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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이른 출발과 부실하기 짝이 없는 차, 결국 우리는 여행을 보이콧했다. 그리고 차에서 짐을 꺼낸 우리는 호텔 로비로 되돌아왔다. 가이드인 이 선생도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해보라면서 씩씩거리다가 한쪽 구석으로 가서 어딘가에 전화를 연신했다. 두 손녀를 대동한 할머니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서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괜찮을 거예요 할머니, 저 사람들이 연락해서 아마 본사에서 다른 차를 보내줄 거예요."

확실치는 않지만 여러 여행 경험상 그러리라고 기대하며 노 부인을 안심시켰다. 어느덧 시간은 오전 6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배도 고프고 아침은 공짜(대부분의 호텔에서 숙박손님에게 조식은 무료로 제공한다)라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 선생이 왔다.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다른 차가 왔으니 가잔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호텔 문밖으로 나가 보니 정말 대형 코치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젊다고 하나 3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가이드가 와서 자기가 우리를 모시겠다고 하며 인사를 꾸벅하였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일행들과 차에 올랐다. 차는 크고 넓고 쾌적해 보였으며 승객은 우리밖에 없었다.

다시 차에 올라탄 일행들

차는 곧바로 출발하여 밴쿠버 시내로 들어섰다. 일요일이라 시가는 조용했고 차들이 많지 않아 막힘이 없었다. 이 선생은 집으로 돌아갔는지 이 차에는 타지 않았고 새 가이드는 별로 유쾌치 않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차는 도심에서 몇 번 섰다.

차가 설 때마다 사람들이 십수 명씩 탔다. 도심 끝을 빠져나올 무렵 차는 완전히 만원이었다. 우리 팀 9명을 위해 여행사에서 큰차를 보내주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들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탄 차는 오늘 당일치기로 빅토리아 관광을 하는 'K' 여행사의 또 다른 상품이었고 우리는 그 상품에 꼽사리를 낀 꼴이었다. 아무려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마음을 눅이고 있는데, 사단은 다른 데서 터졌다. 옵션(선택사항) 비용을 1인당 30불씩 추가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 시간 때문에 그렇잖아도 떨떠름해 있던 최 선생은 즉각 반발했다.

"그것은 '페어'하지 않소. 우리는 오늘 오후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빅토리아 시가지도 제대로 못보고 도로 나와야 할 판인데, 왜 부차드 가든 옵션 비용을 내야 한단 말이요."

전직 스튜어드였다는 새 가이드는 그의 전력에 어울리게 상냥하나 당당한 어조로 바로 대답하였다.

"손님의 관광 시간이 줄어든 것은 손님께서 오전 7시발 훼리를 타서야 되는데, 지금 9시 훼리를 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부차드 가든 관광은 어차피 선택사항이니 비용을 내셔야 관광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7시 훼리를 못 탄 것은 그쪽 회사 내부의 시스템 부재로 관리가 안 되어 일어난 일이지 그것이 우리 잘못이란 말이요? 게다가 돈 낸 빅토리아는 가보지도 못하고 옵션이라고 또 돈을 내야한다니…. 그러면 우리가 빅토리아 못 간 것은 어디서 보상받소?"
"그건 저하고 관련 없는 일입니다. 저는 하루 일정의 부차드 가든->빅토리아 관광의 가이드를 맡았을 뿐이지 원래 선생님들은 제 소관이 아니었습니다."

하다못해 내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같은 회사 아니요? 가이드 간에 네 책임 내 책임을 미룰게 아니라 본사에 연락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정도(正道)지 않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차드 가든에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돈을 먼저 받아야 한단다. 우리는 우리끼리 잠깐 의논을 하여 먼저 돈을 내고 후 여행사에 항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훼리를 타려는데 이 선생이 거기까지 와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쪼르르 달려와서는, 할머니팀은 밴쿠버에서 비행기를 타니 여기 팀들에게 맡겨두고 나머지 6명은 시애틀까지 가야하니 자기가 모시겠다 한다. 인원이 3명 줄었으니 자기 차로도 가능하다는 거였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낡은 차체와 불편한 좌석, 고장 난 창문, 능숙하기는 하나 급히 모는 그의 운전 스타일, 여기까지 찾아온 정성은 고마우나 우리는 사양하기로 하였다.

