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문을 일컬어 '오늘의 거울',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합니다. 본교에서는 교과시간을 활용한 신문학습을 통하여 (중간생략) 학부모님들은 신청해주십시오.”(양진초등학교)

"어린이신문은 자기 주도적 능력을 키워줍니다. (중간생략) 도곡 어린이 모두가 신문을 구독하고자 하오니 구독희망 여부를 알려주십시오."(도곡초등학교)


올 들어 서울지역 일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 학생들의 가정에 보낸 통신문 중 일부다. 내용들을 보면 가정통신문이 아니라 신문사의 홍보전단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오마이뉴스>는 서울시교육청이 수집한 '소년신문 구독 초등학교 가정통신문' 112장을 19일 입수했다. 이는 서울지역 전체 초등학교의 5분의 1인 112 곳이 보낸 '홍보 전단지'인 셈이다.

▲ 서울지역 110여 개 초등학교의 교장들이 학부모에게 소년신문 구독을 종용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 윤근혁

눈물겨운 신문 판촉전, 교장선생님들이 나서다

지난 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 소속 초등학교 가운데 소년신문을 집단 구독하는 학교의 비중이 유독 높은 곳으로 서울교육청이 꼽혔다. 2003년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자 대부분의 시도 교육청 소속 초등학교가 소년신문 구독을 포기했지만 어쩐 일인지 수도권 지역(경기·인천 일부 학교 포함)에서만 이 같은 일이 계속되는 것이다.

더욱이 서울지역 교장들은 직접 자신의 직함을 걸고 신문 홍보에 나섰다. 가정통신문의 내용을 보면 소년신문사에서 자체로 제작한 '신문신청서'보다도 한층 세련되고 과감했다.

이 가정통신문의 내용은 크게 ▲소년신문의 장점 ▲학교의 신문 활용 방법 ▲구독료 인상의 불가피성과 찬조금 사용처 등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을 나눠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년신문의 장점

"어린이신문은 시사교육자료 및 사회과학교육자료, 한자, 영어 등을 싣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동의 이해력을 증진시키고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자료…(3월 3일치 경동교육통신)

"6하 원칙으로 작성된 기사들은 논리의 체계를 갖추고 있어…"(3월 4일치 돈암가정통신)

"우리 청담 어린이들은 신문을 통해서 NIE교육, 아침자습활용, 한자지도, 수행평가 등 많은 성과를 얻고 있으며…"(3월 13일치, 청담교육통신)

"살아있는 교과서인 신문으로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맞는 정보를 얻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학부모님들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3월 2일치 원광초등학교)

학교의 신문 활용 방법

"학급별로 아침자습시간이나 교과학습시간에 NIE 등 다양한 교재로 신문을 활용할 계획입니다"(3월 4일치 장안교육통신)

"본교에서는 어린이들의 NIE교육, 한자교육, 영어교육 등 살아 있는 생생한 자료로 활용되는…"(3월 2일치 대길교육통신)

"우리 독립문 어린이들이 신문구독을 통하여 아침자습, 학습문제해결, 한자학습, 영어학습 등 폭넓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3월 6일치 독립문가정통신)

구독료 인상의 불가피성과 불법찬조금 사용처

"각 신문사들의 유류 및 용지 제작비용의 인상 요인이 있어 불가피하게 인상하였으니 많은 양해 바랍니다"(3월 2일치 일신가정통신)

"금년부터는 신문용지 대금 인상과 함께 제작비, 물류비용 등이 증가함에 따라 부득이하게 신문 구독료가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됨을 알려드립니다"(3월 4일치 대동가정통신)

"신문구독으로 예치되는 학교발전기금은 도서구입이나 문집 제작 등 학생 복리증진을 위해 쓰여지고 있습니다"(3월 9일치 보광교육통신)

"신문 구독으로 인한 수익금은 전액 아동복지(화장실 청소 인건비, 교실 기름걸레 구입)에 쓰여지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3월 21일치 동교가정통신)


신문사 안내문보다 신문 찬사 일색인 가정통신문

▲ 일부 학교는 교장의 가정통신문 대신 소년신문사가 만든 안내문을 보내기도 했다.
ⓒ 윤근혁
이처럼 적지 않은 초등학교가 '신문 구독'을 종용하기 위해 학교장 명의로 가정통신문을 가장한 신문 홍보문을 보냈다.

그러나 서울 발산, 은정, 월정 초등학교 등은 이들 학교와는 달리 <소년한국>이나 <어린이동아> 등이 만든 구독안내문을 학생들에게 나눠 줘 대조를 보였다. 내용을 보면 소년신문 제작 구독 안내문은 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보다 홍보 성격이 덜했다.

<소년한국>은 발산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보낸 구독안내문에서 "소년한국일보가 보다 유익하고 알찬 내용으로 어린이 여러분께 다가갈 것"이라는 정도의 내용을 적었다. <어린이동아>도 월촌 초등학교 학생에게 나눠준 안내문에서 구독을 안내했을 뿐 별다른 홍보성 글귀를 넣지는 않았다.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 최대 학부모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사무처장은 "교장선생님들이 개인사업자들인 신문사를 대신해 대리 홍보에 나선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학교장이 나서서 교과수업에 활용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힘없는 학부모들이 어떻게 신문을 거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장 사무처장은 또 "지금 <소년조선>이나 <어린이동아> 등 소년신문이 자사의 어른신문과 비슷한 보수적인 내용을 신문에 싣고 있다"고 지적한 뒤 "광고와 특정 사설학습지가 협찬한 학습문제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신문을 놓고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홍보하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라고 비판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