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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천계곡으로 물을 방류하는 도암댐 모습.
ⓒ 강기희

송천은 물길이 아름다운 곳이다. 어떤 여행가는 아름답다 못해 송천계곡을 신이 빚어놓은 계곡이라 했다. 물론 오래 전의 이야기다. 송천 상류에 도암댐이 들어서기 전만 해도 송천계곡은 '신이 빚어놓은 계곡'이었다.

아름답던 계곡을 죽음의 계곡으로 만든 것은 도암댐이다. 도암댐의 오염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1일 송천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도암댐은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 공사가 시작되어 1990년에 완성된 사력댐이다. 서슬퍼런 때였기도 했지만 환경문제가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되기 전의 일이라 도암댐은 큰 문제없이 추진되었다.

신이 빚은 송천계곡을 죽인 건 도암댐

도암댐은 춘천의 소양댐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담수용량은 보 수준인 5000만톤에 불과한 작은 댐이다. 담수용량 29억톤인 소양댐에 비하면 댐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댐이 도암댐인 것이다.

도암댐은 애초 발전 전용 댐으로 만들어졌다. 많은 돈을 들여 건설한 댐에 비해 전력 생산으로 벌어들인 돈은 한 해 10억 남짓. 운영비도 나오지 않은 비생산적인 댐이다. 그나마 전력 생산 10년만인 지난 2001년엔 오염된 물을 방류하다 발전기능마저 상실했다.

댐 기능을 상실한 도암댐은 용도가 폐기되었음에도 그대로 존치했다. 도암댐 하류이자 한강 최상류에 살고 있는 정선군과 영월군, 단양군, 평창군, 충주시 등의 주민들이 댐 방류로 인해 한강의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다며 몇 해 째 댐 해체를 요구했으나 어쩐 일인지 도암댐은 건재하고 있다.

정부는 도암댐이 골치덩어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도암댐 해체만은 안된다는 한다. 왜 안 되냐고 물으면 돈 들여 지은 것을 굳이 해체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대책없는 이 나라 정부다.

정부는 용도폐기된 도암댐을 홍수조절용이라는 어줍잖은 명분을 달아 도암댐을 존치 시키려는 속셈을 숨기지 않는다. 도암댐의 주인인 (주)한국수력원자력은 상실된 발전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절치부심 기회를 엿보고 있다.

주민들의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댐 기능을 살려보겠다는 한수원측에 대해 인근 주민들은 어림없다고 일축한다. 송천계곡과 동강변엔 도암댐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까닭이다.

용도폐기, 그러나 댐 해체는 안 되고

▲ 댐 아래 계곡물. 맑아야 할 계곡물엔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없었다.
ⓒ 강기희
▲ 도암댐 아래 계곡 물. 한강 최상류의 물이 이렇게 오염되었다고 하면 믿을까?
ⓒ 강기희
작은 댐에 불과한 도암댐이 왜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것일까. 그것은 도암댐이 한강의 최상류에 위치해 있는 데다 청정지역인 송천과 아우라지, 동강댐 건설 계획으로 한차례 홍역을 앓았던 동강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동강은 현재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강변의 돌 하나 건드릴 수 없도록 되어있으나 도암댐으로 인해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정부에서 지정한 생태보전지구인 동강을 정부에서 죽이고 있는 아이러니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도암댐은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에 있으며, 인근 지역인 횡계와 용평에서 흘러드는 물을 막아 만든 댐이다. 흘러드는 물은 오염덩어리들이다. 오염된 물은 도암댐에 갇혔다가 송천으로 내려간다. 댐 아래의 계곡은 예전과 다름없지만 물은 탁하다 못해 악취가 났다.

강 바닥은 오염물질이 두텁게 쌓였고, 하얀 거품과 썩은 오염 덩어리들이 끊임 없이 밀려들었다. 계곡 물은 정화시설 없는 하수구에서 흘러나오는 물 보다도 썩어 있었다. 물고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고 수중 생태계는 회생의 기미마저 보이지 않았다.

