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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연계곡 앙지다리에서 바라본 세존봉
구룡연계곡 앙지다리에서 바라본 세존봉 ⓒ 박도

소 떼가 뚫은 휴전선 철조망

내가 금강산의 비경을 처음 대한 것은 고교 시절 정비석의 금강산 기행문 <산정무한>과 송강 정철의 기행가사 <관동별곡>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교사가 된 후 30여 년 동안 이 두 작품을 수없이 가르쳐서 아직도 전문을 욀듯하다. 이 작품들을 가르칠 때마다 학생들에게 너희들의 신혼여행은 금강산으로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꿈같은 말을 했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1970년대 어느 해 가을, 예비군 동원훈련을 진부령 넘어 고성 00여단으로 갔다. 부대장의 특별배려로, 장교 출신 예비군들에게 그 무렵에는 민간인 출입금지구역 안에 있던 금강산전망대(지금의 통일전망대)에서 육안으로, 포대경으로 금강산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 비경에 감격한 나머지 한편의 글로 쓰고자 상황판의 지명을 메모지에 적는데 상황 장교가 달려와 메모지를 압수하고는 사상의심자로 헌병대로 연행하려 했다. 그 절박한 순간 헌병출신의 대학 선배가 헌병대장에게 변호해 줘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었다.

1980년대 말, 나의 첫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에서 주인공 한명훈이 신문사 기자로 신년 특집 머리기사에 실향민 어부가 거진 앞바다에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면서 망향의 사연을 들려주는 이야기로 설정하였다.

나는 그 부분을 쓰고자 현지 답사로 거진까지 갔다. 거기서 어선을 타고 동해바다로 나가 멀리서나마 금강산을 보려고 하였으나 거진선박출입항통제소에서 승선허가증을 얻지 못해 끝내 바다에는 나가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참고 문헌을 통해 상상으로 해 뜨는 아침의 금강산을 묘사한 바 있다. (소설 속에서는 어선을 타고 바다에 나가서 취재한 걸로 하였음)

구룡연 계곡의 옥류담
구룡연 계곡의 옥류담 ⓒ 박도

휴전선 155마일에는 철조망이 두세 겹 철옹성처럼 둘러쳐지고 사슴 한 마리 넘나들 수 없다. 이 비정, 비극, 원한, 단장의 선 DMZ 철조망을 뚫은 것은 한 실향민이 몰고 넘는 소 떼였다. 강원도 통천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시절 죽도록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었다. 배고픈 농촌생활이 진저리나게 싫어서 가출했다. 철도 공사판에서 고된 일을 하는데 꼬박 30리를 걸어온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배고픈 생활의 연속이라 얼마 후 소 판 돈 70원을 몽땅 훔쳐들고 서울로 튀었다.

그 소년이 기업인으로 성공하여 1998년 6월 16일, 소 일천 마리를 몰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마침내 철옹성 같은 휴전선 철조망도 감동하여 뚫렸다. 소 한 마리를 일천 마리로 만들어 금의환향한 인간승리의 드라마였다. 이는 모든 겨레를 울려 마침내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행 바닷길이 열리고, 2003년 2월 21일 금강산 육로 시범 버스가 휴전선 철조망을 넘었다. 어느 정치인이 못한 일을 그는 해냈다. 그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으로 시대의 영웅이었다.

만물상 계곡
만물상 계곡 ⓒ 박도
군사분계선을 넘다

13:30, 현대아산휴게소에서 금강산관광증을 교부받아 목에 걸었다. 타고 온 차는 주차장에 두고 셔틀버스로 민통선을 지나 남측 출입사무소에 이르렀다. 내 나라 내 조국이지만 두 개의 정부가 엄연히 존재하기에 출국수속을 받아야했다.

유럽 기행 중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스위스에서 독일로, 벨기에로, 국경을 넘나들어도 자유롭게 통과하면서 같은 내 나라를 빤히 보고도 마음대로 가지 못한 분단의 현실을 얼마나 슬퍼했던가. 하지만 이나마 금강산을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좀 더 느긋하게 참고 기다리자. 곧 열차로도 갈 테고 내 차를 타고도 가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목에 관광허가증도 달고 다닐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15:00, 현대아산 금강산 전용관광버스를 타고 마침내 북행길에 올랐다. 일제 때 건설하다가 중단한 동해북부선 철길이 이미 완공되어 개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양양~원산 간을 달릴 예정이라고 한다.

15:10, 남측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다. 15:12,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다. 원한의 군사분계선은 정작 요란치도 않고 낡은 시멘트 기둥만 서 있었다. 15:14, 북측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다. 드디어 북녘 땅에 이르렀다.

구룡연 옥녀봉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은사류로 가느다랗고 긴 은실 같이 고운 물줄기다.
구룡연 옥녀봉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은사류로 가느다랗고 긴 은실 같이 고운 물줄기다. ⓒ 박도
북측 출입사무소 앞에서 수속을 밟고자 차에서 내렸다.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한들한들거렸다. 공기가 상큼 상쾌했다. 이미 지난해 평양공항에서 느낀 바지만 북녘 땅이 남녘땅과 똑 같음에 새삼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 세월 남과 북은 다르다고 얼마나 세뇌교육을 받았던가.

