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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폭포
ⓒ 김민수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 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그 몇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금강산 여행일정이 잡힌 뒤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는 노래가 흥얼거렸다. 남측출입사무소에 도착한 후 수속을 밟고,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측출입사무소에서 북한군인들과 눈맞춤을 한 그 순간에야 내가 북녘땅에 서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이렇게 가까운 곳,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새들과 같지 않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왔어야 했는지…, 아프면서도 그나마 이렇게 제한된 공간이나마 왕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 김민수
금강산, 그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들을 바라보면서 '혹시 꿈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현실이었다.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금강산에 안기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구룡폭포'였다. 내가 이곳에 오기 일주일 전에 큰딸이 먼저 그곳을 수학여행차 다녀왔다. 산이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가 구룡폭포에 다녀온 증거로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 나 그렇게 산이 예쁜 줄 몰랐어. 물은 또 얼마나 맑은지 몰라"라고 호들갑을 떨 때에도 그런가 보다 했다.

ⓒ 김민수
구룡폭포까지 이르는 모든 길목에 피어있는 들꽃들과 소(沼)와 담(潭)을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신선이 된 듯했다. 상팔담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줄기가 되어 폭포를 이룬 구룡폭포는 경쾌하고, 단아하고도 시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조국의 산하를 걸어다니듯 아이들과 손잡고 담소를 나누며 올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상팔담 오르는 길에 바라본 관폭정
ⓒ 김민수
마음이 너무 먹먹해서 사진으로 담기 위해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시간마저도 아까웠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걷고 보고 싶어 난생처음 산행을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던 것 같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걷고 싶었다.

상팔담으로 올라가는 길에 내려다본 관폭정, 사계마다 그 느낌이 다르겠지 생각하니 금강산에 안겨있으면서도 이별의 슬픔이 밀려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맘껏 볼 수 있으려면 어서 평화통일이 되어야 할 터인데 평화통일의 여정이 너무 길어 보였기 때문이다.

▲ 상팔담
ⓒ 김민수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은 걸음을 걸어왔다. 반공교육을 받으며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인 내가 살아생전 금강산을 밟아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어느새 현실이 되었으니 평화통일도 언젠가는 현실로 우리 앞에 펼쳐지겠지 하고 꿈을 꾼다.

북한 안내원들과 눈인사도 나누고,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었다. 맨 처음 출입국관리소에서만도 마치 이국땅을 밟은 듯하여 외국어로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나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만리장성을 쌓은 듯했다.

ⓒ 김민수
상팔담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철제계단을 몇 개를 올랐는지 잊을 즈음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의 근원지라는 비췻빛의 상팔담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바위산임에도 어디에서 저렇게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일까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 맑은 물 한 모금이면 세속에 찌든 내 마음도 맑아질 것만 같다.

ⓒ 김민수
하늘이 맑고 햇볕이 따가워 등줄기에 땀이 흐를 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간의 피곤함을 다 빼앗아 다른 봉우리로 옮겨놓는다.

'그래, 피곤함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근심과 걱정 모두 저 올라갈 수 없는 기기묘묘한 봉우리들 위에 올려놓고 가자. 그러면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다시 가져올 수 없겠지.'

ⓒ 김민수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이 된 듯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담(潭)과 소(沼)를 보니 금강산 나무꾼만 되면 선녀들을 만나는 것은 쉬울 것 같았다. 하늘 선녀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그냥 스쳐 지나갈 리 없을 테니까.

ⓒ 김민수
바라보는 곳마다 기암괴석이요, 그 척박한 곳에 기품있는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척박한 곳이기에 오랜 인내의 세월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인내의 세월만큼 그들의 모습도 멋들어진 모습으로 그곳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무의 모양새 하나에도 인생의 깊이가 들어 있듯 불혹의 나이가 지난 후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얼굴에도 그 깊이가 묻어있을 터이다. 나는 내 나이에 걸맞은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 김민수
이제 막 여름을 맞이한 금강산, 초록의 물결이 넘실대는 그곳은 지금 '봉래산'이다. 아직도 봄의 흔적을 간직하고 피어있는 금강애기봄맞이꽃은 불어오는 바람에 작은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린다. 흔들리면 어떠랴, 그래도 이렇게 활짝 피어있는데.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평화통일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도 열강들에 의해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흔들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평화통일의 그날이 도래하길 소망한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안기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와서, 있고 싶은 만큼 머물면서 금강산 심산유곡에 피어난 갖가지 들꽃들과 조우하는 평화통일의 그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5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린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6·15공동선언 이행과 평화통일을 위한 금강산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둘러본 금강산 여행기입니다.

다음 기사는 '장전항과 삼일포'를 다녀온 여행기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태그:#금강산, #구룡폭포, #상팔담, #나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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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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