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행은 아마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여정인 듯 합니다. 그 여정은, 힘들면 힘들수록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모든 상황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고마운 것인지 알게 되는 깨달음의 길이기도 합니다.

겨우 2박 4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내 주변 삶의 중요함을 깨달았다는 말은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주 미약하나마, 그동안 제가 모르고 지내왔던 소중함을 다시 알게 해준 이번 홍콩여행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출발부터 삐걱?

출발 이틀 전에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40분정도 늦춰졌으니, 공항에 그 정도 늦게 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 그 정도야 뭐, 별 문제 없지요. 하지만 저는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여유부리다가 더 늦게 도착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에, 저 혼자만 알고 오후 2시, 안양에서 청주를 향해 집을 나섰습니다.

8월 1일부터 제가 알고 있는 주위의 많은 회사들이 휴가 중이므로 혹시, 막힐지도 모르는 도로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간 여유를 참 많이 갖고 출발한 셈이지요. 부모님이나 저희나 또, 누님 가족이나 지금 기분이 상당히 들떠있습니다. 앞으로 닥칠 힘든 상황을, 아직 알 까닭이 없는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요.

▲ 청주공항. 국내선만 제주도 가는 사람들로 인해 조금 북적댈 뿐 국제선은 한가합니다.
ⓒ 방상철
오후 5시. 청주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가이드 미팅시간은 6시, 비행기 출발시간은 저녁 8시 40분, 아주 넉넉하게 시간이 남아서 아이들과 저는 공항 이곳저곳을 쑤시며 돌아다녔습니다. 사실, 오늘 이렇게 홍콩을 가기위해 공항에 나와 있지만, 2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홍콩 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요.

원래 이번 주(8월 4일~5일)는, 처가 식구들과 가평에서 조용한 휴가를 보내려 얘기를 해놨었습니다. 누님의 전화가 걸려오던 7월 20일까지도 그 계획은 변함이 없었지요.

"부모님 모시고 홍콩에 갈래?"

뜬금없이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누님의 목소리, 저는 잠시 '이게 뭔 소린가?'하고 멍해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저와 누나가 돈을 보태 외국여행 보내드리자는 말이 아니라, 함께 여행을 가자는 말인데, 누님이 갑자기 로또에 당첨이라도 됐는지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는 사람이 싸게 갈 수 있다고 하더라."

그렇잖아도, 원래 부모님 두 분만 해외여행 보내드리려고 장만해둔 적금의 만기일자가 다가와서, 올 여름에 보내드릴 생각이었는데, 그 돈으로 저희도 함께 갈 수 있다니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누님께 바로 승낙하고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부모님은 난생 처음 나가보는 외국이고, 저희는 신혼여행 때 나가본 이후 10년 만에 가는 해외입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홍콩여행, 아! 꿈은 아니겠지요?

▲ 누님 아들과 제 아이입니다. 둘이 동갑이라 놀다가 싸우고, 또 놀다가 싸우고 정신없습니다. 이놈들 홍콩에 가서 참 고생 많이 했지요.
ⓒ 방상철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오후 8시 40분에 출발 예정인 홍콩항공 358편이 연착..."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여행사 직원들도 상황을 살피느라 뛰기 시작했지요. 저희도 가슴을 졸이며 상황을 살폈습니다. 비행기가 '홍콩에서 아직 출발을 못했다?' '출발은 했는데 예상보다 늦어서 연착됐다?' 등의 말이 나돌았습니다. 홍콩에서 비행기가 와야지 만 저희가 떠날 수 있는데, 출발부터 무척 삐걱되는군요.

만약 오늘 중에 출발을 못하면, 결국 홍콩행은 무산되고 마는 것이므로 저는 가족은 속으로 '제발 몇 시라도 좋으니 오기만 하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 결과인지 다행히도 10시 30분에 비행기에 오르고 밤 11시, 드디어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섰습니다. 아! 한국이여 잠시 동안 안녕!

'화려' 보다 '아담'이 더 잘 어울리는 리펄스베이

8월 4일 토요일, 오전 7시(한국시간 8시)에 잠에서 깼습니다. 1시간을 더 자도 되지만, 한번 눈을 뜨니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호텔 방의 커튼을 열고 창밖에 펼쳐진 홍콩 공항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 호텔 창문에서 바라 본,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의 모습입니다.
ⓒ 방상철
한국시간으로 새벽 2시 30분에 홍콩 첵랍콕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현지 가이드를 만나 호텔로 이동하는데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므로, 다행히 3시쯤에 짐을 풀고 잠을 잘 수가 있었죠. 저희가 묵은 '로열 에어포트 호텔(ROYAL AIRPORT HOTEL)'은 공항 바로 옆에 있는 호텔입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9시 30분에 가이드를 만났습니다(이제부터 홍콩 시간입니다. 한국보다 1시간이 늦습니다). 그리고 호텔을 벗어나 처음으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바로 '훅'하는 열기가 느껴집니다. 홍콩이 덥고 습도가 높다고 하더니, 정말이네요.

