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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단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5일 낮 서울 중구 A 대기업 사무실. 점심을 마치고 들어온 직원 대여섯의 이야기 주제가 자연스레 집값으로 이어졌다. 국내 마케팅을 맡고 있는 이곳 직원은 부장 포함해서 모두 6명. 올 가을 이곳도 여느 사무실처럼 '집 사자' 분위기가 지배했었던 곳이다.

@BRI@실제로 집을 마련한 사람도 있었다. 김은식(39) 과장은 전세를 놓고 동작구 사당동에 아파트를 샀다. 은행으로부터 1억6000만원을 빌렸다. 그것도 모자라 저축은행 등과 부모로부터 4500만원을 꾸었다. 요즘들어 김 과장은 초조하다. 연일 은행들의 금리 인상 소식 때문이다.

김 과장은 "어차피 들어가 살 것이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면서도 "금리가 앞으로 계속 오르면 아무래도 부담이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요즘 분위기로 봐선 집값이 떨어지지만 않아도…"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15년째 강남에서 살고 있다는 정아무개(48) 부장은 주변 친구들의 말을 전했다. "집 2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집을 4천(만원) 정도 내려서 내놓았는데 살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면서 "중개업소에서 팔려면 좀 더 내려보라고 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주택자인 이정훈(38) 과장은 "요즘은 대출 받기도 어렵지만 집값이 너무 비싼 것 같아 신규분양을 기다리기로 (아내와) 이야기했다"면서 "오히려 전셋값을 얼마나 올려달라고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 부장은 "가을엔 집 없는 사람이 불안해 했는데, 요즘은 정반대"라고 설명했다.

"가을엔 집없는 사람이 불안했었는데...요즘은 정반대"

▲ 최근 주택가격 변화율 추이 (자료/국민은행)
ⓒ 삼성경제연구소
정부의 11·15 부동산 대책 한 달. 부동산 광풍은 일단 잠잠해 졌다. 하지만 기자가 돌아본 부동산 시장 주체와 전문가들은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광풍'을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광풍'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가지였다.

일부는 내년 봄 이후 또 한 차례 아파트 값 폭등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쪽은 갑자기 뛰어오른 아파트값 거품이 언제, 어떻게 꺼질지 조아리고 있었다. 특히 급격한 부동산 값 하락에 따른 금융위기가 자칫 '제2의 경제위기'까지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부동산 거품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끊이질 않았다.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올 가을 이후 서울 전역과 수도권에 걸친 아파트 값 폭등은 한 마디로 '미쳤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최근 사이의 부동산 거품 논란은 4년 전인 2002년으로 올라간다. 그 해 5월 당시 한국은행은 콜금리를 올렸다. 강형문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당시 '거품 꺼지기 전에 손쓰자'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우리 경제는 거품경제의 전형적인 두 가지 특징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가지 특징은 부동산과 주식투자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과 저금리로 인한 가계대출 급증이었다.

한 마디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거품이 발생할 수 있으니 미리 금리를 올려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은이 이후에 거품을 잡기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었다. 이어 LG경제연구원을 비롯해 민간연구소 등에서 거품론이 나왔지만, 그때 뿐이었다. 오히려 아파트 값은 계속 올랐다.

2002년 이후 꾸준히 제기된 부동산 거품...그래도 올랐다

▲ 지난 8월 한 시민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부동산중개업소 시세표를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구

그러다가 다시 거품론이 본격 제기된 것은 지난 5월. 청와대가 '버블세븐'이라는 선정적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들 지역의 아파트 값 거품을 본격 제기했다.

공기업인 주택공사 산하 주택도시연구원 지규현 책임 연구원도 당시 "강남 아파트 값은 거품"이라고 주장했다. 실질주택 값과 전국 아파트값 추세, 적정 주택구입 값, 전세값 대비 아파트값 비율 등 계산해보니, 강남 아파트값은 '거품'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6일 저금리에 따른 거품론을 주장했던 최호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주택값에 상당한 규모의 버블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가계 빚이 많아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저금리로 인해 전국 주택(17%)과 아파트 값(32.4%)에 거품이 끼어있다고 주장했었다.

