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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화'라는 '도전'에 맞선 데즈카 오사무의 '응전'은 <블랙잭>이었다.
'극화'라는 '도전'에 맞선 데즈카 오사무의 '응전'은 <블랙잭>이었다. ⓒ 학산문화사
데즈카 오사무의 부각 이후로, 일본만화계는 그를 모방한 둥글둥글한 스타일의 그림체가 유행했다고 한다. <고르고 13>의 사이토 다카오도 소년 시절에, ‘둥근그림체 묘사’가 안돼 데즈카 오사무를 직접 찾아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극화’는 한마디로 ‘안티 데즈카’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와는 달리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묘미를 앞세웠는데, 내용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가 전반적으로 어린이를 주대상으로 하는 가운데, 웃음을 주목적으로 삼았다면, 극화는 대단히 냉소적이면서도 과격하다.

‘극화’의 탄생을 선언하는 그들의 ‘안내문’에도 나온 이야기다. 그들은 극화를 일컬어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에 필요한 오락독서물”이라고 선언했다. 주된 독자층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에는 없는 새로운 묘미를 찾길 원하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안티 데즈카’를 표방해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았으면서도, ‘중층적인 구성’을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그의 영향력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이토 다카오의 <고르고 13>이나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 부게이초> 등의 만화가 대표적인 ‘극화’들이다. 특히 전쟁을 계급투쟁으로 설정한 <닌자 부게이초>는 학생운동권에 속해있던 대학생들이 애독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 작품을 통해 유물론을 접한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새로운 흐름은 곧 엄청난 유행으로 번졌는데, 이는 곧 데즈카 오사무에게는 엄청난 위기였다. 심지어 그의 조수들과 아들까지 그의 앞에서 꺼리낌없이 ‘극화’를 감상했을 정도였다는데, 한때 그는 만화가를 포기할 생각에 의학자로 되돌아갈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천상 만화가였다. 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응전’의 결과로 내놓은 작품은 바로 <블랙잭>이었다. <고르고 13>의 캐릭터를 분석해, 거기에 ‘망또’와 ‘무면허’라는 설정을 추가했고,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휴머니즘’까지 동시에 추구한 작품이었다. 아주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었던 ‘응전’이었다. <블랙잭>은 현재 리메이크되고 있으며, <헬로우 블랙잭>이라는 우리 시대의 걸작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도전과 응전’

고인 물은 썩는다. 그리고 썩은 물은 곧 병을 유발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도전’이 있어야 하며, ‘응전’은 곧 본인을 위해서도 훌륭한 처방전이 된다. 데즈카 오사무에게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극화’, 그리고 ‘극성 학부모’라는 ‘도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숱한 위기 속에서도 끊임없는 열정으로 이들에 대해 ‘응전’했다.

물론 그 역시 사람인 이상, 젊은 시절의 라이벌인 ‘후쿠이 에이이치’가 죽자, “더이상 그와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애도에 앞서 안도의 한숨부터 쉬었다는 부끄럽지만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는 고백을 한 적도 있다. 게다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도전은 사실상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2개의 도전에 대한 ‘응전’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신’이라 불리고도 남을 사람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도전’을 받을 것이다. 정상에 서 있든, 일상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늘 ‘도전’이 도사리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가 그 도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현실도 역사 못지 않게 도전과 응전이 뒤섞인 열정의 장이다. 현실의 궁극적인 승자는 결국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응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상에 타성에 젖은 우리가 데즈카 오사무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의사의 길을 벗어던지고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는 것 자체만 감탄하는 타성으로는 그에게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니, 그런 관념에 젖은 타성은 우리가 ‘도전’해야 할 대상이다. 정말 무엇을 배워야 할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끊임없는 열정으로 정상의 자리를 지킨 그의 일생이나, 그를 그렇게 성장시킨 원동력이 된 부모님 등, 현실을 사는 우리가 배워 ‘도전과 응전’에 이용해야 할 것들은 따로 있다. 무엇에 도전하고 무엇으로 응전해야 할까? 그건 우리 모두의, 어쩌면 미래에도 영원할 뜨거운 숙제일지도 모른다. 데즈카 오사무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그에 대한 모범해답을 내놓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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