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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골짜기에도 봄이 왔다. 버들강아지의 화려한 외출이 반갑기만 하다.
가리왕산 골짜기에도 봄이 왔다. 버들강아지의 화려한 외출이 반갑기만 하다. ⓒ 강기희
며칠 포근하더니 결국 비를 쏟는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심시간이 되자 소나기로 변한다. 비는 안개를 골짜기까지 불러 들었다. 안개에 묻힌 골짜기는 빗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봄을 맞은 골짜기, 개구리알이 가득하다

@BRI@어제(1일)는 겨우내 입었던 겉옷을 벗어도 좋을 만큼, 꼭 그만큼 포근했다. 응달에 남아 있던 눈이 빠르게 녹아들었지만 가리왕산 정상을 덮은 눈은 여전히 겨울을 지키고 있었다. 정상과 달리 가리왕산 골짜기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골짜기의 봄은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으로 아주 서서히 오고 있었다. 남녘처럼 꽃이 핀 것도 아니니 꽃소식으로 호들갑 떨 일도 아닌 산촌의 봄은 조용하다. 펑펑 꽃봉오리가 터지는 날이면 골짜기도 꽃이 전쟁을 치르는 듯 호사를 누리지만 그건 아직 먼 나라 이야기다.

어제 낮 올해 들어 처음으로 골짜기로 봄을 맞으러 갔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풀들이 제법 키를 키웠다. 계곡물은 눈 녹은 물로 조금 불어 있었다. 생명이 움트는 계곡은 긴 마당 가에 머물던 겨울을 저만치 밀어내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골짜기에 이사온 지 1년을 넘겼으니 가리왕산 자락의 사계절을 다 경험한 셈이다. 봄풀이 나기 시작하지만 가리왕산 자락은 아직 봄이라고 하기엔 이르다. 작년에도 3월 말에 눈이 내렸으니 올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선지방은 봄철에도 곧잘 눈이 오는데다 봄추위도 제법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어제만큼은 봄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날이었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버들강아지는 뽀얀 솜털을 한들한들 바람에 날리며 세상 구경을 하고 있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살을 찌워가는 버드나무도 물을 빨아들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봄나들이하듯 골짜기를 걷다 개구리알을 발견했다. 우무질을 집으로 한 개구리알은 집단으로 모여 있었다.

개구리알은 저마다 크기와 모습이 달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화하는 정도도 다른 듯, 어느 놈은 벌써 올챙이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고 어느 놈은 까만 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계곡물의 기온이 올라가고 햇볕이 강해지면 부화하는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개구리알이 부화하여 올챙이가 되면 계곡은 까만 올챙이로 오글거린다. 누가 보아도 개구리가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없는 올챙이들은 물속에 사는 다른 생명체처럼 우화를 하지 않고도 스스로 개구리가 되어간다.

다리가 굵어지고 머리가 변하고 꼬리가 짧아지면서 올챙이는 개구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계곡엔 올챙이의 천적이 많지 않으니 올챙이들은 대부분 개구리가 된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계곡의 한 풍경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계곡에 있는 개구리알은 참개구리 알이다. 보통 흔히 보이는 무당개구리는 비단개구리라고도 하고 등에 고춧가루 문양을 하고 있어 고추개구리, 또는 그 모양이 예비군복을 닮았다 하여 예비군 개구리라고도 한다.

골짜기의 또 다른 봄 풍경. 부화를 막 시작한 개구리알.
골짜기의 또 다른 봄 풍경. 부화를 막 시작한 개구리알. ⓒ 강기희
개구리알, 부화 속도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개구리알, 부화 속도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다. ⓒ 강기희
농약 살포와 마구잡이식 개구리잡이로 인해 토종 산개구리는 많이 감소했다. 그런 이유로 계곡에서도 산개구리 알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비단개구리는 말려 약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식용은 불가능하다.

오동나무 키워서 어머니 시집 보내야지

보통 사람은 개구리에서 고춧가루 냄새가 나기에 만지기도 힘들다. 비단개구리를 먹다 이러저러한 사고가 났다는 세간의 입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비단개구리는 함부로 먹었다간 큰일 낸다.

예전엔 경칩날 몸보신을 위해 개구리알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나 그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경칩날 먹는 개구리알은 아픈 허리를 낫게 하고 몸보신도 된다고 하지만 의학적으로 입증된 바도 없으니 무작정 따라 할 일도 아니다.

어릴 적 비단개구리를 낚시로 낚았던 기억이 있다. 무엇에 쓰려고 낚시질을 했던 것은 아니다. 심심했고 할 일이 없었던 어린 시절 그것도 하나의 놀이였다. 민물고기처럼 낚싯바늘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길가에 있는 싸리나무 하나 뚝 꺾어 만든 낚싯대에 실을 묶으면 끝난다.

실 끝에 개구리가 들어갈 만한 매듭을 만들어 개울에 던져놓으면 개구리들이 슬그머니 매듭 안으로 들어오고 그것을 잡아채면 되었다. 이른바 '홀치기'다. 그렇게 잡은 비단개구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에 다시 풀어주곤 했다. 일곱 살 무렵 정말로 할 일 없을 때 하는 놀이였다.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이 개구리가 되면 이동이 시작된다. 유월 무렵이다. 그 무렵 개구리들의 시체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시골길을 가로질러가던 개구리들은 지나가는 차들에 의해 무참히 깔린다. 아무 이유도 없이, 왜 죽어가는지도 모른 채 죽어가는 개구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발을 딛기가 미안할 정도다.

비가 그치지 않는다. 어제 경기도 수원에서 시집온 오동나무가 뿌리를 잘 내리겠다. 어제 오후 오동나무를 심는데 지나가던 이가 한마디 했다.

"거 시집보낼 딸도 없으면서 오동나무는 왜 심수?"
"우리 어머이 시집 보낼 때 쓰려고 심습니다."


그 말에 지나가던 이, 우습다며 한참이나 웃더니 가던 길을 갔다. 오동나무가 아름드리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말처럼 그 나무로 어머니 시집 혼수를 장만한다면 이보다 좋은 일 어디 있겠는가.

비가 그치면 저만치 왔던 봄이 잠시 물러가고 겨울이 온다고 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개구리알도 키우던 몸을 잔뜩 움츠릴 것이다. 몸을 풀던 땅도 다시 살얼음을 깔고 벗어 두었던 겨울옷도 챙겨야 한다.

그러면 잠시 마당을 떠났던 겨울이 다시 마당을 차지하고, 봄과 겨울은 우리 집을 사이에 두고 밀고 밀리는 싸움을 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일 즐겁다고 하면 봄과 겨울에게 미안한 일이 될까?

봄을 맞은 계곡물, 곳곳에 개구리알이 풀어져있다.
봄을 맞은 계곡물, 곳곳에 개구리알이 풀어져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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