이어 현대경제연구원을 비롯해 금융연구원 등 민간연구소와 정부, 금융감독당국의 아파트 버블에 대한 경고가 계속됐다.

지난 6일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경제 리스크 요인 점검' 보고서를 내면서, 내년 한국경제 위협할 위험 요인 중 하나로 '주택시장 버블 붕괴'를 꼽았다. 보고서는 "정부의 추가 부동산 조치 강도에 따라 내년 중 주택 값이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위기 느낀 정부, 연착륙 시나리오 시작됐다

ⓒ 삼성경제연구소
다음날인 7일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주택가격 거품붕괴로 인한 금융위기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경고한다. 앞으로 경기가 둔화되고 집값이 내리기 시작하면, 가계대출 등이 부실화 되면서 그 위험이 금융시스템으로 바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같은날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부동산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고민해 보겠다"면서, 23일 콜금리 인상 대신 '은행의 지급준비율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지난 90년 이후 16년만이었다. 은행들은 추가로 한국은행에 돈을 예치해야 했다.

금융 감독 당국도 나섰다. 박대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우리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할 수 있다"고 까지 주장했다.

금감원은 이후 은행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조사에 나섰고, 최근에는 대손 충당금을 추가로 쌓으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대손 충당금은 은행이 돈을 떼일 것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것으로, 시중은행들은 올해 말까지 2조5000억원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그만큼 쓸 돈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은행들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13일부터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시중은행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대출 금리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바꿔치고 있다. 새롭게 대출 받기도 어렵지만, 이미 대출 받은 사람들도 이자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에선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민간부문으로 분양가 상하제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반값아파트 공급을 위한 대책 마련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A 은행 고위관계자는 "현재 수도권 중심의 아파트 값에 거품이 있는 것 같다"면서 "(주택담보대출 중단은) 향후 가계 부실 위험에 대한 관리차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도 위기를 느끼고 있으며, 정부차원에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거품은 꺼지기 마련...내년 초를 대비하라"

문제는 이 거품이 언제, 어떻게 터지느냐다. 또 터지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품은 터져봐야 안다는 것이다. 물론 거품에 대한 위기 징후들은 알수 있지만, 이 역시 정확하게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재율 계명대 교수(경제학)는 "거품은 꺼지기 마련이며, 꺼지지 않는 것은 거품이라 보기 어렵다"면서 "문제는 언제 터질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상황은 분명 거품이 존재하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터질까. 전문가들은 이 물음에 선뜻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정확한 예측을 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아예 발언 자체에 비보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최호상 연구원은 "아무래도 향후 아파트 공급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해당지역의 여러 특수성을 감안해서 거품이 빠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민간연구소 한 연구위원은 "현재와 같은 추세로 금리가 오르고, 반값아파트 등의 공급이 진행될 경우 최근 1년새 급등한 서울 일부지역과 수도권 일대를 중심으로 급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기는 내년 봄 이사철을 잘 넘길 경우, 상반기 중에 거품이 터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내년 이사철을 맡아 전세 품귀 현상으로 집값이 다시 들썩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변수도 있다. 심각한 경제불안이 야기되는 거품 붕괴를 대선 후보들이 바라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깔려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자산관리TF팀장은 "서울 지역 아파트의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볼 때 거품이라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면서 "내년 이사철때 수도권으로 아파트 수요가 몰리면, 집값 불안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집값안정으로 연착륙 시켜야

그럼에도 부동산 거품이 터질 경우 한국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것에 전문가들은 끄덕인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보유자의 50%가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급격한 집값 하락과 금리상승으로 이들은 개인 파산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면서 "이들의 부실은 고스란히 금융권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올해 말 현재 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위기 징후는 수도권 아파트 값 거품과 이에 따른 가계 부채 급증"이라면서 "거품 붕괴에 따른 위기가 현실화되면, 소비 위축과 투자부진, 경기침체가 장기화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결책은 뭘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집값을 안정시키고, 가계 부실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강종만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선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가 필요하며, 가계의 주택담보 대출을 장기적으로 하고, 금리도 변동보다는 고정적으로 가면서 부실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거품에 대한 위기 징후와 경고음이 계속되고 있다. 전보다 징후는 좀 더 뚜렷해지고, 경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어쩌면 '제2의 IMF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거품이 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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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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