훼리에 타고나서도 '스튜어드' 가이드와 옵션 비용문제로 몇 차례 협의를 하였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였다. 본사에 전화를 해서 의견을 물어보라고 해도 일요일이라 연락이 안 된다며 막무가내였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우리를 떠맡은 그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이었으나 그의 지나치다 싶은 자기 면책론은 우리를 피곤하고 짜증나게 하였다.

바깥 공기는 화창하고 파도는 잠잠하며 미풍은 뱃전을 간질이며 지나가고 갈매기들은 배 뒤를 따르는데, 우리는 조지아 해협을 거슬러 올라 밴쿠버 섬으로 가는 내내 선실에 둘러앉아 그와 실랑이를 했으나 만족한 결론에 이르지를 못하였다.

배에 탄 지 1시간이 넘어 내릴 때가 가까워질 때쯤이었다. 기숙학교를 졸업한 따님과 여행을 하고 있는 아주머님께서 내 자리로 오시더니 저기 바깥에서 '신' 가이드와 '구' 가이드가 대판 싸우고 있더라고 귀띔한다. 어찌된 셈인지 젊은 가이드가 늙은 가이드에게 삿대질을 해대는데도, 이 선생이 꼼짝 없이 당하고만 있더란 거였다.

알만했다. '스튜어드'가 화풀이를 '노인'에게 하는 것이리라. 마음이 신산했다. 이 선생인들 무슨 죄가 있으랴.

나중에 들은 그의 말이 의하면 새벽 4시에 연락을 받고 우리가 묵는 호텔을 찾아 나섰으나 호텔 이름을 잘못 전달 받아 엉뚱한 곳에 가서 한 시간을 까먹었고, 급기야 호텔은 찾았으나 방 호수를 몰라(호텔에서는 방 번호를 모르면 사람 이름만으로는 전화를 연결해 주지 않는다) 우왕좌왕하다가 근근이 연결되어 사람이 다 모인 것이 오전 6시 30분경이었으니, 설령 차가 크고 좋아 제대로 출발했다 하더라도 예정했던 7시 발 훼리는 어차피 승선이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 모든 것이 어찌 자기의 잘못이냐는 거였다.

아주머님이 제 선생이 이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권하신다. 그러마고 하자 금방 어디선가 이 선생을 모셔왔다. 그의 이야기는 여일하였다. 나는 협상안을 내놓았다. 첫째 최 선생팀과 할머니팀은 오후 1시 배편으로 도로 나가야 하는데 빅토리아는 구경도 못하고 부차드 가든 40분 구경하려고 일인당 30불씩 더 내야 함은 부당하니 회사에 연락해서 사정을 얘기하고 그 돈을 반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되물었다.

"그러면 제 선생팀과 아주머니팀은 어쩌시려고요?"
"우리? 우리는 금일 중으로 시애틀까지 가기만 하면 되니까, 구경 다하고 늦게 나가도 아무 문제없어요."
"차가 없는데."
"차가 없다니? 우리는 분명 밴쿠버 섬의 빅토리아 및 부차드 가든을 관광하고 시애틀로 실어다 준다는 캐나다 최대의 한인 여행사인 'K'사와 계약을 하고 돈을 지불하고 여기 왔는데, 차가 없다니,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요?"
"밴쿠버에서 시애틀까지 운송하는 일은 주로 제가 담당하는데 오늘은 제 차 외에 다른 차가 없구만요."
"본사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소. 내가 본사와 한번 따져 볼 테니."

그는 머뭇거리더니 본사와 연락이 안 될거라고 발뺌을 하였다. 눈치를 보니 본사와 연락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그였다. 퇴직을 하였다가 얼마 전에 재취업을 하였다더니 그 나마 그 자리를 잃을까 안절부절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마음이 더욱 신산해졌다.

"그럼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거요?"
"만일 제 선생팀과 아주머니팀이 낮1시 배로 최 선생과 같이 나가시지 않는다면 별 수 없이 제가 최 선생을 시애틀에 모셔 놓고 와서 밤중에라도 네분을 다시 시애틀까지 모셔 드려야지요."

