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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042>, 전 5권
<사형수 042>, 전 5권 ⓒ 학산문화사
042호. 하염없이 죽음만 기다리며 온 몸이 꽁꽁 묶여 지내는 그는 과거에 아무런 감정 없이 7명을 살해했던 죄가 있다. 그를 그렇게 만든 어린 날의 충격이 있었지만, 그 충격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사형수다. 밥도 개처럼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먹어야만 하는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찾아온다. 사형제 폐지가 진지하게 논의되면서, '실험' 제의가 온 것이다.

그 실험이란, 사형 집행을 미루는 대신, 사회봉사를 수행하는 무상 노동원 자격으로 밖으로 내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단, '살인'이라는 그의 과거가 있는 만큼, 살인충동을 느낄 정도의 흥분을 막기 위해 '뇌의 파괴'를 시도할 수 있는 칩을 뇌에 부착해야 한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042호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따사로운 햇살을 바라본다.

그가 '봉사'를 수행하는 곳은 공립고등학교다. 사실 대단히 위험한 공간이다. 한창 짓궂을 나이의 학생들이 언제 그를 자극할지 모르며,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살인 전과가 있는 사형수가 코앞에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대단히 불안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사형수 042>가 추구하는 길은 뚜렷하다. <사형수 042>는 그런 가상현실이 미칠 수 있는 여파를 충분히 검토하고 표현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말은 확실하게 표현하는 의지가 있는 만화다. <사형수 042>가 택한 길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042호의 끔찍한 전과의 원인을 어린 시절에 받은 '충격'에서 찾고 있으며, 실험 스태프들이나 학생들과도 점차적으로 끈끈한 정을 나누는 '평범한 인간'임을 드러내려고 한다.

물론 그 역시 인간인만큼 사랑의 속삭임으로부터도 자유롭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어쨌든 사형수다. 그 제한된 신분으로 인해 그에게 다가온 사랑은 자연스럽게 플라토닉 러브가 된다. 그것이 사랑인지 정인지 표현하기 애매한 성격의 '알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할지라도, 서로를 믿으며 걱정해주고 고민을 나누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한 길인지 <사형수 042>는 새삼 확인해주는 미덕을 갖고 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조차 하지 않는 자연의 소중함, 그리고 그 자연과의 대화도 042호에게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흘렸다는 그 눈물과 후회를 생각해보면, 그 각별함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과의 믿음과 교류, 자연과의 따사로운 대화는 042호로서는 닫힌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열어젖히는 벅찬 감동이 된다.

"꽃을 피우면 기뻐하는 사람이 있어. 계속하고 싶다. 나와 가까이 지내면 그 애한테 좋지 않은 것 같아. 그 애와 얘기를 나눌 수 없는 건 쓸쓸해. 나한테 말을 건네는 학생은 그 아이뿐이야. 흙의 감촉, 냄새... 최근 9년 동안 나한테 없던 것들이다.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올려다보면 아무 것도 없어 그저 하늘이 펼쳐져 있어. 그게 기쁘다, 그것만으로 좋다."

여운이 긴 결말,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먼 여정

@BRI@<사형수 042>는 비교적 무거운 소재를 선택했지만, 그 표현은 재치 있고 부드럽다.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꽃미남, 꽃미녀들이며, <슬램덩크> 등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가벼운 유머도 꽤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로 보인다.

이 만화에서 특히 여운을 주는 부분은 다른 만화들과 마찬가지로 '결말'인데, 그 결말에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축이 됐던 가벼운 유머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여운은 길다. 어쩔 수 없는 그 운명으로부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는 042호의 얼굴과 그를 인생의 소중한 기억으로 삼는 사람들의 '그 이후'가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 결말 부분은, 아주 민감한 사안인 '사형제의 폐지 유무'에 대한 입장으로부터 애써 비켜섰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만화는 '042호'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은연중에 드러냈고, 그에 걸맞은 이야기를 갖춰놓으면서 은근한 호응을 얻는다. 그것이 <사형수 042>의 특징이다.

어떤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사형수 042>의 중심소재인 '사형제도'는 중심소재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정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 그 결말에 깔아놓은 세심한 장치나 감각적인 필치는, 우리로 하여금 '사형제도'에 대한 첨예한 논쟁에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042호'가 새삼 느끼는 '자연과 교류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측면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강제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죄를 지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피할 수 없다. 042호는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감정을 지우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그가 '실험'을 계기로 되찾은 '일상'은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미처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거기에는 자신이 죽인 피해자의 부모와의 감동적인 사연도 포함돼 있다. 국가권력의 의도야 어쨌든, 042호는 그 쉽지 않은 계기를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먼 길'로 승화시킨다. 그는 조금씩 눈물을 흘리고 아픔을 느끼며, 꽃이 피어나는 것에 포근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있었다. <사형수 042>는 042호의 표정 묘사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형수 042>는 사형이니 살인이니 하는 것들과 거리가 먼 우리들에게 더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사람들은 세상을 누리는 그 순간에는,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 역시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런지. 042호, 아니 '료헤이'가 경험하는 그 삶의 공명들은 우리가 앞으로도 쉽게 느끼기 어려울 따스한 진리를 느끼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필진네트워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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