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배일치 고개에는 배일치 터널이 뚫려 있습니다.
배일치 고개에는 배일치 터널이 뚫려 있습니다. ⓒ 문일식
첫 번째 단종 복위운동의 실패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도교에서 정순왕후와 다시는 못 보는 영원한 이별을 한 뒤 영월로의 유배길에 오릅니다. 영월로 진입하는 초입에는 여러 고갯길이 있는데, 모두 단종의 슬픈 유배길과 관련이 있습니다. 군등치는 임금이 넘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배일치는 유배길 계속 흐리던 날씨가 고개를 넘으려하자 날씨가 개어 해를 향해 절을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88번 지방도와 59번 국도가 만나 영월읍으로 들어서는 초입에는 소나기재라고 불리는 고개가 있습니다. 장릉과 청령포에서도 가까운 이곳은 단종이 고개를 넘자 소나기가 내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먼 유배길에 올라 목적지인 청령포에 거의 이르러 이제는 답답하고 서글픈 유배생활을 해야 하며, 추상같은 명에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두려움이 어린 가슴에 한이 되어 내렸던 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70여m 우뚝 선 선돌과 주변전경.
70여m 우뚝 선 선돌과 주변전경. ⓒ 문일식
소나기가 내렸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즈음 소나기재를 올랐습니다. 소나기재 정상부근에는 칼날같이 날카롭게 우뚝 선 선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강과 어우러져 70여m 우뚝 솟은 선돌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 중의 절경입니다. 한 바퀴 크게 휘돌아온 서강은 선돌을 지나며 선돌만큼이나 곧게 서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소나기재를 넘어 내려가면 특이하게도 도로위에 붉은 기운을 가득 머금은 홍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홍살문이란 것은 이 문을 지나면서부터 성역이라는 표시입니다. 영월이 충절의 고장인데다 조선의 왕이 묻혀 있는 곳이다 보니 홍살문이 세워진 건 어쩌면 당연한 듯도 합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소나기재를 넘어서자마자 단종이 잠들어 계신 장릉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의 수려한 풍경.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의 수려한 풍경. ⓒ 문일식
장릉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청령포를 먼저 찾았습니다. 청령포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후 기거를 했던 곳입니다. 삼면은 푸른 물 넘실대는 서강이고, 나머지 한 면은 험한 산세를 이루는 곳입니다. 그 어린 나이에 도망가면 얼마나 도망을 간다고 이렇게 깊고도 깊은 곳을 유배지로 택했을까요?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단종이 머물다가 사사된 관풍헌(지난 2004년 여행사진중)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단종이 머물다가 사사된 관풍헌(지난 2004년 여행사진중) ⓒ 문일식
비라도 많이 내리는 날에는 분명 차고 넘칠게 분명한데 단종의 목숨은 세조가 겨누는 칼날에서 뿐 아니라 불시에 찾아오는 자연현상에서도 온전할 수 없었습니다. 단종이 청령포로 유배를 온지 몇 달이 채 안 되서 결국 홍수로 인해 관풍헌으로 피신을 오게 되고, 단종은 관풍헌에 올라 자신의 처절한 삶과 서글픔, 외로움을 전하는 시를 읊으며 목숨을 하루하루 연명했습니다.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 단종복위운동과 연루된 사람들의 제를 지내는 경북 순흥에 있는 금성단(지난 2005년 여행사진 중)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 단종복위운동과 연루된 사람들의 제를 지내는 경북 순흥에 있는 금성단(지난 2005년 여행사진 중) ⓒ 문일식
경북 순흥(영주)에서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대했다가 유배를 온 금성대군이 순흥 부사 이보흠과 함께 2번째 단종복위운동을 꾀하다 들통 나는 바람에 큰 피바람이 몰아쳤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단종은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사사됩니다.

세조의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였던 단종을 죽일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고, 단종복위운동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세조에게는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어쩌면 두 번에 걸친 단종복위운동으로 말미암아 단종의 죽음의 시간을 앞당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조차 억울했을 텐데 세조는 자신의 조카에 대한 장례조차 지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에게는 왕명으로 다스린다는 엄포를 놓게 됩니다. 영월의 호장(수령 밑에 속한 아전)이었던 엄흥도는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고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숨어 지내게 됩니다.

