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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마을이장일을 해오고 있는 박완규씨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마을이장일을 해오고 있는 박완규씨 ⓒ 사진제공 서산시청 공보실 정명국
충남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이장인 박완규(71)씨는 41년째 '원평리 이장'일을 해오고 있다. 박 이장은 전국 최장수 이장이다.

그는 1965년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마을사람들이 어거지로 떠맡겨 "한 번만 하고 그만두어야지 하던 것이 40년 넘게 해왔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에 앞서 그의 조부와 부친도 마을 이장일을 각각 33년과 28년간 맡아왔다. 3대가 이장일을 한 것을 합치면 102년이나 된다.

박씨 3대가 100년 넘게 마을 이장일을 해오게 된 것은 11대 450여 년간 뿌리박고 산 토박이란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집안 특유의 가풍이 더 컸다고 마을사람들은 귀띔했다.

"그늬는 자기집 벼가 수해로 쓰러졌는데도 남의 논에 벼부터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늬(박이장) 으르신네(부친)도 그랬고 할아버지도 그랬대요."
"박이장 말은 법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그가 하는 일과 말은 어디 한 곳 치우는 법 없이 공평하거든요."

마을사람들이 한사코 그 집안에 '마을일'을 맡기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이장을 맡은 그 시절만 해도 '원평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인 여건으로 인해 변변한 농토마저 제대로 없어 마을은 가난에 찌들고 마을사람들은 농한기만 되면 도박으로 날을 지새웠다.

한해 겨울을 나면 마을에서 2-3가구가 '도박 빚'으로 인해 야반도주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장이 된 박씨가 가장 처음 한 일이 '도박 소탕'이었다. 그는 도박판이 벌어졌다는 말만 들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똥지게'를 지고 찾아가 그 판에 똥바가지 세례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외려 그가 몰매를 맞는 등 봉변을 당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사람들이 그의 일에 동조했고 마침내 마을에서 도박이 사라졌다.

박 이장이 '재임'중 가장 보람 있게 여기는 일은 1980년 원평리에서 이십리(8㎞) 떨어진 수당리까지 60일 동안 장비 하나 없이 순전히 두 마을 주민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마을 안길을 닦아 시내버스가 들어오게 한 일이다. 그 일로 인해 서산 시내에서 운산면 소재지, 원평리를 거쳐 수당리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가 이장 노릇을 처음 할 때는 비료는 물론 석유까지 집집마다 배당을 해야 했고 1년이면 수십 차례에 걸쳐 각종 잡종금을 걷으러 집집마다 돌아다녀야 했다. 그때만 해도 이장 수당은 5-6개의 신문지대를 충당하는 정도였고 마을주민들이 갹출해 주는 벼 3-4가마 정도되는 '이장 조'가 전부였다.

이장 몇 년만 보면 빚더미에 올라앉아 모두 기피하던 때였다. 게다가 1년이면 30여 일 이상 마을사람들을 '도로부역' 등 행정기관에서 벌이는 각종 사업에 동원시켜야 하는 악역까지 감당해야 했다.

박 이장은 "예전에 비해 지금 이장이야 얼마나 편합니까. 잡종금을 걷으러 다니길 하나, 부역 독려를 하나, 행사동원을 시키나 그런데도 이 일을 하려 하지 않아요"하며 씁쓰레했다.

그가 이장을 보던 41년 동안 마을도 많이 변했다. 130가구에 600여명이나 되던 마을이 무려 50가구가 줄어든 80가구에다 인구도 230여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됐다. 60년대에는 기와집이 한두 채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금은 거의 현대식 양옥으로 집집이 번듯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농촌은 겉보기만 좋아졌을 뿐 속은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박 이장은 급속한 발전이 오히려 농촌지역을 병들게 했다고 생각한다. 마을 인구가 60년대에 비해 절반 이상으로 준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마을 인구 평균 연령이 6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 이는 희망이 없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올해 마을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단 1명에 그치고 그나마 내년에는 한 명도 없거든요. 사람 사는 곳에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 아닌가요."

박 이장은 농촌이 제대로 돼야 희망이 있다고 굳게 믿는 60년 농군이기도 하다. 박 이장은 올해 12월말로 퇴임한다. 이장도 연령제한이 있어 70세가 넘은 그는 퇴직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젠 더 젊은 사람이 맡아 '마을발전'을 위해 일해주길 강력히 바라며 한사코 더 이상은 하지 않겠다고 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그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가 이장일을 계속해야 한다며 그의 결심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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