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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관련 오락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방송3사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추석연휴에 특집으로 방송한 KBS 2TV <경제비타민>.
ⓒ KBS
가족오락 프로그램에 웬 경제이야기? <경제야 놀자> <체인지업 가계부> 등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정말 어색한 조합처럼 보였다. 방송 몇 달이 지난 지금 적어도 경제는 딱딱하다는 인식을 깨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인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출연자의 가정 경제를 진단하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온갖 해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시청자의 살림살이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을까?

방송 3사, '부자 만들기' 경쟁 본격화

현재 지상파TV에서 방송하는 경제관련 교양오락프로그램은 남희석이 진행하는 SBS <체인지업 가계부>(수 저녁 7시 5분)와 김성주, 김용만, 조형기가 진행하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 저녁 5시 50분)의 '경제야 놀자'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 KBS도 지난 8일 <경제비타민>으로 뛰어들었다. 건강프로그램인 <비타민>의 추석특집 형태로 반짝 선보였지만 시청자 반응이 좋아 11월 개편 때 고정 편성이 거의 확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테크' 하고 싶어도 용어부터 막혀 투자를 못 한다던 평범한 가정주부들 입에서도 '시스템펀드'니 '재구매어음'이니 '연동계좌'니 하는 어려운 금융용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 지상파TV의 파급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처럼 딱딱한 경제 정보를 오락프로그램에 접목해 시청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극단적인 과소비 사례를 동원하는가 하면('체인지업 가계부') 연예인 가정 방문 등 눈요깃거리를 앞세워 정작 경제정보 제공은 소홀해서('경제야 놀자') 애초 방송 취지에서 벗어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하나은행 PB센터 김창수 팀장은 "프로그램 주시청자가 20~30대임을 감안할 때 평소 경제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 금융관련 지식을 전달하는 순기능이 있다"면서도 "방송의 위력이 큰만큼 진지한 정보 전달이 필요한데 오락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체인지업 가계부] "극단적 사례, 실생활에 도움 안돼"

SBS <체인지업 가계부>에서 지난 9월 27일 방송한 '흥부네 8남매' 편 역시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택배일을 하는 남편과 식당일을 하는 아내가 지하 셋방에서 8남매를 데리고 사는 상황을 다루면서 아이들의 어두운 표정을 민망할 만큼 자주 등장시키는가 하면, 입시 준비로 정신없을 고등학생 딸에게 아르바이트를 권하는 등 출연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침해했다는 것이다.

▲ SBS TV <체인지업 가계부> 한 장면. 출연자 가정 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 SBS
이런 사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5월 17일 첫 방송에서 의류 구입에만 무려 4천만원을 썼다는 주부를 시작으로, 레저용품에 2천만원을 쓴 남편, 자동차 사는 데 7천만원을 쓴 남편, 먹고 살을 빼는 데만 2300만원을 쓴 아내 등 일반적인 과소비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극단적인 사례만을 찾아 방송했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가 이들에게 알뜰 소비, 알뜰 살림에 대해 조언해 준다고 해도 일반 시청자 가정에서 적용하기 힘든 내용이 많았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은 "극단적인 가정 사례를 주로 다루다 보니 비정상적인 소비패턴의 원인이나 정신적 해결방법에는 관심 없고 집안물건 내다 팔기 등 자극적인 출연자 망신주기식으로 일관해 출연자에게도 도움 안 되고 시청자도 그저 쯧쯧거리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제작진도 지난 9월 중간점검 방송을 계기로 사례를 보다 보편적인 소재로 바꾸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체인지업 가계부> 외주제작사인 캔디프로덕션 윤귀례 작가는 "초반에 과소비 문제에 집중하다보니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재테크 정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서 "최근 개편을 통해 다자녀 가구, 맞벌이 부부 등으로 소재를 다양화하고 '안방재테크상담소' 코너를 신설해 출연자와 시청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야 놀자] 복리 마술은 가상현실?

SBS <체인지업 가계부>가 가정주부들의 주요 관심사인 가계부를 다루고 있다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경제야 놀자'는 출연자 가정의 자산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가치를 모르거나 숨겨져 있는 동산, 부동산 등을 찾아내 금전적 가치로 재평가한 뒤 이를 운용해 최대한의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 MBC 가족오락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한 코너인 '경제야 놀자'
ⓒ iMBC
지난 7월 16일부터 매주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경제야 놀자'는 투자와 금융상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들 경제정보가 단편적이다보니 시청자들이 무비판적인 수용으로 이어져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8일 '경제야 놀자' 추석특집에서 소개한 '복리 마술' 편은 시청자들에게 큰 혼란만 불러일으켰다.

"연복리로 잘 투자하면 예를 들어 한 달에 50만원씩 30년간 저축하시는 경우 11억 3천만원이 됩니다. 금리는 연 10%를 적용한 것이고요. 지난 10년간 한국의 발전에 따라 코스피 지수는 연 10%대로 상승해 왔습니다. 앞으로 한국이 그보다 발전하지 말라는 법이 없거든요. 복리 마술의 특징은 바로 시간의 힘입니다."