중국 항일유적답사 중 하얼빈에서 만난 한 조선족 역사학자가 말했다. 당신이 고향에 갔더니 손자뻘 되는 녀석이 자기를 뚫어지게 봐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 뿔 안 나셨네”라고 하여 쓴 웃음을 지었다는 일화를 들은 바가 있었다.

우리는 지난 세기 같은 동족끼리 서로 다른 외제의 총을 들고서 미움의 세월을 산 못난이들이었다. 서로 다투어 동족을 ‘괴뢰’라고 헐뜯는 이가 애국자로 나라를 좌지우지하였다. 아직도 그런 극우․극좌 세력이 잠복하고 있다. 언제 다시 활개 치면서 다시금 야만의 시대로 되돌릴지 모른다.

북녘 땅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김일성 주석 초상화와 정치구호였다. 아니 북측 출입사무소의 북녘 관리들의 가슴에서부터 김일성 주석은 웃고 있었다. 평양에서도, 두만강 남양에서도, 압록강 신의주에서도, 모든 국경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김 주석 초상이어서 이제는 생소하지 않았다.

여기가 바로 지상 극락이 아니겠는가

금강산 전용관광버스를 탄 뒤부터 조장(관광안내원)이 마이크를 잡고서 알뜰하게 언저리 지형 설명을 했다. 그는 군사분계선 북측의 벌거숭이 민둥산을 이야기하면서 금강산 일대의 산은 토질이 나빠서 나무가 자라지 못해 그렇다고 애써 강조했다. 그렇다면 거기서 부르면 대답할 거리에 있는 금강산도 민둥산이라야 하지 않은가.

장전항에서 바라본 외금강
장전항에서 바라본 외금강 ⓒ 박도

조장의 말에 이의를 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관광객들은 북녘의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헤아림인가 보다. 지난해 묘향산을 갈 때 곁에 앉은 안내원은 벌거숭이 민둥산을 미제 탓으로 돌렸다. 그때 나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여년이 지나 남녘도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던 게 지금은 삼림이 우거졌다고 해도, 그는 미제 폭격으로 그동안 풀 한 포기 살 수 없어서 아직도 그렇다고 우겼다.

사실은 남녘도 20~30년 전만해도 북녘 이상으로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연탄 전기 가스가 보급되면서 나무를 땔감으로 쓰지 않자 산이 저절로 푸르러진 것이다. 압록강 변에서, 두만강 변에서, 묘향산 가는 길에서 본 북녘의 산은 대부분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어린 시절 벌거숭이 민둥산에서 나무를 해본 나로서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배가 몹시 고픈데도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는 그 자존이 가상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눈물겹다. 몹시 아픈 마음으로 차창 밖 민둥산을 두리번거리는 새 버스는 마침내 금강산 관광특구로 들어섰다.

금강산 호텔 옥상에서 바라본 외금강 온정령 일대
금강산 호텔 옥상에서 바라본 외금강 온정령 일대 ⓒ 박도

운무 속에 금강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 금강산! 그 얼마나 그리던 내 조국 금강인가. 일찍이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願生高麗國一見金剛山)”이라고 하며 그 절경을 경탄하였다고, 어느 화가는 “금강산의 경치는 상상을 초월한 산수화로, 내 머리로써는 도저히 구상할 수 없는 한 폭의 산수화”라고 그 신묘한 경치에 넋을 잃었다는 말도 전해 오고 있다.

금강산은 천하명산으로 그 이름도 많다.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으로 불리며 이밖에도 열반산, 지달산, 중향산 등의 별칭이 있다.

우리 내외의 숙소는 해금강 호텔로 장전항 포구 바다 위에 있었다. 여장을 풀고는 곧장 온정리로 가서 보리밥 저녁을 먹었다. 식후에 금강산호텔 옥상에서 사방의 금강산을 조망하고는 거기서 멀지 않는 금강산온천장으로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노천탕에 몸을 담그자 날아갈 듯 상쾌했다.

외금강 비로봉 세존봉, 채하봉 등 숱한 멧부리가 병풍을 치듯 온천장을 두르고, 하늘에는 별들이 우수수 쏟아질 듯 영롱하다. 따끈따끈 새맑은 무색 무취의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사방의 산봉우리를 둘러보다가 밤하늘을 쳐다보는데 상현달이 동녘하늘에서 지긋이 미소를 보낸다.

온천수로 온몸이 따습고, 보리밥으로 배부르며, 공기가 더없이 맑으며, 경치가 못내 좋으니 여기가 바로 지상 극락이 아니겠는가. 극락에서의 첫날밤이 실비처럼 푸른 달빛 속에 스멀스멀 깊어갔다.

온정리에서 바라본 외금강 멧부리들
온정리에서 바라본 외금강 멧부리들 ⓒ 박도

운무에 싸인 고성읍
운무에 싸인 고성읍 ⓒ 박도

구룡연 계곡의 멧부리들
구룡연 계곡의 멧부리들 ⓒ 박도

구룡연 옥류계곡, 유리조각 하나 볼 수 없는 거의 완벽한 청정 골짜기다.
구룡연 옥류계곡, 유리조각 하나 볼 수 없는 거의 완벽한 청정 골짜기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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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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