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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영종도에서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작년 영종도에서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 이은화
그때 조개구이를 맛있게 드셨던 아버지는 종종 조개구이가 먹고싶다고 말씀을 하셔 가끔은 인천 연안부두에서 조개를 사서 친정집으로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아버지와 전화통화중에 또 조개구이가 생각이 난다고 하시기에 "아버지, 봄이에요. 올해도 꽃구경 가야지요. 꽃구경 가서 조개구이도 사드릴게요. 그러니깐 운동도 열심히 하세요. 못 걸으시면 안 갈 거에요"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걱정 말라 하시면서 지금도 막 뛰어다닌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면서 1년 전보다 더욱 기력이 떨어지셔서 거의 자리보전하고 계십니다. 그런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라면 저와 매일 전화통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정집에는 전화번호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저와 아버지 전용입니다. 아버지 침대 옆에는 저와 전화통화할 수 있도록 전용전화기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전화 드릴 시간에 전화가 안 오면 어김없이 아버지가 전화를 하십니다.

지난 겨울 엄마가 아주 걱정스럽게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조금 이상해지셨다고 하시면서 느닷없이 전화기에서 커피를 뽑아달라고 하시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다가 음식 먹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안 주고 저들끼리 먹는다"고 푸념도 하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바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MRI검사를 받았는데 알츠하이머 초기인 것 같다고 진단을 받아 약을 드셨습니다. 아버지와 더욱 대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 하루에 한 번 드리던 전화를 매일 두 번 세 번 드렸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당신도 신경을 쓰고 계셔서인지 더는 나빠지지는 않았습니다. 식욕도 조금씩 나아지셨습니다.

아버지의 입맛을 찾아드리기 위해 우리 자식들은 수시로 먹을 것을 사들고 친정으로 번갈아 찾아갔습니다. 멍게가 드시고 싶으시다면 제가 멍게를 사들고 찾아가고, 회가 드시고 싶으시다면 큰언니가 사들고 찾아갔습니다. 최근에는 막내 여동생이 친정부모님 모시고 나가 장어를 사드렸고,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남동생은 매일 시장에 들러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헤매 아버지의 입맛을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매일 전화통화중에도 오늘은 무엇을 드셨는지 소화는 잘되시는지 드시고 싶으신 것은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그러던 지난 목요일. 아버지 저녁식사가 끝날 시간이 되어 전화를 드리려고 하는데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집사람이 울면서 전화했는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놀라서 얼른 집으로 전화를 하니 올케가 전화를 받습니다.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어수선합니다. 마침 119차가 도착해서 아버지를 응급처치하고 병원으로 이동을 하려고 준비중이었나 봅니다. 아버지가 다니시는 병원으로 가실 거라는 말만 듣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일단 언니들하고 여동생한테 연락을 취하고 저도 부리나케 가게 문을 닫고 남편과 함께 달려갔습니다. 달려가는 도중에 구리쪽 병원에서 다시 서울 한양대병원으로 이송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방향을 바꿔 한양대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이미 한쪽에 마비가 왔고 3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할 약은 아버지에게 지금 적합하지 않다고 해 포기하고 CT 촬영과 기타 혈액검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정신은 있으신데 이미 한쪽이 마비가 되어있어 아버지의 얼굴 표정이 두려움과 걱정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그 옆에 서 계시던 엄마도 놀란 가슴에 얼굴마저 붉게 상기가 되어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만 찾으십니다. 아버지는 소변도 자제할 수 없어 이미 옷을 버리셨는데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나 봅니다. 오줌을 싸신 아버지 옆에 서 있기가 참으로 죄송했습니다. 워낙 깔끔하시고 점잖으셨는데 자식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기가 얼마나 난감하시고 속상하실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엄마가 아버지의 옷을 갈아 입혀드리고 난 뒤에도 이 검사실 저 검사실로 다닐 때마다 옆에 엄마가 안 보이면 찾으십니다. 엄마가 보고 싶으시다고 말씀을 하시고 엄마에게는 나 때문에 당신 고생하네 하시면서 어눌하지만 마음을 자꾸 나타내십니다. 엄마의 눈가에 눈시울이 맺힙니다.

모든 검사가 끝난 뒤 의사가 우리 식구 모두를 부릅니다. 작은언니네만 못 오고 세 자매와 사위들 그리고 남동생을 모이게 한 다음 의사가 설명하는데 뇌경색과 심근경색이 급성으로 왔는데 부위가 제법 크다고 하면서 지금으로서는 예후가 별로 좋지 않은데 치료중에라도 돌아가실 수 있다고 하면서 지금 여기는 중환자실이 비어 있지 않으니 다른 병원 중환자실이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눈물밖에 안 나옵니다. 우리 모두 침울했습니다. 의사가 병원을 알아볼 동안 각자 몰래몰래 울었습니다. 남동생하고 같이 휴게실에 앉아있다가 남동생이 우는 바람에 나도 또 울었습니다.

의사가 여기저기 알아보니 건국대병원에 마침 중환자실이 있다고 하여 어제 아침에 건국대병원으로 옮기셨습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시니 면회시간 외에는 면회를 할 수 없습니다. 아침과 저녁 두 차례 면회 시간에 아버지를 보고 나올 뿐입니다.

잠시만 엄마가 안 보이셔도 엄마를 찾으시는 아버지가 지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실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아버지, 제발 고비만 잘 넘기세요! 아버지가 걷지 못하셔도 휠체어로 모시게 된다 해도 아버지랑 함께 올봄에도 꽃구경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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