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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쓴 기사가 메인톱에 올랐지만, 범인이 '한국계'라는 보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김규영
처음으로 쓴 기사가 지난 17일 <오마이뉴스> 메인톱으로 올라갔다.

제목은 "우리 학교에서 총기사건이 일어났어" 였다. 현지시각 4월 16일 오전에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주민 입장에서 서술하였다. 글의 완성도와 별개로 시의가 적절하여 메인톱을 차지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독자였다. 다만, 본사에 근무하는 친구가 사건 발생 직후, 안부 전화를 걸면서 현장의 느낌을 몇 자 적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여 시작되었다.

첫 기사에 이어 쓴 두 개의 기사도 메인 서브에 올라갔다. '화려하게' 데뷔한 일주일 동안 짚어본 언론의 모습을 정리해 보았다.

자극적인 언론보도에 반발심 생겨

아이들을 재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과민 반응하는 언론보도에 대한 반발심때문이다. 보다 정확한 현지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미국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아메리카' 등 언론의 자극적인 표제들은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어 전전긍긍하게 했고, 그로 인해 전화통은 불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 무서운 사건을 가까이에서 경험하여 패닉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지만 대부분 침착했다. 버지니아 텍이 세계에서 가장 흉흉한 지역에 있는 듯이 과장되는 것이 싫었다. 평소 지루할 만큼 평화로운 우리 동네 일상도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끄적거리다 보니, 참혹한 사건으로 격앙된 공포와 긴장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문장 속에서 혼란스런 마음이 저절로 정리되는 것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기사는 메인톱이 되어 있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도 잠깐. 범인이 한국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상으로 돌아가겠다'고 마무리했던 어젯밤의 안정감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외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TV와 인터넷으로 관련기사들을 읽어댔다.

'한국계'임이 밝혀진 지 반나절도 안 되어서, <오마이뉴스>는 '부끄럽다,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는 기사를 통해 발 빠른 네티즌들이 근조표시를 달며 용서를 구하는 댓글을 전하였다. 그 속에서 "'한국인'이라는 것은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라는 발언은 '조심스런 일부 네티즌의 주장'이었다.

'충격에 빠진 유학생들이 떨고 있다'라는 기사도 있었다. 정말 손끝이 떨리기는 했다. 여러 기사를 접한 한국의 가족들이 다시 전화통을 달구고, 마른 침 넘기는 목소리로 안부를 재차 확인하자 더 불안에 떨게 되었다.

퍼뜩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쓴 기사와 현 상황은 맞지 않았다. 기사가 되어버린 내 글에 대한 책임감이 징징거리는 애들을 밀쳐두고 자판을 두들기게 했다.

이곳 주민들이 받은 충격과 앞으로의 걱정거리를 전하되,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걱정할 것 없다는 차분한 어조로 말하려고 애썼다.

18, 19일에는 범인 조승희의 과거 행적과 방송에 메시지를 전한 사실이 알려지고, '한국계'를 과도하게 부각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힘든 이민 생활이 초점이 되어 버지니아 텍 사건은 연일 메인을 장식했다. 우울했다.

'버지니아텍 참사로 이라크인 200명 죽음 묻혀'라는 기사가 꼬집었듯이, 언론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기사감을 제공하는 이 사건을 더 키워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 혼자라도 기사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추모메시지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버지니아텍 드릴필드를 찾았다.

하이에나 같은 언론

▲ 보도차량으로 가득한 버지니아 텍 인(Virginia Tech Inn)
ⓒ 김규영
학교는 여전히 보도차량으로 가득했다. 기자들은 캠퍼스를 배회하고 있었다. 몇몇 건물에는 언론의 접근을 거부한다는 표지도 걸려 있었다.

남보다 먼저 기사거리를 잡아야 하는 기자들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이에나 같은 언론'은 슬픔에 찬 조문객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댄다. 자극적이고 과장된 제목으로 시선을 끈다. 범인이 보낸 동영상을 그대로 방송해 버린다.

유행을 쫓는 것처럼 이쪽에서 저쪽으로 우르르 몰려 다니는 보도의 흐름도 그렇다. 21일부터는 조승희에게 남긴 몇 장의 추모 메시지로 미국인의 관대함을 감탄하고 있다. 침소봉대 능력이 탁월하다.

첫 기사가 메인톱에 올랐을 때, 자뭇 우쭐대는 공명심도 생겼지만 안 좋은 소식의 기사라 누구에게 자랑도 못했다. 혼자서 조회수 확인하고 포탈 사이트에서 기사 찾아보며 자아도취에 빠졌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치기일 뿐이다.

단순히 사건 보도만 하는 것이라면 세상의 많은 기자들이 그 궂은 일을 왜 하고 있겠는가. 어떤 침통한 사건에서도 진실을 밝히고 강인한 정신과 희망을 끌어올리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리고 있다.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쓰고 있다. 나의 첫 경험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오마이뉴스>에서는 내 글도 기사가 될 수 있고, 메인톱에 오를 수도 있다. 그 마력에 잡혀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간만 나면 들어와 이리저리 마우스를 굴리고 있다. 앞으로 아무 글이나 써내고서, '이게 왜 생나무에 있는 거지?!' 하고 길길이 뛸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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