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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시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 설치할 철조망 경비를 놓고 국방부와 경찰이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15일 평택 대추리에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방부가 평택시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 설치할 철조망에 대한 주민 접근을 막기 위해 경찰경비인원을 배치할 것을 요청하는 데 대해 지난 13일 어청수 경기경찰청장이 '원칙적 거부'를 한 일을 두고 언론들의 말이 많다.

사실만 전한 다른 언론과 달리 <한겨레>는 '국방부의 안이한 대응태도에 대한 어청수 경기청장의 쓴소리'로 보도한 데 비해, <조선일보>와 <문화일보>는 사설을 통해 '평택 반미 방관하는 경찰은 누구 눈치 보는가', '반미기지 평택과 군경 수뇌부의 한심한 대응'이라는 논조로 경찰의 방침을 비난했다.

결론적으로 경기지방경찰청의 결정은 법적으로 적법하고 정당하다. <조선일보>의 표현대로 '참 눈치 빠른 경찰청장'이어서도 아니고, <문화일보>의 표현처럼 '시위대 봐주기'를 위한 결정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시각은 우리 언론의 '법치에 대한 몰이해 정도'를 나타낸 것뿐이다.

자유민주주의 법치공화국에서 이러한 논란이 생기는 것 자체가 아직은 우리 사회와 언론의 법상식이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반증이다. 그래서 언론과 정부는 '그때 그때' 과잉대응이니 과소대응이니 하면서 뚜렷한 잣대없이 움직인다. 어느 한 쪽을 편들거나 공격하기 위한 의도에 지나지 않는.

권력이나 목소리 큰 사람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찰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명제엔 누구나 사족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경찰력은 법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데도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이 문제와 관련된 법적인 문제를 살펴보고 법에 따른 방안이 무엇인지 밝혀지면 더 이상의 논란은 '다른 의도'에 의한 논란의 확산일 뿐일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장의 '쓴소리'는 행정지도

▲ 지난 3월 6일 경기도 평택 대추리 옛 대추분교에 대한 퇴거 강제집행을 위해 법원이 고용한 용역직원들과 경찰들이 학교 진입을 시도했으나, 학교정문을 쇠사슬과 농기계로 봉쇄하고 몸싸움을 벌인 주민과 사회단체 회원들의 저항으로 무산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선 이 사안을 분석해보자. 사안의 줄기는 국방부가 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사업(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일부개정 2005.8.4 법률 7678호])'을 하면서 그 일환으로 이전 예정지에 철조망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이 철조망 경비를 경찰이 해달라는 요청이다.

국방부의 사업은 예전에 서울시가 청계고가 철거와 청계천살리기사업을 한 것처럼 몇 가지 공법상 특례(일방적 수용 등)가 인정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민간기업의 사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국가목적적인 사업이니 시민을 위한 사업이니 하는 것은 법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택지개발을 하는 일반기업처럼 주민들을 상대로 보상협의를 해야 하고, 그것도 성실히 협의하여야 한다라고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일부개정 2005.12.30 법률 제7835호]'에 규정되어 있다.

국가공익적 사업에 대해서도 앞서와 같은 법적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국방부가 사업 진행에서 마찰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경기지방경찰청이 국방부에 촉구한 내용이기도 하다.

경기지방경찰청의 이러한 조언은 법령상의 '행정지도'로 볼 수 있다. 사회의 질서유지와 안녕을 위해 경찰은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데, 강제적인 수단보다는 임의적인 수단을 통해서 경찰권을 발동하는 것은 현대행정에서 권장사항이다.

사업시행기관과 관련 주민들의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찰의 행정지도가 '차관급 기관이 장관급 기관에게 어떻게 감히'라는 인식하에 이러한 논란이 확산되는 것이 당연하다면, 우리는 고려의 무인시대로 회귀해야 한다.

평택 미군기지 예정지는 법령상 '군사시설'이 아니다

또 법령상(군사시설보호법)으로는 군사시설이라 함은 진지, 장애물 기타 군사목적에 '직접' 공용되는 시설을 말한다. 이 군사시설은 군의 관할부대장이 보호관리할 책임을 진다.(동법 제 2조 4,5호)

군사시설에 군이 상주하지 않으나 군사시설의 보호가 필요할 때는 그 시설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장에게 그 시설의 관리에 필요한 협조를 요청할 수 있고, 그 협조요청을 받은 경찰서장은 협조를 하여야 한다.(동법 제 13조)

군사시설 이전 예정지가 '군사시설'이 아닌 것은 법령상 살펴본 바와 같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경찰에게 강제된 '협조요청'을 국방부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법을 잘 아는 국방부에서 그런 무리한 협조요청을 고려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경찰보다 국방부가 예산도 병력도 많다

▲ 지난 7일 오전 국방부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지역의 영농행위를 막기 위해 포클레인을 동원해 농수로를 폐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팽성읍 도두리 주민들이 경찰과 용역직원들의 농지 진입에 맞서 흙을 뿌리며 저항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럼에도 국방부는 단지 '철조망을 훼손하려는 주민 접근'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경찰력 개입과 동원을 요청하려고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요청은 행정절차법상에서 '행정응원'이라고 한다.

