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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선암마을에 있는 한반도 지형...
영월 선암마을에 있는 한반도 지형... ⓒ 문일식
강원도 영월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역사적으로 한과 슬픔을 간직한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과 장릉으로 가는 소나기재 넘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날카롭게 우뚝 선 선돌, 그리고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만들어내는 청령포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감탄사는 절로 넘칩니다.

조선 제 6대 왕이었던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뺏기고 짧은 생을 마감했던 곳이기도 하고, 할아버지를 비난한 죄책감으로 방방곡곡 정처 없이 떠돌던 김삿갓으로 알려진 난고 김병연이 묻힌 고장이기도 합니다.

김삿갓 계곡의 맑은 계류...
김삿갓 계곡의 맑은 계류... ⓒ 문일식
영월시내에서 88번 지방도를 타면 동강을 따라 고씨동굴을 지납니다. 수려한 경관을 만끽하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고갯길에 이릅니다. 이 고개는 와석재라 불리는데 김삿갓 계곡을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입니다. 영월 시내에서 20여km를 가다보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을 가진 계곡입구가 나타납니다. 바로 김삿갓 계곡입니다.

흔히 '방랑시인'이라 일컫는 난고 김병연이 방랑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고, 죽어서 묻힌 곳입니다. 청정한 계곡 물이 흐르는 이곳 계곡 이름도 그의 이름을 빌어 김삿갓 계곡이라 부릅니다. 예전 TV에서 구름 위를 저벅저벅 걸으면서 허허허 웃는 '김삿갓'이라는 소설 CF가 문득 생각납니다.

김삿갓 유적지에 있는 김삿갓 조형물...
김삿갓 유적지에 있는 김삿갓 조형물... ⓒ 문일식
조선 순조때 홍경래의 난이 발생합니다. 김병연의 할아버지이자 당시 선천부사로 있던 김익순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투항하게 되고, 조정에서는 그 죄를 물어 그를 죽이고, 폐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가족들은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고, 김병연은 나이 20세 때 영월 동헌에서 개최된 백일장에 참가해 장원을 하게 됩니다. 백일장의 시제가 "정가산의 충절을 논하고, 김익순을 탄하라"였는데 당시 젊은 김병연은 김익순에 대한 추상같은 비난을 퍼붓게 됩니다.

장원하고 난 뒤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고, 자신의 할아버지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탄핵한 죄책감으로 방랑 길에 오르게 됩니다. 전국을 떠돌며 방랑생활을 한 김병연은 전남 화순 동복에서 5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의 차남이 유해를 옮겨 영월에 장사를 지내게 됩니다.

김삿갓 계곡을 따라 도로가 끝나는 곳에 이르면 난고 김병연 선생 유적지에 이릅니다. 그의 현란한 방랑생활은 그가 남긴 많은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병연의 묘역에 오르는 길에는 그가 남긴 많은 시와 시를 연상케 하는 조형물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시를 한 수 한 수 들여다보고 가노라면 방랑생활의 고단한 삶과 해학과 풍자가 차고 넘침을 느낍니다. 그의 시중 방랑생활의 고단함과 풍속의 야박함을 일러주는 시가 한 수 있습니다.

김삿갓의 시 '야박한 풍속'을 상징하는 조형물...
김삿갓의 시 '야박한 풍속'을 상징하는 조형물... ⓒ 문일식
석양에 사립문 두드리며 멋쩍게 서있는데
집 주인이 세 번씩이나 손 내저어 물리치네.
저 두견새도 야박한 풍속을 알았는지
돌아가는 게 낫다고 숲속에서 울며 배웅하네.

(야박한 풍속(風俗薄)


문전박대라는 시와 함께 난고 김삿갓 문학관 앞 광장에 시와 어울리는 조형물이 함께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전박대 당했던 굳게 닫힌 대문이 서 있고, 그 앞에는 인적 없이 봇짐과 짚신이 놓여져 있습니다. 홀로 서 있는 대문은 문전박대 당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고, 앞에 놓여진 봇짐과 짚신은 야박함에서 오는 처절함과 오갈 데 없는 자신의 신세를 표현해 놓은 듯하여 마음을 씁쓸하게 했습니다.

