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동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드는 도암댐 방류 모습.
ⓒ 강기희
강이 죽어가고 있단다. 강이 죽으면 물 속 생명체들은 어찌 되나. 강바닥에서 사는 강도래, 물도래, 송장 꼬내기, 납작 꼬내기들이 살 수 없는 강이 되면 물과 함께 살아가는 민물고기들은 또 어찌되나.

동강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위험하다

갈겨니, 쉬리, 퉁가리, 매자, 어름치, 꺽지, 미꾸라지, 둑정이, 빠가사리 등의 민물고기들이 살 수 없는 강이 되면 수면 위를 유영하면서 먹이를 찾는 원앙과 호사비오리는 또 어찌되나. 선녀처럼 나타났다가 나무꾼처럼 사라지는 수달은 또 어찌되나.

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곳은 강원도 정선의 동강. 동강변 마을 사람들은 죽어가는 동강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할 뿐이다. 은은하게 악취를 풍기는 동강은 분명 예전의 동강이 아니다. 아름답기로 치면 동강만한 강이 또 어디 있을까.

병풍 같이 이어진 귤암리의 뼝때와 가수리의 아름다운 물빛. 천혜의 비경인 나리소. 물굽이가 휘돌아치는 제장마을과 연포마을. 어느 한 곳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런 동강이 죽어가고 있단다.

동강과 함께 살아가는 숱한 생명체들이 위험에 빠졌다. 사람이 위험에 빠지면 구조대라도 출동하지만 동강의 생명체들에겐 어느 누구 구호의 손길 하나 뻗지 않는다.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된 동강이지만 보전은 말뿐이다.

죽어가는 동강살리기에 앞장 선 문화예술인들

▲ 도암댐으로 인해 죽어가는 동강.
ⓒ 강기희
동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든 것은 동강 상류에 있는 도암댐. 한강 최상류에 있는 송천계곡을 막아 만든 도암댐이 동강을 죽이고 한강을 위협한다. 송천계곡은 댐이 만들어지면서 흉하게 썩어갔다.

저 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맑은 얼굴로 재잘재잘 돌과 돌 사이를 돌아나가며 피워내던 물의 얘기들과 푸르른 내음조차 하룻밤 사이에 간 데가 없고
흙탕물만이 도도히 산과 산 사이를 흐르던 그날, 저 위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물을 가르며 물 속 구름을 따던 고기들도 한 마리 보이지 않고
허옇고 거무튀튀한 빛깔로 물 속 세상에 제 존재를 뿌리박은 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허허실실 웃음 짓던 바위들도 흙탕을 뒤집어쓰고 나동그라진 강에
훠이 훠이 이상하여라 이상하여라, 수상한 날갯짓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허연 새도 쉽게 내려앉지 못했다

저 위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강마을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수소문하여 얻어낸 소식
강 상류에 댐을 놓아 물길이 막혀 댐 위의 물이 썩고 있단다 토사가 쌓이며 흙탕이 된 물이 미동도 없이 숨을 놓고 있단다 그 물을 몰래 내려 보냈단다
전두환의 세상이던 시절, 토목업자들과 관료들 배불리기 위해 지었다는 도암댐이 그것이란다

산과 사람의 마을 사이를 뒤덮고 흐르는 흙탕물가에 서서
흙탕이 돼버린 가슴을 쓸며 돌아서던 그날

- 유승도 시 '더러운 소식' 전문


10여년 전 정부는 동강을 막아 댐을 만들려고 했다. 동강이 두 동강 나는 것을 막은 것은 전 국민. 당시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강에 댐이 들어설 수 없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정부는 손을 들었고 동강댐 계획은 백지화 됐다.

어렵게 살려낸 동강이 다시 죽어간다는 말에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문화예술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은 오는 22일 정선 장터에서 도암댐 해체와 동강을 살려내라고 외친다.

내 탯줄이 흐르는 곳에 죽은 물을 흘려보내지 마라

시인들의 외침은 낮고 조용하다. 그럼에도 그 울림은 천둥소리보다 크고 깊다. 오래 전 동강댐 반대 운동에도 문화예술인들이 나섰다. 그들은 시로, 소설로, 춤으로, 화폭으로, 사진으로 동강댐 반대 운동에 동참했다.

동강이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되면서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줄 알았던 문화예술인들. 동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곤 정선으로 간다. 분노하며 간다.

여기 동강은 내 탯줄이 묻힌 곳
묻혀서 영원히 흘러가는 곳

누가 내 탯줄이 묻힌 곳에 검은 흙을 덮고
누가 내 탯줄이 흐르는 곳에 죽은 물을 흘려보내는가

우리는 모두 배꼽 있는 사람들
배꼽을 문지르며 오늘을 살아가는 현생(現生)들

언젠가는 다시 탯줄을 타고
이승의 때가 잔뜩 낀 자기 배꼽으로 돌아가

우리의 슬픈 조상들이 그러했듯
영원히, 영원히 흘러가야할 운명을 살아가면서

생사(生死)의 깊이로도 잴 수 없는 탯줄강을 앞에 두고
우리 이러지 말자, 정말 이러지 말자

- 이홍섭 시 '탯줄강을 앞에 두고' 전문


한때 정선 구절리에서 살았던 유승도 시인은 동강이 죽어간다는 '더러운 소식'을 들었으며, 동강변 마을인 귤암리에서 태어난 이홍섭 시인은 탯줄강인 동강을 찾아 '누가 내 탯줄이 묻힌 곳에 검은 흙을 덮고 누가 내 탯줄이 흐르는 곳에 죽은 물을 흘려보내는가'라고 큰 울음 운다.

▲ 동강이 죽었다는 것은 소문이 아니다.
ⓒ 강기희
이번에 정선을 찾는 시인은 40여명. 최동호 시인을 비롯해 맹문재, 최정례, 유승도, 도현종, 이홍섭, 정채원, 장석원, 노춘기, 박순원, 하재연, 김명철, 이근화, 박미산, 이산, 박정석, 김지녀, 김문주 등과 소설가 강기희, 문학평론가 강웅식, 이성우, 김종훈 등이다.

도암댐 해체를 위한 범국민동강살리기운동본부와 사)시사랑문화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행사의 타이틀은 '사라진 동강의 쉬리들'이다. 동강에서 쉬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의 목숨을 턱 밑까지 위협하는 일. 문화예술인들이 동강살리기에 팔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다.

문학평론가 이성우의 사회로 진행되는 축전은 시낭송과 노래 공연 등으로 꾸며져 있다. 날선 구호보다 한땀 한땀 써 내려간 시편들이 더 강렬하고 날카롭다. 쓸모없이 방치된 도암댐을 지켜내려는 이들의 가슴팍을 후려치는 시간이다.

무릇 문화예술인들이 나선 자리는 세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곳. 이들이 펼쳐놓는 언어들은 세상을 바꾸고 어긋난 것을 바로잡는 힘의 원천이 된다. 전세버스로 정선을 찾은 이들은 행사가 끝나면 동강 일대를 둘러보는 시간도 갖는다.

왜가리마저 등 돌리고 떠나는 동강을 살려내는 일은 누군가가 아닌 나부터 나서야 한다. 외면하고 못 본 체 눈 감으면 동강은 영원히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런 동강을 찾아 죽어가는 강을 살려내는 일에 앞장 선 문화예술인들의 걸음이 힘차고 반갑다.

▲ 동강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는 강 바닥을 들여다 보는 인간뿐.
ⓒ 강기희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