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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도 모자란다는 것일까? 이번에는 특전사를 포함한 1개대대(400여명) 규모 병력을 레바논에 보내겠다고 한다.

현재 레바논 신규 파병안은 지난 1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연장동의안, 아프가니스탄 의무.공병대 파병연장동의안과 함께 논의된 후 15일 통외통위를 통과하여 본회의 표결을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파병을 소리없이 추진해 온 정부는 물론, 칼자루를 쥔 국회가 레바논 파병의 부당함과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태롭다

레바논 파병은 명백히 ‘전투병 파병’이다. 이라크 파병도 특전사를 보내긴 했으나 평화재건을 이유로 들어 주둔지를 아르빌의 한적한 사막지대로 정했으며 실제 전투원의 비율이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바논 파병부대는 특전사가 최소 96명 포함되어 있으며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해 가면서 타국의 전쟁, 그것도 일방적인 침략전쟁에 끼어들 이유란 사실 어디에도 없다. 레바논 파병에 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적어도 50% 이상이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국민들의 상식적인 판단을 보여 준다. 아프간, 이라크에 이어 레바논에까지 군대를 파병한다면 그야말로 미국이 관여하는 전쟁마다 따라다니며 들러리를 서는 셈이다.

@BRI@하지만 11월 30일 레바논 파병 관련한 당국자 문답에 의하면, 정부는 분쟁지역이므로 특전사를 보낸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파병 예정지인 레바논 남부가 안전할 것이며 유엔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의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모순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바논은 안전한 곳이 아니라 불과 몇 달 전까지 이스라엘이 유엔의 중재도 거부한 채 무차별 공세를 퍼붓던 곳이다. 현재 휴전 중이라고는 하나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휴전’이다. 이스라엘은 휴전 후에도 전투기를 띄워 레바논 남부와 동부의 영공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레바논 남부지역은 헤즈볼라의 근거지로 이스라엘의 침공 당시 민간인 주거지와 피난행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가장 심했던 지역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이라고 다 정당한가

레바논에 군대를 보낼 경우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이 된다는 점에서 이라크 파병과 차이가 있긴 하나, 그것과 파병이 정당하냐는 다른 문제다.

유엔평화유지군의 목적은 무엇인가. 1978년부터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기존 유엔평화유지군과 달리, 지난 8월 통과된 안보리 결의 1701호에서는 새 유엔임시군의 임무가 ‘완충지대’의 승인받지 않은 무장을 해제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완충지대란 주로 레바논 남부를 가리키므로 승인받지 않은 무장은 헤즈볼라의 무장이 된다. 침략한 쪽이 아니라 침략에 맞선 쪽의 무장을 해제한다니! 이렇게 되면 명목은 유엔평화유지군일지라도, 처참한 전쟁을 겪은 레바논 민중들에게는 미국과 이스라엘 편에 서 있는 군대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결의안 1701호는 헤즈볼라에게는 ‘즉각 모든 공격 중단’을, 이스라엘에게는 ‘공격적 군사작전 중단’을 요구하고 있어 지극히 편파적이다. 결의안이 통과된 후 이스라엘 올메르트 총리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을 정도다.

또한 유엔은 새 임시군이 자기방어를 위해 선제공격할 수 있으며 치명적인 살상 무력 사용도 가능하도록 교전수칙을 새로 마련했다. 헤즈볼라의 무기유입을 차단한다며 국경지대에 군대를 배치했다가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헤즈볼라의 무장을 해제시킨다?

물론 헤즈볼라가 무장해제를 받아들일 리도 없다. 무장해제야말로 이스라엘이 언제든지 레바논을 침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2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대 이스라엘 승전집회’에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눈물로는 안보를 지킬 수 없다”면서 “강력한 레바논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무장해제는 없다”라고 연설했다.

침략군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나스랄라는 TV 인터뷰를 통해, 국제사회가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키려 하면 레바논이 제2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적도 있다.

유엔군이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시킨다는 발상은 타당하지도 않고 실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헤즈볼라는 군사력을 지닌 민병조직이지만 교육과 의료 사업 등을 펼치며 레바논 민중의 풀뿌리 지지를 받아 성장한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선거를 통해 당당히 정치권에 입성, 레바논 연정에 참여하여 2명의 각료를 배출했다. 그리고 올해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을 무력으로 막아내면서 레바논뿐 아니라 아랍권의 영웅으로 부상하고 있다. 헤즈볼라의 힘이 ‘레바논 정부보다 강력하다’는 분석도 있다.

레바논 정국혼란과 분열의 원인은

현재 헤즈볼라는 연립내각에서 탈퇴하고 거국내각 구성을 추진하다가 지난 12월 1일부터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다. 시위대에는 레바논 전체 인구(약 400만 명)의 20%에 달하는 8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시위 내용이다. 시위대는 지난 7~8월 이스라엘 군의 침공으로 1천200여명에 달하는 자국민이 희생되고 있는데도 레바논 군에 아무런 명령도 하지 않고 방관했던 시니오라 총리와 현 내각을 반대하고 있다. “눈물로는 안보를 지킬 수 없다”는 헤즈볼라의 말도 무기력한 레바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위대는 서방권의 지원을 받는 현 내각을 미국과 이스라엘의 앞잡이로 보고, 국민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정부를 바라고 있다. 즉 최근 자주 듣는 소식인 레바논의 ‘정정불안’이나 ‘내전 위기 고조’의 원인은 이스라엘의 침공과 외세의 개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레바논의 혼란과 내전의 근본 원인이 외세의 개입이었다면 레바논 전쟁을 불러온 것은 이스라엘에 편향된 미국의 대중동정책이다. 이라크에서 선거를 아무리 많이 치러도 점령군 철수 없이는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 없이는 레바논의 평화도 없다.

한국 사람들은 대표적인 분쟁지대인 ‘가자 지구’의 이름이나 겨우 알 정도로 중동의 복잡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에 무관심한 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또한 외세에 점령당한 역사가 있고 외세에 의한 분단을 겪고 있는 민족이다.

레바논 땅에서 다시 점령군이 될 수는 없다. 정부와 국회는 위험천만한 레바논 특전사 파병을 멈추고, 이스라엘에 공격 중단과 병력 철수를, 미국에는 대중동정책 변화를 요구해야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으며, 시민의 신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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