죽은 계곡을 보며 탄식을 하고 있는데 왜가리 한 마리 계곡으로 날아왔다. 왜가리는 썩은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물에 발 한 번 담그지 않은 채 먼 곳으로 날아갔다. 새들이 외면하는 송천계곡은 신이 빚은 계곡이 아니라 인간이 죽인 계곡이었다.

사람들은 계곡을 찾지 않는다

눈부시게 맑아야 할 계곡물이 죽은 것은 도암댐이 생긴 이후이다. 댐이 생기기 전만 해도 계곡은 피서객과 천렵꾼들로 넘쳐났다. 사륜구동차가 아니면 접근도 할 수 없던 길이 넓게 포장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송천계곡을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들 안 온지 오래됐어요. 피부병 걸릴까봐 계곡엔 내려가지도 않아요. 오염된 원인을 도암댐이라 일러주면 어떤 사람은 댐 만든 이들에게 죽일 놈들이라 욕을 막해요."

송천계곡에 사는 주민의 말이다. 계곡에 살면서 민박이라도 치며 노후를 보내려 했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없어 민박 계획은 포기한지 오래라고 한다. 댐이 생기기 전엔 농사일 끝내고 멱도 감았다지만 이젠 계곡엔 얼씬도 하지 않는단다.

애써 모른척 하다 어쩌다 오염된 계곡물을 보게되면 화부터 난다는 주민은 도암댐 해체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도암댐만 헐면 계곡은 금방 살아나요. 정부에선 댐을 유지하겠다는 모양인데 말도 안되는 발상입니다."

주민은 쓸모없는 댐에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도암댐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송천계곡에 사는 주민들과 정선군민이다. 관광지인 아우라지는 명성만 남았고 아름답다던 동강은 오염된 이후 이름값도 못한다.

예전 아우라지에 가면 시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우라지 강변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작품을 건져 올렸다. 강이 오염되면서부터 시인들은 더 이상 아우라지를 찾지 않았다.

동강 오염 쉬쉬하는 지자체... 공약은 버려지고

▲ 도암댐으로 인해 악취 풍기는 송천계곡.
ⓒ 강기희
▲ 도암댐으로 흘러드는 물. 이런 물을 가두었다 송천으로 흘려보낸다.
ⓒ 강기희
청정지역이라고 알려진 정선에서도 여름철 물놀이 하는 모습은 옛날 사진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정선 사람들은 여름철이 되어도 강에 나가지 않는다. 도암댐이 생긴 이후부터이다.

정선군청은 청정지역이라는 이미지가 흐려질까 싶어 동강이 오염된 사실을 쉬쉬한다. 도암댐 해체를 앞장서서 요구해야할 자치단체가 오히려 입막음을 하는 셈이다. 한술 더 떠 정선군청은 지난 15일 군의회와 관변단체 등과 함께 대책회의를 한 끝에 도암댐 존치를 결정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한때 도암댐 해체 투쟁에 앞장서던 이들이 포함된 자리라 그 이유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태풍 루사와 매미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당시 정선군민은 도암댐 해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도암댐 해체 투쟁 현장에서 가장 덕을 본 사람은 이 지역 국회의원인 이광재씨다. 이광재 의원은 당선되면 도암댐을 해체하겠노라라며 자신에게 표를 몰아줄 것을 호소했다.

정선군민은 '대통령 오른팔'이라는 후광을 믿고 이광재의 가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줬다. 호언장담하던 이광재 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후 도암댐 문제를 외면했다. 배신당한 정선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믿은 사람이 바보라는 자책 때문일까.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것만은 아닌 듯 싶다.

도암댐을 돌아나오는데 빗방울이 일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며 하늘이 검게 변하는가 싶더니 강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정선으로 돌아 오는 길은 한낮임에도 전조등을 켜야할 정도로 어두웠다.

도암댐이 하늘도 노하게 만든 것일까. 그것이 맞는지 정선에 이르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정선 하늘엔 해가 훤하게 떠 있었다.

▲ 맑을 날 없는 도암댐의 물빛. 1년 365일 이 모습이다.
ⓒ 강기희
▲ 송천과 대기천이 만나는 배나들이. 오염된 물이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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