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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선서 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
취임선서 하는 반기문 UN사무총장 ⓒ UN 사이트 갤러리
반기문 사무총장은 어떤 사람인가. 10년 넘게 외교부 북미국 라인에만 있으면서 여러 언론들로부터 '대미 전문관료', '친미적 성향의 인사'라는 칭호를 받은 바 있다.

그가 외교부에 재직 중이던 지난 1990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300억불에 달하는 용산미군기지 이전 비용 전액을 한국이 부담하기로 한 양해각서와 합의각서들이 정부간의 협정이 아니라서 법적 효력에 하자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각서들은 힘을 잃게 될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듬해에 외무부 미주국장이 나서서 이 각서들이 법적 효력이 있다고 한 소파합동위원회 각서에 사인을 해 버렸다. 그 외무부 미주국장이 바로 반기문 사무총장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오마이뉴스 2004.1.18 기사 "'친미장관' 자른다더니 '숭미장관'을?" 참조.)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04년 2월 처음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도 중심에 있었다. 같은 해 6월 정부가 파병을 강행한 탓에 이라크 무장세력에게 피랍 되었던 고 김선일씨가 희생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외통부 수장이었던 반기문 사무총장은 "정부도 잘못했지만 국민들도 위험 지역에 가면 스스로 자기 신변에 책임을 지는 것이 돼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하였다.

또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2004. 8. 30)에서 반 장관은 "김선일 사건에도 불구, 우리 정부가 테러단체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이라크 추가 파병을 결정한 것을 두고 국제사회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라는 발언도 남겼다. 이렇듯 그가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관료 시절부터 이미 미국에 지나치게 기울어 있었다고 여겨진다.

사무총장 당선의 배경 - 미국의 전폭적 지지

@BRI@반기문 장관이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된 자체도 미국의 입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는 당선이 결정되기 전인 2006년 9월 28일 <로이터통신>을 인용, 미국이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믿는다는 기사를 썼다. 북한정권의 종식을 주장하는 초강경 매파로 악명 높은 유엔주재 미국대사 존 볼튼 또한 반 장관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면서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 동안 미국과 유엔은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갈등을 겪어 왔다. 유엔은 이름 그대로 국제연합 기구로서 국제적으로 평화와 군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볼 때 실제로는 미국의 주도하에 움직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 하의 유엔기구는 미국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전쟁으로, 2003년 당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려고 할 때 유엔은 끝내 그 전쟁에 대해 승인하지 않았다. 미국은 결국 유엔을 무시하고 이라크 공습을 감행하였으며, 코피 아난 당시 사무총장은 유엔과 국제사회에 슬픈 날이라면서 크게 한탄했었다고 한다.

2006년 6월에는 멀로크 브라운 유엔 사무부총장이 뉴욕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미국이 자국 내 유엔 비판에 대해서는 묵인한 채 비밀 외교수단으로서 유엔을 이용하려만 하는 것은 지속될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판하였다. 이에 존 볼튼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아난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브라운 부총장의 발언을 거부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아난 사무총장의 대변인은 "아난 총장은 브라운 부총장의 발언을 지지하며 어떤 조치도 없을 것"이라며 볼튼의 요구를 거부한 바 있다.

미국과 UN 사이에서 갈등구조가 형성되고 점차 심화되자 미국은 자국의 편에 설 수 있는 유엔 사무총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반기문 후보가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2006년 11월 13일 대전 CMB엑스포아트홀에서 열린 '특강'에서 연설을하고 있는 반기문 UN사무총장.
2006년 11월 13일 대전 CMB엑스포아트홀에서 열린 '특강'에서 연설을하고 있는 반기문 UN사무총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당선 이후 반기문의 행보 - 유엔 총장인가, 미국 대사인가

'아시아의 조용한 외교관’으로 알려진 반기문 사무총장은 당선된 이후 미국 입장에 치우친 발언과 행동을 수 차례 보여 주었다. 당선이 확정된 지난 2006년 10월 15일 미국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유엔안보리 결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유엔은 유엔헌장 규정에 따라서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유엔을 통해 북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입장을 거들었다.

반 사무총장은 또한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침공했던 레바논에 UN평화유지군을 파병하는데 동의하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부가 레바논 파병을 해야 한다는 의사를 재차 밝혔다.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중인 레바논 파병이 특전사 파병이라는 민감한 사안임에도 별다른 논의도 반발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반기문 신드롬과 무관하지 않다.(레바논 파병에 관해서는 본인의 다른 글 참조!!)

2007년 새해 첫날에는 그간 사형제를 반대해 온 유엔의 공식 입장을 무시하고 후세인 사형에 찬성한다는 미국측 입장을 지지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1월 10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유엔 외부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 없이는 유엔이 제 기능을 못한다"며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미국과의 관계를 제일 중요시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셈이다.

이후 1월 중 반기문 사무총장은 전 세계의 군축을 담당하는 유엔 군축국을 축소하여 정무국 산하에 두려고 시도했다가 비동맹회의 회원국과 평화단체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세계적인 핵 경쟁과 군비증강 추세를 고려할 때 군축국은 권한을 강화해야 하며 강대국이 좌지우지해서는 안 되는 부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군축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정무국 산하에 두겠다니 각국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미국과 입장을 같이하는 모습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문제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작년 11월 16일 유엔총회에서 대북 인권결의안이 처음으로 통과되었을 때, 2003년 이래로 불참 또는 기권을 해 왔던 한국 대표가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진 일을 생각해 보라.

12일 반기문 사무총장이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북의 인권문제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라고 주문한 직후의 일이었다. 한반도 평화문제의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북과의 갈등을 초래하고, 나아가 전쟁의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는 대북 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실수를 넘어 위험을 초래한 행위였다.

'국제사회'란 미국과 몇몇 강대국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일국(一國) 중심의 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길로 나아가려고 진통을 겪고 있다. 이른바 '반기문 신드롬'에 빠져버린 한국 언론도 이러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조장원 기자는 <파병철회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파병철회네트워크>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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