▲ 호텔 밖에서 2층 버스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버스라 신기할 따름입니다.
ⓒ 방상철
지금 아침 기온이 약 27℃ 정도랍니다. 하지만 습도가 높아 체감 온도는 훨씬 높습니다. 오늘 낮 기온도 약 33℃까지 오를 거라고 하네요.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바로 관광버스에 올랐습니다.

호텔이 공항에서 가까운 만큼, 저희가 둘러볼 여행지, 아니 관광지나 쇼핑센터 등은 좀 멉니다. 차가 안 막혀야 40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여기저기서 좀 막힙니다. 홍콩은 아직 토요휴무제가 도입되지 않아서 오후에는 더 복잡할 거라고 하네요.

홍콩의 유일한 다리를 건너 구룡반도를 지나고, 다시 해저터널을 통과해 홍콩섬 남부로 이동합니다. 저희가 처음 가볼 곳은 바로 '리펄스베이'입니다.

홍콩을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한다면 공항이 있는 란타우섬과 구룡반도, 그리고 홍콩섬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물론 구룡 외곽지역이나 신계지 및 작은 섬들이 있긴 하지만 일단 제외합니다). 그중에서 여행자들이 주로 다니는 곳은 구룡반도와 홍콩섬입니다. 구룡반도는 중국 대륙 끝에 붙어있는 육지이고, 홍콩섬은 그 건너편에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건너가는 다리가 란타우섬과 구룡반도를 이어주는 홍콩의 유일한 대교(청마대교)입니다. 이 대교 밑으로 수많은 선박들이 왕래합니다. 그리고 또 구룡반도와 홍콩섬은 세 개의 '해저터널'과 '스타페리'라는 대중교통 선박을 이용해 왕래합니다.

▲ 리펠스베이로 가는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바다. 요트가 참 많이 떠 있습니다.
ⓒ 방상철
▲ 저 요트들이 이곳 갑부들의 개인 요트로, 곧 부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 방상철
드디어 리펠스베이에 도착했습니다. 차가 많이 막혀서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곳은 원래 홍콩의 부자들이나 일부 영국인들의 별장지였던 탓에 고급스런 맨션과 서양식 건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건물이 있는데,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상당히 고가의 건물임에도 주인은 저렇게 구멍을 뚫어놓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저 구멍으로 용이 지나다닙니다."

홍콩 사람들은 섬마다 한 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 구멍이 바로 용이 바다와 섬을 드나들 때 사용하는 '문'인 셈이지요. 건물 주인은 자신의 건물이 용이 지나가는 길을 막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만들게 된 것이지요.

만약, 용이 지나가는 길을 막는다면 자신에게 큰 불행이 닥쳐올 것이라 믿었으므로 그렇게 한 것이고, 그 때문에 가격도 올랐다고 합니다. 정말로 용이 지나간다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홍콩사람들은 서로 저 건물에 살기를 원한답니다.

▲ 사진 중앙 건물을 자세히 보시면 오른쪽 중간 부위에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 방상철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드믄, 드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해변에 누워 살을 태우고 있는 피서객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런데 처음 본 이곳의 첫 인상에 사실 좀 실망했습니다. 홍콩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살펴본 리펄스베이를 우리나라 해운대나 경포대 정도의 규모일 것이라고 미리 짐작했던 저에겐 '에게?'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곳은 작고 아담합니다. 마치 부자들의 정원에 딸린 좀 큰 규모의 수영장처럼 느껴졌다면 심한 얘길까요?

▲ 작고 아담한 리펄스베이 해변입니다.
ⓒ 방상철
하지만 또 다른 눈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대로 아지 자기한 맛도 느껴집니다. 해변 뒤로 자리 잡은 높은 건물들과 함께 한눈에 바라보면 오히려 앙증 맛은 해변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느낌을 홍콩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곳을 떠나와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실망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아! 아담하고 예뻤다'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아담한 해변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잊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면 맞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는 노란색의 띠가 둘러져있습니다. 저것은 상어가 나오기 때문에, 안전망을 설치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저기서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 노란 안전띠 보이시죠. 잘못해서 저 선을 넘어가면?
ⓒ 방상철

태그:#홍콩, #리펄스베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행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혹은 여행지의 추억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