기가 찼다. 낮에도 안심이 안 되는 그 운전에 그 차로 야심한 밤에 가야 가다니, 게다가 일흔이 넘은 연로한 양반을 그렇게 혹사함이 옳은 것인지, 다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이렇게 한 번 해 봅시다. 우리와 아주머니팀이 1시에 나갈 테니 두 가지를 그쪽에서 해 주시구려. 하나는 부차드 가든 비용을 환불해주고 또 하나는 시애틀에 가서 남는 시간만큼 시내 관광을 시켜주시구려."

그는 환한 얼굴로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제 선생 고마워요. 양보를 해 주어서."

겨우 타협은 했지만...

▲ 부차드 가든.
ⓒ 제정길
▲ 부차드 가든
ⓒ 제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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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정길
ⓒ 제정길
가까스로 그렇게 하기로 합의는 보았으나 마음은 편치도 개운치도 않았다. 저녁 어스름을 바라다 볼 때 같은 쓸쓸함과 무언가 머리 뒤를 내리눌러는 분노 같은 것이 울컥 올랐다가 뱃전의 파도를 타고 천천히 사라져 갔다. 어느새 배는 부두에 닿았다. 부두에서 부차드 가든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이 선생은 재빨리 우리 짐을 그의 차에 옮겨 실었다. 그리고는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말하였다.

"40분만에 구경을 마치고 나오셔야 됩니다. 40분만에 꼭 나오셔야 낮1시 배를 탈 수 있습니다."

부차드란 사람이 탄광을 하느라고 땅을 팠다가 그 아내의 설득으로 그 자리에 만들었다는 정원이었다. 그곳은 꽃들이 만발하여 지상의 천국을 이루었으나 시간에 쫒기는 우리는 제대로 쳐다볼 틈이 없었다. 그믐밤에 손전등 하나 들고 앞사람 등산화만 쳐다보며 산을 오르듯 길을 재촉하는 가이드의 발끝만 쳐다보며 부차드 가든을 돌았다.

가든 관광이 끝날 무렵 '스튜어드'가 내 곁에 다가와서는 옵션비용을 환불을 해주기로 했다면서 우리 두 사람 몫으로 30불을 내밀었다. 내가 왜 30불이냐는 표정으로 뜨악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이 선생과 의논했는데 반만 환불하기로 했다면서 잠시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반만 주니 미안하다는 뜻인지 반이라도 주니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뜻인지 읽기가 어려웠다. 어쨌거나 이제 와서 군말하기도 지쳐 돈을 받아 넣고는 걸음을 빨리하여 차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크기가 남한의 3분의 1이나 된다는 밴쿠버섬을 단 40분만에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니 수박 멀리 놓고 쳐다보기 식으로 끝마치고, 총알택시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는 이 선생의 차를 타고 우리는 무사히(?) 1시 훼리를 타고 돌아 올 수 있었다. 오는 배 위에서 뱃전을 치고 나가는 물보라를 쳐다보아도 별로 상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변을 보다 그대로 깔고 앉은 것처럼 기분은 텁텁하고 속은 더부룩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딱히 밝혀지지도 않았지만 여행은 충분히 누추해져 있었다.

이게 과연 여행일까? 우리는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유명하다는 그 무엇 하나를 보려고 허겁지겁 만리길을 달려가서는 눈도장 한 번 찍고 번개처럼 떠나야 하는 이것을 여행이라 부를 만 한 것인가? 그나마 그 일정마저도 찌그러져 버린 이 여행을…. 뱃전에 갈매기 한 마리 따라오다가 그도 결국 대답을 아니 하고 창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 제정길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늘근백수의 객적은 길 떠나보기 21'에 이어서 계속되는 캐나디안 록키 여행기입니다. 그동안 글 쓰기를 잠깐 멈칫했다가 지난 주말 102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여 글 올리기를 재개했습니다. 글의 구성상 처음부터 읽으심이 바람직하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그:#캐나다, #밴쿠버, #시애틀, #부차드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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