'복리'를 통해 장기투자의 이점을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하나의 '가상 사례'였지만 시청자들의 시선은 11억 3천만원어치 돈다발이 실린 트럭에만 쏠렸다. 결국 연 10%대 복리 상품에 가입할 수 없느냐는 시청자들의 문의가 각 금융기관으로 쏟아져 직원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프로그램에서 예로 든 연이율 10%대로 굴러가는 연복리 금융상품이 현재 시중금융권에선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차 복리 상품을 없애는 추세이며 예적금 금리 수준도 연 4~5% 수준에 불과하다. 비교적 연복리 개념에 가까운 장기상품인 변액유니버셜보험조차 예정이율 4~4.5%로 연 10%대의 이율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나은행 이창수 팀장은 "시중은행에 연 10%대 복리상품은 없다"면서 "복리 마술이란 지속적인 재투자 개념을 상징하는 것으로 특정상품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적립식 펀드가 이 개념에 가깝긴 하지만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야 놀자' 코너를 담당하는 김현철 프로듀서는 "금액보다는 장기투자 의미 전달하려는 시도였는데 시청자들에겐 오해 소지가 있었다"면서 "원금손실 등 부정적인 부분은 코멘트를 안 하거나 짧게 언급하고 있는데, 앞으로 균형 맞추는 부분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비타민] "연예인 가정경제 진단에 위화감"

방송 3사 중 가장 늦게 뛰어든 KBS <경제비타민>은 이미 건강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비타민>의 연장선에서 스튜디오에 자산관리, 부동산 전문가 등을 출연시켜 다양한 경제정보 제공에 비중을 두고 있다.

▲ KBS 2TV <경제 비타민>. 11월 개편시 고정 편성이 유력하다.
ⓒ KBS
<경제비타민> 역시 시청률을 의식해 연예인 가정을 전면에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기존 '경제야 놀자'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회식비로 한 번에 124만원씩 지출하는가 하면, 품위유지비로 몇 십만원씩 쓴다는 연예인들의 소비 형태를 일반 가정에 적용시키는 건 무리가 있고 오히려 위화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경제비타민> 연출을 맡은 김호상 프로듀서는 "연예인 가정을 다루긴 하지만 지엽적인 정보보다는 시청자가 실질적으로 궁금해하는 '정보가 메인'인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시청자 눈높이와 전문성 사이에 균형 맞춰야

이들 프로그램은 그 참신한 시도에도 일상생활과 동떨어지거나 전문성이 부족해 가정 경제에 실질적인 보탬이 안 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청률을 의식해 일반인과 동떨어진 연예인 가정이나 자극적인 사례 등을 눈요깃거리로 다룬다면 지금까지 다른 오락프로그램과 다를 게 없다는 것. 또 손실가능성을 배제하고 지나치게 부풀려진 수익률이나 단편적인 금융상품 정보를 무분별하게 쏟아내는 것도 크게 우려할 부분이다.

재무설계컨설팅업체 에셋비 제윤경 본부장은 "연예인 가정을 내세워 시청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보다 실제로 일반 가정에선 새고 있는 돈 찾기, 소비행동이나 낭비습관 지적 등 방송 소재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프로그램 '옥에 티'를 찾아라
전문가 뺨치는 시청자들, 방송 오류 지적

지상파방송의 경제관련 프로그램은 좀 늦은 편이다. 이미 '재테크 열풍'이 한바탕 불면서 신문이나 인터넷, 케이블방송 등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재테크 정보를 접한 전문가 뺨치는 시청자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제작진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용 자체가 오락프로그램에서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인 데다 시청률까지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금융상품이나 경제용어를 전달하려다 보니 종종 '옥에 티'가 발생한다. 돈과 연결되는 민감한 정보다 보니 시청자들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비켜갈 수 없다.

은행 직원들의 오류 지적 및 항의가 쏟아진 MBC <경제야 놀자> 복리 마술 편이 대표적. 방송에 출연한 금융전문가는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에 대한 기본 개념을 정리해 주고 나서 월 50만원씩 30년간 저축했을 때 얻게 될 예상 수익을 제시했다. 문제는 말 그대로 예상 수익일 뿐 실제 실현가능성까지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

예상수익에 대해서도 PB(프라이빗뱅커)가 아닌 창구 직원조차도 투자에 대한 이익과 손해 부분에 대해서는 보장한다거나 확정적이라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투자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거나 원금 보장이 어려울 수 있다는 위험요소를 먼저 알리는 것이 투자자를 위한 당연한 수칙이라는 지적이다.

부동산 전문가가 출연한 KBS <경제비타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8일 방송분에선 ▲중개수수료를 아껴 직거래한다 ▲귀가 얇아 남의 말만 듣고 계약한다 ▲과도한 거래로 무리하게 대출받는다 ▲모델하우스만 보고 계약한다 ▲공휴일에 계약한다 등 부동산 전문가들이 말하는 '내집마련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5가지 노하우'를 소개했다.

이날 출연한 전문가는 공휴일에 계약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관공서가 쉬기 때문에 등기부등본 등을 통한 부동산 실소유주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을 들었다.

하지만 '비타민' 시청자 게시판에는 "공휴일에도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http://www.iros.go.kr)에서 등기부등본 열람이나 발급이 가능하다"고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이 바로 올라오기도 했다.

MBC <경제야 놀자> 담당 김현철 PD는 "애초 의도는 경제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정보를 재밌게 전달하자는 것이었는데 점차 내용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공중파에서 단순 소개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 시청자들도 실제 투자시에는 반드시 전문가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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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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