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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아버지가 워낙 김치종류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엄마가 하시는 김치의 종류는 갓김치, 동치미, 고들빼기, 백김치, 알타리, 깍두기, 배추김치 등등 여러가지이다.

솜씨도 좋으셔서 엄마의 김치는 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아서 우리집 김장은 어느 집보다 늘 많이 담았다. 자녀들이 출가하고 난 뒤에도 우리들 김장까지 해주시곤 하여 겨울철만 되면 아버지와 엄마는 김장을 하시는 것이 큰 행사였다.

먼저 물고추를 사다가 말리시고 그것을 일일이 행주로 몇 번을 닦으시고는 꼭지를 따고 가위로 배를 가르고 곱게 갈았다가 김장철이 되면 빛고운 태양초로 김장을 담아 자식들에게 나눠주곤 하셨다. 노년에는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그 즐거움이 크셨는지 김장을 하시고는 김치 가져가라고 전화를 하시는 목소리가 무척 즐겁다.

엄마보다는 특히 아버지가 더 즐거워하셨다. 엄마가 점점 기운도 딸리시고 거기에 허리디스크로 고생하시고 무릎수술을 하게 되면서는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김장김치 행사는 오래 전에 끝났지만 노년의 아버지는 그 후에도 자식들을 위하여 작은 텃밭을 구해서 고추나 상추, 호박 등 야채들을 가꾸셨다가 우리가 친정에 가면 엄마에게 싸주라고 하시곤 하여 풋고추나 가지 등 야채를 싸가지고 오기도 했다.

두 분 다 도시분이라 농사를 지으신 경험이 없는데 아버지가 텃밭을 사서 농사를 지을 때 우린 그 텃밭을 아버지가 소유하신 유일한 땅이었기에 아버지의 땅이라고 불렀다.

몇년 전 아버지가 가꾸시던 텃밭의 모습. 아버지의 땅이라고 기념으로 찍어 놓았지요.
몇년 전 아버지가 가꾸시던 텃밭의 모습. 아버지의 땅이라고 기념으로 찍어 놓았지요. ⓒ 이은화
텃밭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눠주는 것도 부족하셨는지 아버지는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산에도 다니시면서 산밤을 잔뜩 주워 모았다가 우리에게 주시곤 했는데 잘잘한 산밤을 누가 먹겠냐고 애들 백화점에서 좋은 거 잘 사다 먹을테니 힘들게 애써 주워오지 말라고 엄마가 만류를 해도 아버지는 기어코 산밤을 주으러 산에 다니셨다.

건강하셨을때의 아버지 늘 이 차림으로 산밤을 주으러 산에 가시곤 했습니다.
건강하셨을때의 아버지 늘 이 차림으로 산밤을 주으러 산에 가시곤 했습니다. ⓒ 이은화
어떤 때에는 우리도 아버지가 주시는 잘잘한 산밤을 버거워할 정도였다. 그래도 아버지의 즐거움이었기에 나는 주시는 대로 다 받아왔다. 아이들에게 삶아 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벌레 생기고 썩어서 버리기도 하였다. 그때는 무척 죄송스런 맘이 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주는 대로 결국 버리게 되면서 다 받아오는 나를 질책하기도 했다. 다른 언니들은 집에 밤이 있어서 안 가져가도 된다고 하고 안 가져 가는데 나마저 안 가져가면 아버지가 서운해 하실지도 모르고 아버지의 즐거움이라서 받아 오는 것이라고 말을 했더니 남편이 그러면 되도록이면 버리지 않도록 여기저기 나눠주기라도 하란다.

실은 누구에게 나눠주기도 미안할 정도로 작은 밤들이라서 주지 못하고 있던 것인데 버리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잔뜩 삶아 놓고는 가게에 엄마랑 함께 오는 꼬마들에게 한웅큼씩 주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마저도 몇 년 전 이야기이다.

따르릉~.
어제는 아침 일찍 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물론 수족을 못쓰시는 아버지라서 엄마가 대신 걸어주시는 것이지만 얼마나 마음이 급하셨으면 아침에 전화를 하셨을까.

다른 딸들하고는 아침에 전화통화를 하셔도 밤늦게까지 장사하고 늦게 들어가는 딸이라고 곤히 자는 딸의 아침잠 깨울까봐서 나에게만은 아침전화를 안하시 분이다. 깜짝놀래서 "아버지 어쩐 일로 이른 시간에 전화를 하셨어요?"하고 여쭈니 아버지가 아주 밝고 기쁜 목소리로 말씀을 하신다.

"그래, 기쁜 소식이 있어서 전화했다. 어제 말이다. 니 엄마가 고추를 심었는데 그게 다 자라서 빨간고추가 되었거든. 그거 다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다 빻아왔다. 어제 큰언니도 왔다 갔는데 엄마가 큰언니에게 한 20근 주었다. 그리고 너도 가져가라~!"

어눌한 목소리도 더듬더듬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나는 엄마가 고추를 사다가 말려서 고춧가루로 만들어 놓으셨나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 '아버지 간병하느라 힘드신 분이 언제 그 힘든 일을 하셨을까?'하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불현듯, '아참, 울아버지 지금 또 꿈꾸시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긴가민가하면서 아버지에게 "올 겨울 김장 담궈먹어야겠네요. 엄마가 주시는 고춧가루로 맛나게 해먹을게요!" 하고 말씀을 드리고 엄마를 바꿔달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가 웃으시면서 "아버지가 하루 사이에 고추씨 뿌려 모종내고 옮겨심고 고추가 주렁주렁 달리더니 어느새 고춧가루로 변신하여 마침 어제 집에 들른 큰언니도 20근 가져갔다. 너희들한데 20근씩 나눠주라고 하시니 너도 가져가라!"하신다.

다시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하고는 아버지에게 "조만간에 고춧가루 가지러 갈게요~!"하고 전화를 끊고나니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다. 아버지의 사랑은 이렇게 자식들에게 무엇이든 자꾸 주고 싶었던 것으로 표현을 하셨다. 특히 나에게는 더욱 그러하셨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나서 이제는 그마저도 없는 추억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꼼짝 못하고 누워계시면서도 이렇게 고춧가루를 나눠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눈물마저 핑돈다.

한쪽마비로 인하여 전혀 기동을 못하시고 누워서 지내시는 아버지.
한쪽마비로 인하여 전혀 기동을 못하시고 누워서 지내시는 아버지. ⓒ 이은화
"아버지, 겨울에 아버지가 주신 고춧가루로 김치 맛있게 담궈가지고 갈테니 꼭 맛을 보셔야 해요! 그러실 수 있으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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