국방부가 이런 행정요청을 하기 위한 요건(행정절차법 제8조)으로는 ①법령 등의 이유로 독자적인 직무수행이 어려운 경우 ②인원·장비의 부족 등 사실상의 이유로 독자적인 직무수행이 어려운 경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요건 중 전문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거나 문서·통계가 필요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경찰에 비해 월등한 예산(이번 사업예산 포함)과 병력을 가진 국방부에서 인원, 장비 부족 등의 이유로 독자적인 직무수행이 어려울 리 없고, 또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법령상으로도 독자적인 직무수행이 어려운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요건상 불비다.

'박으라면 박을 일이지 무슨 잔소리가 많느냐'는 식의 군사문화 안에서 논의하자면 경찰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 요건 충족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독자적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엄살을 떠는대야.

한번 철조망 경비하는 데 경찰 50개 중대... 고유 직무수행은 어찌하나

그러나 그러한 행정응원 요청을 받았다 하더라도 경찰청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법은 규정하고 있다.

①다른 행정청이 보다 능률적이거나 경제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경우 ②행정응원으로 인하여 고유의 직무수행이 현저히 지장받을 것으로 인정되는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거부할 수 있는 경우이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는 그 둘레가 25km에 달한다고 한다. 그 곳에 설치된 철조망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력을 배치할 경우 한 번에 50개 중대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에 있는 경찰중대는 통틀어 32개 중대다.

그리고 경기지방경찰청의 경찰 중대는 관내 치안에 투입되기도 급급한 상황이다. 군인력이나 사업예산에 기초한 용역 투입이 능률적이고 경제적일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고, 더군다나 경찰은 그런 행정응원을 하고 나면 고유의 직무수행이 현저히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경기지방경찰청은 '원칙적 거부' 입장을 알린 것뿐이다. 그러면서도 사업시행자인 국방부와 주민 등의 물리적 충돌이 명백하거나 징후가 있다면 경찰력 투입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무슨 정권 눈치보기고 '시위대 봐주기'의 한심한 대응인지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되물어보고 싶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안은 국방부에서 적극적인 주민 설득과 갈등 해결로 나아가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먼저 해야 하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물리적 충돌이 명백하게 예상될 때는 국방부의 요청이 없더라도 경찰이 자발적으로 경찰력을 동원할 사안이다.

'그래도 왠지 경찰이 철조망 경비를 서야 할 것 같다'라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면, 지난 과거에 경찰이 여러분의 머리카락에 함부로 가위를 들이대고 지나가는 부녀자들의 치마 밑으로 잣대를 들이대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지 않나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아니면 경찰이 법령과는 무관하게 힘있는 사람이나 기관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던 권위주의 시절 하 경찰의 부활을 꿈꾸는 것이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 언론은 예외인가?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 언론이 경찰관직무집행법을 들먹였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라는 임무상 당연히 국방부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시위대 봐주기'가 아니란다.

언론의 개혁 문제 등도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와 무관하지 않으니, 경찰의 작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사회에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와 무관한 일은 무엇인가?

어느 논설위원은 그 조항만 보았지, 경찰력의 발동을 제한하기 위해서 '최소침해의 원칙' '보충성(최후수단성ㆍ정말 경찰이 개입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을 때까지 경찰 물리력 동원은 자제)의 원칙', '경찰 비례의 원칙(지키고자 하는 법익과 동원하는 물리력의 조화)' 등등의 조리는 법령이 아니던가?

(경찰의 조리는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이를 어기면 부당, 위법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명시된 법령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경찰작용은 국민의 권리침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발동에는 엄격한 한계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장래의 위험 개연성'과 '현재의 장애(장해)의 발생'을 그 요건으로 한다.

국방부여, 물리력 투입 고려하기 전에 주민을 만나서 설득하라

25km를 둘러싼 철조망에 대해 주민들이 접근하는 것이 어떤 위험이 있는가? 혹 철조망을 훼손하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24시간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이 경비를 선다는 발상은 국방부의 지나친 '주눅'이 아닌가?

또 군사시설 보호구역도 아닌 곳으로 접근하는 데 불과한 주민을 경찰은 무슨 법적 근거로 제지할 수 있을 것인가? 명백한 철조망 훼손 의도와 뚜렷한 징후를 보이는 대규모 시위대의 출현에는 그 철조망 경비방식으로는 대처방법도 없다.

그래서 경찰은 철조망 경비 요청에 원칙적으로 거부할 것이지만,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경찰력을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물리적 충돌은 국가기관이나 주민이나 최후의 수단이거나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국방부에서 좀더 주민들을 접촉하면서 그러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당연히 주민들의 적대적 행위를 상정해두고 물리력의 투입부터 먼저 고려하는 것은 행정절차법에도 위배된다.

경찰은 관계기관의 정책실현과 갈등조정 능력부족에서 배설된 물리적 충돌을 전담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조직이다. '누구 눈치보거나 시위대를 봐주기' 할 만큼 한심한 일을 생각해 보지도 못할 만큼 바쁜 조직이다. 언론도 기본적인 것은 공부하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든지 작두를 대령하든지 했으면 한다.

한마디로 금번 경기지방경찰청장의 천명한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적법하고 정당하며 일그러진 경찰행정을 바로잡는 원칙적인 발언이다.

덧붙이는 글 |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경찰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그 법과 양심에 대한 잣대가 자주 바뀌는 언론에 대해서 할 말도 많은 '잠시 제복입은 시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필자가 경찰행정법을 교수받고 있는 서정범 박사님에게 문의를 하였더니 '어떻게 국방부에서 그런 요청을 할 작정이고, 또 왜 경찰의 기본 방침이 언론의 도마위에 올라야 하는지 선진국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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