진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오늘 우리의 삶 살이는 이덕무에게 명함을 내밀 자격도 없다. 지식 나부랭이는 제자들에게 지식 팔아먹기 바쁘고, 상아탑에 들어간 이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머릿속에 주어담았다.

 

책을 통한 지식 담기는 없다. 배고픔 없이, 노력 없이 실용적 지식을 얻었다. 그러니 천하를 이해하는 지혜는 없다. 천하를 이해하는 지식과 지혜는 없을지라도 자기와 사회를 이해하는 지식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우리네 인생살이 정말 불쌍하다.

 

그럴지라도, 이 책을 접하였으니 이덕무와 김영, 김득신에게 감복할 것이 아니라 그네들의 삶을 우리네 삶에 한 번 적용시켜 봄이 어떨까? 그들의 환경과 우리네 환경이 다르니, 시대가 변했니 이런 말 하지 말고. 그들을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 따라 가보자.

 

사람 사는 환경은 다를지라도 그네 인간과 우리네 인간의 근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다. 인간이 살아야 할 근본 이유가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정말 진짜 미쳐보자. <불광불급>을 읽은 값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도.

덧붙이는 글 | <미쳐야 미친다-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정민 ㅣ 푸른 역사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푸른역사(2004)


태그:#책동네, #조선시대,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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