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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만물상 ⓒ 박도
만물상으로 가는 길

셋째 날 이틀 밤을 묵은 숙소 해금강호텔에서 아침밥을 먹은 다음 체크아웃하고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숙소는 바다 위의 호텔로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오늘 여정은 오전 만물상 코스요, 온정각으로 돌아와서는 남녘으로 돌아간다.

아침 8시 10분, 오늘도 온정각 마당에서 현대아산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산행에 올랐다. 만물상 코스는 구룡연 코스보다 훨씬 가파르고 멀었다. 미인송 지대를 지나자 달리는 버스 양 옆으로 산봉우리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병풍처럼 이어진 봉우리들이 한 폭의 산수화로 길잡이(조장)는 관음연봉이라고 했다. 멧부리가 형형색색으로 그 모양조차도 다기다양하다. 길잡이가 나에게 관음연봉의 한 멧부리를 가리키며 무슨 동물 모양이냐고 물었다.

내가 얼른 보기에 '토기모양'이라고 했더니, 그는 정답이라고 했다. 만물상 계곡에서는 딱히 정해진 답이 없고, 보는 이의 느낌이 바로 정답이라고 했다. 만물상 계곡에는 그야말로 삼라만상의 형상이 다 있다고 한다.

삼선암
삼선암 ⓒ 박도
귀면암
귀면암 ⓒ 박도
만물상 주차장까지는 온정각에서 26㎞로 106굽이 고갯길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만물상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들어서자 곧 세 신선이 돌로 굳어졌다는 삼선암이 절의 수호신 사천왕상처럼 버텨 서 있고, 귀면암이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귀면암은 둥근 바위를 이고 있는 모습이 허수아비 같지만, 어둑한 조명에서는 험상궂은 귀신의 모양을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그곳 어귀를 지키는 해설원이 말했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오른편에는 절부암이, 왼편에는 칠층암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면서 반겨 맞았다. 그 자리를 지키는 북녘 해설원이 절부암의 유래를 들려주었다.

칠층암(왼편 바위의 파진 곳은 절부암의 아랫부분)
칠층암(왼편 바위의 파진 곳은 절부암의 아랫부분) ⓒ 박도
절부암의 유래

절부암(折斧巖)은 바위 중턱에 도끼로 찍은 듯한 깊은 자국이 있기에 붙어진 이름으로, 하늘에서 금강산으로 내려와 노는 선녀들의 모습에 매혹된 나무꾼이 자신의 사랑을 하소연할 길이 없어서 도끼로 바위를 내리찍었다.

절부암
절부암 ⓒ 박도
그런 중 어느 날, 나무꾼이 포수의 화살을 맞은 사슴을 살려주자, 목숨을 건진 그 사슴이 나무꾼에게 구룡연 상팔담 연못에 둥근 보름달이 뜰 때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는데 옷을 한 벌 감추라고 일러주었다.

나무꾼은 사슴이 이른 대로 상팔담 연못으로 가서 선녀의 옷을 한 벌 감춰 마침내 옷 임자 선녀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두 아이를 낳은 뒤 나무꾼은 사슴이 세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아내에게 절대로 옷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사슴의 말을 듣지 않고, 그만 자기가 선녀의 옷을 감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선녀는 그 옷을 몹시 입어보고 싶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나무꾼은 그 옷을 주었다. 선녀는 잃었던 그 옷을 입자마자 두 아이를 안고서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북녘의 여성 해설원 김아무개는 이어서 절부암 부리는 두더지의 모양으로, 거기에 따른 전설도 재미나게 이야기했는데, 미처 녹음도 메모도 하지 못해 노쇠한 내 머리는 끝내 되새겨지지 않았다. 다음 금강산 기행 때 다시 들어야 할까 보다.

만물상 계곡을 오르면서 전후좌우 사방을 둘러봐도 기암괴석에 아름다운 경치로 하늘의 극락도 이보다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절부암 맞은편 쉼터에서 천선대와 만물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되돌렸다. 여태껏 본 경치로만도 체할 것 같은데 더 보았다가는 아무래도 용량초과로 과부하가 될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조물주의 솜씨를 보면서 '나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반도 한라에서 백두까지 명승지는 거의 다 둘러보고, 유럽대륙도 중국대륙도 미주대륙도, 일본열도도 두어 차례나 누벼보았으니, 세상구경은 웬만큼 한 셈이다. 이만하면 복된 인생이 아닌가.

하늘이 언제 불러도 나는 억울해 하지 않으련다. 남은 인생 덤으로 생각하며 그동안 보고 들은 것들 글로 엮어서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소임으로 살아야 할까 보다.

천선대
천선대 ⓒ 박도
남행 길

온정각에서 더덕구이 백반으로 점심을 든 뒤 낮 12시 30분 남행 버스에 올랐다. 남행 셔틀버스는 올 때의 역순으로 남녘땅을 향했다. 금강산 특구를 벗어나자 다시 벌거숭이 민둥산이, 곡식이나 채소보다 들풀이 더 많은 집단농장이 펼쳐졌다. 이런 치산과 영농으로는 인민들이 춥고 배고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그 능력에 따라 제 몫을 챙기는, 자본주의 속성인 무한 이윤추구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도 큰 문제를 안고 있지만, 농작물보다 들풀이 더 많은 집단농장과 같은 생산성의 저하로 대부분 인민들이 굶주리는 사회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모든 백성들이 사람답게 골고루 다 잘 살고, 백성들이 자유를 누리면서 도덕이 살아있는 그런 사회는 없을까? 앞으로 통일된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저런 망상을 하는 새 셔틀버스는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남측출입사무소에 이르렀다.

만물상 계곡의 경관
만물상 계곡의 경관 ⓒ 박도
현대아산 휴게소에서 내 집 차를 타고 남행하는데 갑자기 도로에는 차들이 붐비고 들판에는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자꾸만 북녘에서 본 땔감을 실은 달구지와 들풀이 무성한 집단농장이 오버랩 되었다.

금강산에서 보낸 사흘, 금강산은 내 기대 이상 천하절경으로 그 경관은 지상 극락이었다. 하지만 거기로 가는 길은 아직도 철조망이 두 겹 세 겹으로 쳐져있고, 북녘의 인민들과 남녘동포는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늘은 우리나라 한반도를 금수강산으로 만들었다. 자연 경치만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모든 백성들의 삶조차도 진정한 지상 극락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하면서 2박3일 금강 기행의 나래를 접었다.

만물상 계곡의 절경
만물상 계곡의 절경 ⓒ 박도
가을빛에 젖어드는 만물상 계곡의 기암괴석
가을빛에 젖어드는 만물상 계곡의 기암괴석 ⓒ 박도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열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를 금강산 기행문 쓰는 즐거움으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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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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