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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서울 교육청 앞에서 열린 동일학원 파면 교사들의 기자회견.
ⓒ 나영준
동일학원 사태의 끝은 무엇일까.

지난 25일 서울시 교육청 앞. 재단비리를 외치다 파면 된 조연희(42), 박승진(48), 음영소(48) 등 3인의 동일여고 전직 교사들은 다시 한 번 임시이사 파견을 외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교육청의 반응은 요지부동이었다.

학교 측의 반응도 강경하다. 오히려 이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님들의 복직서명을 하자는 문자메시지가 돌자 휴대폰을 강제 수거해 조사를 벌였다. 지난 16일 일요일 아침에는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만일 탄원서에 서명할 경우 법정에 불려갈 수 있고 학생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고 위협까지 했다.

혹시 만에 하나 학교 측 주장대로 이들 교사의 주장이 신빙성 없거나 자의적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졸업생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5일 오후 6시, 전교조 동일여고 분회실. 백미령(23·단국대 과학교육), 황지영(23·부산교대 수학교육), 이향주(26·대학원 재학), 신선미(26·학원생) 등 4명의 동일여고 졸업생을 만났다.

"반장하려면 돈 내야... 못 내면 '돈도 없는 게' 소리 들어"

▲ 동일여고 졸업생들. 백미령·황지영·이향주·신선미씨(맨 왼쪽부터).
ⓒ 나영준
[기사수정 : 8월 3일 오후 2시]

바로 왼쪽 백미령씨의 말로 처리된 부분 중 일부 표현을 백씨의 확인을 거쳐 바로잡습니다.

애초 문장은 ""같은 재단의 동일여중 1학년 때 반장을 했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반장이면 돈을 내야한다고 했다. 집안 형편도 어렵고, 어머니가 돈을 내기가 힘들다고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바로 내 앞에서 찢어 버렸다. 그날부로 반장을 그만두어야 했던 건 물론이다. '돈도 없는 게 버르장머리도 없다'는 이야기를 1년 동안 들어야 했다." 입니다. / 편집팀
- 졸업생이나 재학생들이 남긴 글을 보면(dong1.net) 학교 측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실제 다녔던 이들로서 이야기를 들려 달라.
백미령 "같은 재단의 동일여중 1학년 때 임시반장을 했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반장이 되려면 학교에 돈을 내야한다고 했다. 집안 형편도 어렵고, 어머니가 돈을 내기가 힘들다고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그런데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이 그 편지를 바로 내 앞에서 찢어 버렸다. 정식 반장도 하지 못했던 건 물론이다. '돈도 없는 게 버르장머리도 없다'는 이야기를 1년 동안 들어야 했다."

이향주 "동일학원에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불러 돈을 요구하는 일은 '원래 그러려니' 하는 일이었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누구도 그랬대? 어차피 그렇잖아"라고들 이야기를 했다. 교사를 했지만(현재는 대학원생) 고등학교 땐 선생님이 되어선 절대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신선미 "선생님들도 복장지적을 받았다. 염색하지 말 것, 손톱 기르지 말 것, 어떤 어떤 옷은 입지 말 것 등등. 교사들도 인권침해를 당하는구나 싶었다."

이향주 "이상했던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나중에는 '여기는 원래 이런가 보다'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다. 문제의식이 흐려진다고 할까. 토요일 날 다른 학교 학생들이 모두 집에 갈 때도 우리는 전교생이 한 시간 동안 마룻바닥에 왁스칠을 해야만 했다. 왜 하는지 이유도 없었다. 당시 얼마나 배가 고프던지(웃음)."

동일학원에선 한 학기에 한 과목 선생님이 최대 7번까지 바뀐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수업도 질적으로 형편없었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백미령씨는 "기술산업 선생님이 없어 음악 교사가 가르치기도 했다"며 "나중엔 '부당하기 보단 웃기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어이없는 일은 여럿 있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버스 대여료가 아깝다며 버스 통로에 의자를 놓고 두 개 반을 한 버스에 밀어 넣기도 했고, 학생 생활관 용도로 만들어진 건물이 이사장의 사택으로 쓰이기도 했다.

