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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비 제막식 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박완규 전 이장.
공적비 제막식 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박완규 전 이장. ⓒ 안서순

충남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마을 입구 삼거리에 오석으로 만든 비(碑) 하나가 세워졌다. 21일 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이 비는 3대에 걸쳐 마을 이장일을 맡아온 박완규(70)씨 집안을 기리기 위한 '공적비'다.

‘이장’이라면 별스런 직책도 아닌데 공적비라니 좀 생뚱맞다. 게다가 시대가 어떤 때인데 그런 걸 세우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도‘공적비’가 선 내력를 듣고 보면 대번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씨네는 할아버지(박태화), 아버지(박병철)와 박씨가 3대에 걸쳐 100여년 동안 이장직을 맡아 마을 발전에 헌신적인 역할을 해왔다. 높이2m 19㎝, 가로 90㎝ 크기의 공적비에는 3대가 마을 이장직을 맡아 95년간을 봉사해온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다.

박씨의 할아버지는 191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 10년간, 아버지는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23년 동안 이장일을 했고, 박씨는 1966년부터 올 1월까지 40년 동안 이장일을 해왔다.

서산시 관계자는 “3대에 걸쳐 이장을 맡아 하는 집안은 흔하게 있을 테지만, 100년 가깝게 같은 집안에서 이장을 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박씨가 올 1월 이장을 그만 두었다. 서산시 조례에 이장 정년이 70세라서 그만두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정년퇴직한 셈이다. 박씨는 1966년 군 제대 후 고향에 돌아와 주민들의 간청에 못 이겨 1년만 맡는다는 게 ‘1년만 더, 1년만 더 하는’ 강권에 못 이겨 40년을 이장으로 살았다.

박씨는 “마을일 맡아 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5년 전 마을 주민들과 함께 60여일 동안 삽과 곡괭이만으로 8㎞ 떨어진 이웃마을인 수당리까지 도로를 뚫고 곧바로 이 길을 통해 시내버스가 운행되도록 한 것”이라며 웃었다.

박씨는 “마을 이장이 무슨 큰 벼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장일을 하는 동안 특별하게 잘한 것도 없어 만류했으나 마을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세워줬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연신 공적비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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