단종이 잠들어있는 장릉의 전경.
단종이 잠들어있는 장릉의 전경. ⓒ 문일식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영조 때에는 엄흥도의 높은 뜻을 기려 장릉 내에 정려각을 세우게 됩니다. 단종의 묘는 훗날 중종에 의해 찾게 되고, 숙종 때 이르러 정식으로 묘호를 받게 됩니다.

단종의 나이 17세, 요즘으로 따지면 고등학생의 나이입니다. 숙부로부터 왕위를 빼앗기고, 왕비와 눈물겨운 생이별을 한 뒤 먼 길 유배길에 올라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3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종에게는 일초일각이 초조한 삶이었고, 기구한 운명에 눈물을 흘리고, 하루하루 죽음과 삶을 오가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죽음이란 걸 생각하며 살아야했다면? 나라에서 한 명밖에 될 수 없는 그 타고난 운명마저도 서러워했을 겁니다.

단종의 슬픔과 한을 지켜보았을 천연기념물 349호 관음송... 청령포 내에 있습니다.
단종의 슬픔과 한을 지켜보았을 천연기념물 349호 관음송... 청령포 내에 있습니다. ⓒ 문일식
어린 왕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입니다. 그가 유배를 내려오던 많은 고갯길과 몸을 담았던 청령포와 관풍헌, 그리고, 그의 차디찬 육체가 잠들어있는 장릉까지 단종의 절망스런 한숨이 깊게 깊게 배어 있는 듯 했습니다.

500여년이 넘게 지난 지금, 서강이 어우러지고, 소나무의 짙은 숨소리가 느껴지는 청명한 청령포와 푸른 잔디와 함께 깔끔하게 정돈된 장릉의 풍경은 단종의 한과 슬픔을 너무도 많이 잊은 듯합니다. 사람들은 500년 전의 슬픈 역사를 잊은 채 아름다운 풍경만 눈에 담고 있었습니다.

장릉 주변에 있는 보덕사 입구의 연못과 수령 450년 정도된 느티나무군락
장릉 주변에 있는 보덕사 입구의 연못과 수령 450년 정도된 느티나무군락 ⓒ 문일식
융건릉에는 용주사가, 영녕릉에는 신륵사가 있듯이 이곳 장릉에는 원찰의 성격을 지닌 보덕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신문왕 때 창건한 천년고찰이지만, 6.25때 소실된 후 다시 조성된 사찰입니다. 보덕사 입구는 수령이 600년에 이르는 느티나무 한 그루와 연못 주변으로 450년 이상 되는 여러 느티나무들이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사천왕문이 없는 이 사찰에는 이 느티나무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습니다.

보덕사 해우소. 이 해우소는 강원 문화재자료 13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덕사 해우소. 이 해우소는 강원 문화재자료 13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문일식
보덕사에는 특별한 문화재가 하나 있습니다. 전남 순천 선암사에는 너무도 유명한 해우소가 있는데, CF에도 등장한 해우소이기도 하고 문화재자료 214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입니다. 보덕사에도 유서 깊은 해우소가 있습니다. 약 120년 전에 만들어진 해우소로 역시 강원 문화재자료 132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선암사의 해우소도 마찬가지지만 칸과 남녀 구분만 되어 있을 뿐 문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 해우소에 들어와 일을 볼라치면 이만저만 민망한 게 아닐 듯싶습니다. 보덕사는 몇몇 전각밖에 없는 작은 사찰이지만 장릉을 돌아보고 나서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돌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돌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 문일식
다시 홍살문을 통과해 소나기재를 올랐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 서쪽으로 붉은 기운이 하염없이 밀려왔습니다. 선돌에 간다면 때마침 일몰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선돌로 향했습니다. 우뚝 솟은 선돌과 서쪽으로 길게 흐르는 서강과 올망졸망한 산세 그 위로 오늘의 태양은 서서히 작별을 고하고 있었습니다.

'나 넘어간다' 마지막 작별을 하는 오늘의 태양을 간신히 붙잡았습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붉은 기운은 항상 아쉬운 여운을 남깁니다. 아쉬움은 붉은 기운만큼이나 내 가슴도 붉게 멍들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장릉 입장료(개인/1,200원,학생/군인/1,000원,어린이/640원)
     주차료(대형/2,000원,소형/1,000원)
청령포 입장료(개인/1,300원,학생/군인/1,000원,어린이/700원)
       주차료(대형/2,000원,소형/1,000원)
여행정보 영월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ywtour.com/kor/)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