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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벼(알 밴 이삭이 고개를 들고 있다)
ⓒ 이민선
농약을 다 주고 나서 시계를 보니 오전 8시가 되어갑니다. 3시간만에 작업을 끝낸 것입니다. 4시 40분, 첫 닭도 울기 전 깜깜한 새벽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쯤에서야 첫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농사일은 대부분 새벽에 시작합니다. 특히 농약 줄 때는 더 서두릅니다. 뙤약볕이 내리쬘 때 농약을 주는 것은 위험합니다. 일사병이나 농약 중독으로 쓰러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봄만 되면 부모님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십니다. '농사를 지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벌써 몇 년째 이렇게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모내기를 합니다. 아무래도 농사일이 힘에 부치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 연세 올해 일흔아홉입니다. 제가 생각해 봐도 농사를 짓기에는 너무 많은 연세입니다.

부모님이 "내년 농사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제가 용돈 넉넉히 드릴 테니 이젠 편히 쉬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다시 들어갑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빠듯한 살림이라 용돈 한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거든요.

제가 부모님을 도와 드릴 수 있는 것은 농사일이 힘에 부칠 때 내려와서 일손 거들어 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부모님의 고민... 지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 벼 이삭(몇 개월 후면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일 것이다. 10월쯤에)
ⓒ 이민선
동이 틀 무렵 약대(농약 분사기)를 잡고 논에 들어갔습니다. 파란 벼 잎사귀 사이로 알을 잔뜩 밴 벼 이삭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습니다. 지난달(7월) 말에 농약을 줄 때는 키 작은 파란 잎사귀들만 있었는데, 한 달만에 키도 제법 자라고 벼 이삭도 생겼습니다. 농약이 분사기에서 발사되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나비 몇 마리가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농약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듯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보니 농약 치는 것이 미안해집니다. 또, 벼 이삭이 이미 나왔는데 독성이 있는 농약을 살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벼 이삭 나왔는데 농약 줘도 되나요?"
"괜찮다. 예전에는 농약 5번이나 줬다. 추수하기 직전에 준 적도 있지!"
"사람 몸에 해롭잖아요?"
"먹고 살기 힘들 때 그런 거 따질 정신이 있었나! 요즘에 와서야 따지지."

1년에 다섯 번 정도 농약을 주지 않으면 각종 해충들 때문에 수확할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좋아진 편입니다. 일 년에 겨우 2번밖에 주지 않거든요. 농약이 좋아지고(독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벼 품종이 개량되었기 때문입니다.

농기계가 발달해서 일도 수월합니다. 예전에는 여름 내내 온 가족이 농약 치는데 동원됐습니다. 아버지는 약대를 들고 농약을 직접 살포하고 어머니와 저는 줄을 잡아당깁니다. 큰형과 작은형은 수동 펌프를 쉬지 않고 좌우로 저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반나절을 뙤약볕 아래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사람 힘으로 펌프를 젖는 일은 없습니다. 기계가 대신 하지요. 제가 약대를 들고 논에 들어가 농약을 살포하고 어머니가 줄을 당깁니다. 아버지는 펌프를 살피며 압력을 확인하고 제가 약을 골고루 잘 살포하는지 감독합니다.

아버지는 제가 농약을 골고루 안 뿌린다며 계속 지청구를 하십니다. 꼼꼼한 아버지 성격을 덜렁대는 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작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직접 약대를 잡고 논에 들어가셨습니다. 덜렁대는 제가 미덥지 않았던 것입니다. 올해는 약대를 말없이 넘겨주셨습니다. 약대를 들고 논바닥을 돌아다닐 만한 기운이 없음을 인정하신 겁니다. 지난달 말없이 약대를 넘겨주실 때 저는 쓰라린 마음을 말없이 삼켜야 했습니다. 이제 정말 힘 빠진 노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세상이 사나워지다 보니 농부들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예전에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들 먹을 거 아니라고 농부들이 도시 사람들 죽든 말든 농약을 마구 뿌려 댄다는 말입니다.

혹시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까봐 한 말씀 드립니다. 농부들이 사나워져서 농약을 마구 뿌리는 것도 아니고 내다 팔 것과 집에서 먹을 것 따로 구분해서 기르지도 않습니다. 취미삼아 주말 농장 하는 분들은 농약 주지 않고 기를 수 있지만 농업을 생계로 하는 분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병충해가 심하게 들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고 그러면 생계가 막막해지거든요. 농부들도 농약 주는 일 싫어합니다. 독한 농약을 뒤집어쓰면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꼼꼼한 아버지 덜렁이 아들

▲ 일을 마친 후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아버지
ⓒ 이민선
▲ 경운기와 아버지(27년된 아버지의 보물 '경운기' 내게도 핸들을 맡기지 않으신다)
ⓒ 이민선
▲ 경운기 뒤에 실린 큰 통이 농약통이다
ⓒ 이민선

토요일(25일) 밤 10시경에 고향집 마당에 도착했습니다. 부모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밥상을 차려 놓은 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손자 손녀가 차 안에서 뛰어나오지 않는 것을 못내 서운해 하셨습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데려오지 못하고 저 혼자 왔거든요. 아버지는 호연이(세 살) 녀석 준다며 과자를 한 상자나 준비하셨습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큰 누님이 아버지 드시라고 사온 과자를 호연이 준다며 아끼셨답니다.

힘없이 돌아누워 있는 아버지 등을 보며 내일 아침 어떻게 일어나서 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이제 귀도 어두워져서 아버지는 소리를 질러야 겨우 무슨 말인지 알아듣습니다. 틀니를 뺀 어머니 얼굴은 쭈글쭈글 할머니입니다. 몇 년 전에는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 이젠 허리 아파서 일 못하실 것 같다. 수술받은 이후 허리 아프다고 자꾸 눕기만 하는구나 성격이 급해서 평생 걷지도 않고 뛰어다니던 사람인데… 요즘은 가끔 정신도 없는 것 같아."

아버지는 몇 년 전 탈장 수술을 받으신 이후 몸이 부쩍 쇠약해지셨습니다. 평생 아프지 않던 허리도 아프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걱정이 되는지 혼자 말처럼 가끔씩 저에게 얘기합니다. 아버지도 걱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 몸이 편치 않은 것을 당신 몸 아픈 것보다 더 걱정하십니다. 이럴 때 보면 금실 좋은 노부부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픕니다. 두 분 모두 혼자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더 이상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 수 없을 뿐더러 그것은 곧 누구에겐가 의지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을 부모님은 잘 알고 계시기에 상대방이 아픈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본인이 아픈 것도 두려워하십니다. 혼자 남아 있을 사람이 걱정되기 때문이지요.

"얘야 빨리 일어나라 한술 뜨고 가자."

아버지 목소리가 꿈속에서 듣는 것처럼 아득합니다. 새벽 4시, 일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아버지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할 준비 끝내놓고 저를 깨운 것입니다. 어머니는 벌써 밥상을 차려 놓고 한술이라도 뜨라고 성화를 부립니다. 엊저녁의 힘없는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졸린 중에도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역시 부모님은 아직도 든든한 우리 가족의 기둥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철없는 막내아들일 뿐입니다. 밥상을 차리고 흔들어 깨워야 겨우 수저를 들 수 있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버지, #농약, #벼, #경운기,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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