김삿갓... 난고 김병연의 초라한 묘소...
김삿갓... 난고 김병연의 초라한 묘소... ⓒ 문일식
영월의 한 유지의 노력으로 찾게 된 김병연의 묘는 자신의 한스럽고 초라한 방랑생활만큼이나 조촐했고, 그의 묘지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 만이 김병연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김삿갓 계곡은 근래에 많이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흐르는 계곡 물에 들어가 잠시 탁족을 즐겨봤습니다.

김삿갓 유적지에서 계곡을 따라 더 올라가면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김삿갓 묘역을 발견하고, 연구에 생을 바친 정암 박영국 선생의 김삿갓 연구 자료와 김삿갓의 생애를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삿갓 계곡내에 위치한 민화박물관의 전경...
김삿갓 계곡내에 위치한 민화박물관의 전경... ⓒ 문일식
김삿갓 계곡의 중간쯤에는 특별한 박물관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진솔한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민화를 수집, 연구, 전시하는 민화박물관입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은빛 찬란한 구름다리가 나오고, 이어 넓은 평지가 나오는데 이곳에 민화박물관이 있습니다.

민화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미소를 머금은 장승...
민화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미소를 머금은 장승... ⓒ 문일식
여기저기 서 있는 장승들의 얼굴에는 다분히 한국적인 해학적 미소가 담겨져 있고, 박물관 앞터에는 항아리에 그림을 그려 넣고, 그 위에 분재를 올려놓아 작은 공원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수집해 온 민화와 고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는 민화박물관에서는 민화에 둘러보면서 유익한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한 명이 오더라도 설명을 해준다는 말에 고마움이 느껴졌습니다.

민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가도.
민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가도. ⓒ 민화박물관
그냥 휘적휘적 둘러만 본다면 민화란 것은 단지 서민들이 그린 장난기 어린 그림이구나 라는 편견을 벗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민화에도 많은 종류가 있었습니다. 비록 서민층에서 만들어졌지만 왕가에서부터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었다는 것 등 일반적인 민화이야기와 함께 민화의 주체인 여러 상상 속의 동물들이나 흔한 동식물들, 산수화, 인물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민화 속에 숨어있는 상징적인 이야기도 무척 유익했습니다.

제를 지낼 여력이 없어 사당도를 그려 그림에 위패를 걸어놓고 제를 올렸다는 대목에서는 민초들의 고생스런 모습이 역력히 묻어 났습니다.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인두화, 책가도와 장농입니다. 인두화는 말 그대로 불로 달군 인두를 이용하여 종이를 태우면서 그린 그림입니다.

서민들이 제를 지낼때 걸어놓았던 사당도.
서민들이 제를 지낼때 걸어놓았던 사당도. ⓒ 민화박물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천 장의 종이에 들였을 공력하며 책가도를 그리기 위해 수천 번의 선 긋는 연습을 해야했던 선조들의 노력, 그리고 30년 정도 걸려(농에도 상감기법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 있습니다) 농 하나를 만드는 장인정신까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도 무수한 노력의 증표들은 성공이라는 결과물 앞에 당연히 노출되기는 하지만, 과연 옛 선조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공을 들였을까요?

붓이 아닌 불로 뜨겁게 달군 인두로 그린 인두화.
붓이 아닌 불로 뜨겁게 달군 인두로 그린 인두화. ⓒ 민화박물관
여행을 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식이라기 보다는 '앎'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지식이 되면 더욱 더 좋긴 하겠지만 무엇을 하나 보더라도 알면서 본다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민화박물관에서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충분히 접할 수 있었던 것들조차도 이곳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를 외치곤 합니다. '맞아 그렇지, 그랬구나'라는 표현일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앎'이고, 이를 통해 여행의 묘미가 충분히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즐기는 것도 좋지만, 배움으로써의 여행은 즐기는 여행은 여행 이상이라는 생각이 불끈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여행정보 :
김삿갓계곡 홈페이지(http://www.kimsagat.or.kr/)
민화박물관 홈페이지(http://www.minhwa.co.kr/)
김삿갓에 대해 보려면...(http://myhome.shinbiro.com/~yoonas/)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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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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