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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민수
입동이 지나고 나니 말로만 입동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들이야 찬바람이 불면 옷깃이라도 여밀 수 있지만 들판에서 피어나는 들꽃들은 맨 몸으로 찬바람과 맞서야 한다.

그렇게 찬바람과 맞서는 꽃들이다보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돌틈도 햇살 한 줌 따스하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면 그저 고맙고 감사해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운다.

금창초는 5월의 햇살을 받고 한창 피어나는 꽃이지만 이른 봄, 봄의 전령처럼 피어나기도 하고 겨울날 햇살 한 줌의 사랑만으로도 피어나는 꽃이기도 하다. 겨울을 날 채비를 하고 이파리를 두텁게 한 후에 온 잠시라도 따스한 날들이 이어지면 이내 꽃을 피우곤 하는 것이 금창초다. 그러다 너무 추우면 그냥 짓물러버리지만 다시 싹을 내고 꽃을 기어이 피어낸다.

ⓒ 김민수
이 작은 꽃의 생명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우리는 너무 쉽게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생명을 내려놓고, 무엇보다도 자기 혼자의 생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경시할 뿐 아니라 남의 생명까지도 경시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특별한 것이다.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특별한 존재라는 의식, 그것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꿀 뿐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눈도 바꾼다.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서 의식도 달라지는 법이니 마음의 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금장초의 전초는 해열제와 해독제에 사용된다. 아마도 들꽃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가 사는 사회의 열병과 독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여 그 작은 꽃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 김민수
맨 처음 꽃의 세계로 빠져 들어갈 무렵에 300만 화소 보급형 카메라로 꽃들을 담았다. 그 카메라로도 대부분의 꽃들을 담을 수 있긴 했지만 금창초처럼 작은 꽃들은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똑딱이 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 작은 꽃들을 만나면 괜시리 심통이 났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카메라를 새것으로 바꾸고 렌즈도 접사촬영을 위해 100㎜ 마이크로렌즈로 바꾸고 난 후에는 작은 꽃을 만나면 오히려 반가웠다. 사람의 간사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느 날 겨울, 제주도 종달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미봉자락을 거닐다 양지바른 곳,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을 잘 받을 수 있는 양지바른 곳에서 온 몸을 바짝 붙이고 피어난 금창초를 만났다.

바람 많은 제주라고 해도 이렇게 온 몸을 땅에 바짝 붙이고 있으니 바람도 어찌할 수 없다. 온 겨울을 그렇게 맨몸으로 나야 하는 꽃의 비애보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난 꽃의 함성을 보는 듯하였다.

ⓒ 김민수
작은 들꽃들을 만나면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찌 그리 사람들과 닮았는지,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허툰 구석은 닮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순수성을 지키고 있어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니?" 호통하듯 자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들꽃들 앞에 서면 부끄러웠다.

그들이 가진 것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가뭄에도 몸에 물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날 아침 먹을 만큼만 품고는 모두 내어놓았다. 내일 먹을 것을 염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장 다음 끼니도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그런 삶을 살아가다 결국에는 말라죽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어딘가에는 또 다른 그가 피어 있기 마련이었다.

햇살 한 줌, 그랬다. 그들에게는 햇살 한 줌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햇살 한 줌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가지고도 늘 부족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 김민수
5월의 꽃들보다 겨울에 피어난 꽃들, 낙엽과 함께 피어난 꽃들이 더 꼿꼿하고 보랏빛도 진했다. 만약 모든 것이 골고루 갖춰진 환경이었다면 저리 피지는 못했을 것이다. 부족함,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더 아름답게 피어났던 것이다.

본래 땅에 붙어 자라는 꽃인데 날씨가 추우면 대지의 품에 안기려는 듯 이파리가 로제트형으로 깔린다. 대지와 하나이다. 대지와 가장 가깝고, 대지와 가장 가까움으로 가장 넓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새파란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서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하늘로 다가온다. 그들은 늘 그렇게 그 언젠가 잔디에 누워 푸른 하늘을 눈부시게 바라보았듯 하늘을 바라본다.

햇살 한 줌의 그리움 가득히 안고
엄마의 품에 안겨 활짝 웃는 아가처럼
대지의 품에 안겨있는 금창초
누가 그들보다 더 높은 하늘을 보았을까?
누가 그들보다 더 낮은 곳에 꽃을 피웠을까?
보랏빛 입술에 감사를 담고 또 담아 활짝 웃는 꽃.
- 자작시 '금창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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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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