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요즘 내 입맛을 돋우는 홍시들, 맨 왼쪽 위엣것은 밀감
ⓒ 정판수
나는 기억력이 뛰어나지 않다. 달리 말하면 건망증이 심한 편이다. 어떤 땐 내가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잘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아내가 종종 그 기억력으로 교사를 하는 게 신기하다고 얘기한다.

기억해야 할 건 잘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될 건 잘 기억하는데, 그 중 하나가 어릴 때 불렀던 노래들이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서 예닐곱 살 정도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꼬마 교통순경 아저씨’와 ‘재주넘는 다람쥐’다. 요즘도 난 술이 얼큰하게 취하면 가끔씩 이 노래들을 흥얼거리는데, 그럴 때면 듣는 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다.

다른 노래로 “홍시 감시 돼지 붕알, 니 하나 먹고 나 하나 먹고~”가 있다. 불행히도 십 년 전까지 불렀던 이 노래를 이젠 거의 잊어먹었다. 다만 이 노래를 남자아이들은 시차기(비석치기)할 때,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뛰기 할 때 불렀던 것 같다.

가사에 신경을 둬 해석하다보면 내용의 심각성(?)에 혀를 내두를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는 내용보다 각운의 효과를 노려 적당히 가사를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홍시’와 ‘감시(단감)’의 끝소리가 같은 소리로 반복됨으로써 운율이 형성되는 효과를 노렸으리라. 그러나 뒤에 하필 ‘돼지 붕알’이 붙은 이유는 모르겠다.

올해 달내마을에 감이 흉년 들었음은 앞글(달내일기 73, <우리 집 감나무가 해거리를 하다>)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도 마을을 두르고 있는 빛깔 중 가장 아름다운 빛깔은 역시 감빛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빠알간 홍시빛이다.

우리 마을엔 단감이 거의 없고 토종감(여기서는 ‘참감’이라 부름)이 대부분이라, 끝까지 남는 게 별로 없다. 홍시가 되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잠 잘 때면 지붕에서 감 떨어지는 소리가 ‘쿵’하고 난다.

홍시를 언급한 김에 하나 더 이야기해보자. 떡과 가장 궁합이 맞는 것, 즉 떡 먹을 때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는 게 뭘까? 우리말의 묘미를 알면 쉽게 답할 수 있다. 꿀이다. 꿀과 함께 먹으면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다음으로는 술이다. 역시 ‘술떡술떡’ 잘 넘어간다. 술을 마실 때 떡을 안주로 먹어본 경험은 없지만, 어떤 이의 말을 들으니 서울의 어느 술집에서는 안주로 떡을 구워 내놓는데 상당히 인기라 한다.

그런데 나는 떡과 가장 궁합이 맞는 건 홍시라 생각한다. 떡을 꿀에 찍어먹으면 분명히 맛있다. 그러나 그건 단맛이 거의 없는 떡일 때이며, 단맛이 많이 밴 떡일 경우에는 너무 달아서 많이 먹지 못한다. 그에 비하면 홍시는 다르다.

홍시 몇 개를 으깨 접시에 담아놓고 떡을 찍어먹으면 정말 입에 착 달라붙는다. 물론 홍시도 달지만, 그 단맛은 질리게 하는 맛이 아니라 당기게 하는 맛이다. 혹 아는 이들이 찾아오면 떡을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꿀과 홍시를 함께 내놓으면 홍시 쪽으로 손이 더 많이 간다.

달내마을에서 단풍빛에 앞서 온 마을을 붉게 물들이는 홍시를 보고 먹으며, 그 옛날 불렀던 ‘홍시 감시 돼지 붕알’이란 노래의 가사를 되살려보려 한다. 기억 바구니가 너무 낡아 되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다.

그리고 오늘 저녁엔 아내더러 떡을 홍시에 찍어먹을 수 있게 잘 쪄놓으라고 해야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