또 졸업생들은 겨울이면 추위에 덜덜 떨었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입을 모았다. 난방기 작동 기준이 영하 3도였기 때문이다.

곁에 있던 박승진 교사는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남자 교사들의 화장실 청소를 민감한 시기의 여학생들에게 시켰던 일"이라며 분해하기도 했다.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찾아낸다는 명분으로 화장실문의 잠금장치를 없애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떠나야 할 교사들은 남고, 남아야할 교사들은 떠난 학교

▲ 전교조 동일여고 분회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동일여고 재학생, 졸업생이 남긴 응원 메시지.
ⓒ 나영준
- 파면을 당한 조연희·박승진·음영소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이들이 당한 처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황지영 "현재 파면 당하신 선생님들 모두에게 수업을 들었다. 항상 수업에 열정적이셨다. 스스로도 선생님들의 수업시간엔 무언가 배우려는 의욕에 넘쳤다. 이과였지만 조연희 선생님의 국어시간이 기다려졌고 음영소·박승대 선생님의 체육시간은 힘든 입시를 견디게 해 주었다."

백미령 "나는 현재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중이다. '이런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했던 선생님들은 모두 파면 당하셨다. 그런 분들이 모두 전교조 소속이시다. 반면, '저런 선생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느끼게 한 이들은 잘 남아있다(웃음). 그나마 전교조의 선생님들이 계셔 민주화가 진행된 것이 느껴졌는데……."

신선미 "조연희 선생님의 경우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고 실력도 인정 받으셨던 훌륭한 분이다. 수업도 '밑줄 치고' 식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니' 방식 이었다.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요시 하셨다. 재학생들이 혹시 '저런다고 세상이 바뀌나'라고 생각할까봐 겁난다."

백미령 "재학생들은 힘들 것이다. 우리 때도 그렇고 재단 측 선생님들이 '너희들 모이면 죽어'식으로 윽박질렀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이 힘을 보태려면 우선은 당시 학생회 간부들이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 손으로 학생회장을 뽑아본 적도 없고. 반장을 하든 뭘 하든 돈을 내고 학교 측의 인정을 받았던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

황지영 "여러 보도를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 막말하는 댓글에도 상처를 입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쉽게 단정들을 하다니. 학교에서 뵈어야 할 분들인데 이렇게 학교 밖에서 만나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다른 졸업생들도 모두 안타까워하고 있다."

신선미 "졸업생들이 이 부당한 현실을 깨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졸업한지 6년이 지났어도 학창시절 '왜 여기는 이렇게 할까'하는 느낌을 가졌던 걸 지울 수가 없다. 학교에 오는 것이 무척 싫었다. 어린 눈에도 재단 쪽에 기울어 어깨에 힘이 들어간 분들이 보였다."

"세 분 선생님, 복직됐다는 기사 보고싶다"

▲ 파면된 스승과 그들의 제자들.
ⓒ 나영준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신선미 "몇 사람의 신분보장이 아닌 큰 틀이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학교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걸 죄송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진실의 힘을 떠올린다. 세 분 모두 끝까지 용기 잃지 않으셨으면 한다."

이향주 "좋은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셔서 너무 가슴 아프다. 비단 우리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학들도 각성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의 결사반대가 사학법 개정을 발목 잡았다. 우선 선생님들이 잘되셨으면 좋겠다. 사학법은 다시 개정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대전제 앞에서 사학만 다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황지영 "선생님들이 학교로 돌아가신다는 기사를 접했으면 좋겠다. 선생님들의 행동은 학교보다는 학생들을 위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가 학생을 위하는 마음을 조금만 가졌으면 한다."

백미령 "세 분 선생님들 때문에 교사라는 직업을 우러러봤고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사를 준비중이다. 잘잘못을 떠나 학생들이 인정하고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학교에서 받아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찾고 싶은 모교, 보고 싶은 선생님들이 계시는 모교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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