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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내리냐구요? 난타 공연 중 벌어지는 양배추가 펄펄 날리는 장면입니다.
함박눈이 내리냐구요? 난타 공연 중 벌어지는 양배추가 펄펄 날리는 장면입니다. ⓒ PMC 프러덕션
'어… 내가 봤던 공연이 아니네?' 혹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구나'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난타'를 직접 관람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기자는 설마 이 유명한 공연을 한 번도 안 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그만큼 언론보도 특히 방송을 통해 지겹도록(?) 접해왔기에 늘 그 명성에 탄복하기만 했을 뿐, 공연장에 실제 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공연의 내용에 대한 오해도 만만치 않다. '난타'는 공연이 시작하면서 끝날 때까지 '계속 두드리기만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다. 방송에서는 늘 '난타' 공연 중 다이내믹하게 보이는 장면, 즉 주방에서 여러 도구를 이용해 신나게 두드리는 모습만을 반복해서 보여줬기 때문에 벌어진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실제 공연장을 찾아가 보면 나름의 스토리라인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 전체 공연시간 중 정작 두드리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고 조금은 놀라실 수도 있겠다.

ⓒ PMC 프러덕션
시종일관 두드리기만 하면서 무슨 극적 요소로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난타'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관람할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이 공연을 봐야 할 이유라고 하겠다.

9년 동안 6천여 회 장기공연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식지 않는 성원에 힘입어, 지난 3월 25일부터 강남 전용관 시대를 연 공연 '난타'를 학동사거리 우림청담시어터에서 만나봤다.

대극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규모의 소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쾌함 속으로 빠져든다.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에 보이는 안내 멘트 때문이다.

공연진행에 대한 몇 가지 당부 말씀이 주 내용인 안내 멘트는 재치 만점이라 할 정도로 톡톡 튄다. 갑자기 박수가 객석에서 터져 나온다. 다른 생각을 하던 관객은 당연히 공연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며 무대를 응시하게 된다.

ⓒ PMC 프러덕션
하지만 무대 어디에서도 출연배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남자분들만 박수를 치세요' '이번엔 함성을 질러볼 차례입니다' 등 안내문구만 보일 뿐이다. 공연은 시작하지도 않았건만 자막만으로 관객들을 흥겹게 만들다니, 참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공연안내 자막은 4개국어로 나타나는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 중 80% 이상이 외국인들이라고 하니 너무도 당연한 배려라 하겠다. 공연장에는 외국인들은 물론 단체관람을 온 직장인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두드리는 장면이 적기는 하나 역시 '난타'의 하이라이트는 두드릴 때가 아닌가 싶다. 생수통과 다듬이, 찌그러진 냄비를 두드리던 배우들은 혼례에 쓸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주방의 도마를 두들기기 시작한다.

공연의 콘셉트에 걸맞게 출연배우들의 두드리는 솜씨는 가히 예술이라 할 만큼 대단한 실력을 보여준다. 그들의 현란한 두들김은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조명에 어우러져 90분 내내 공연장을 흥겨움의 도가니로 만들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 PMC 프러덕션
그렇다면 '난타'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잘 두드리기만 하면 될까? 이것 또한 편견일 뿐이다. 아카펠라로 화음을 만들어내는 노래실력과 장면 장면에 맞는 섬세한 표정연기, 그리고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이는 봉술과 접시 던지고 받기 등의 기술을 선보이는 그들을 보면 천상배우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특히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탁월한 표정연기는 개성 넘치는 그들의 외모와 함께 관객들을 극의 매력에 몰입하게 한다. 하루종일 바빴다며 피곤해 하던 기자의 동행인이 의자에 등도 못 붙이고 공연 내내 열중하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난타'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공연 도중 의외의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쓰레기통 안에 있던 검정색 쓰레기더미가 난데없이 객석으로 날아들고, 주방소품으로 쓰이던 소금이 '고수레' 소리와 함께 뿌려지는가 하면, 무대를 벗어나 객석에 뛰어든 배우들이 관객을 돌연 무대에 세우기도 한다.

공연 도중 배우들에 의해 무대로 이끌려 나온 관객들과 함께 극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공연 도중 배우들에 의해 무대로 이끌려 나온 관객들과 함께 극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 PMC 프러덕션
이날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갑자기 던져진 쓰레기더미에 제대로 맞은 중년주부는 잠시 황당해 했으나 너무도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극 진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 끌려나온 노년 신사와 금발의 외국인 처녀는 기대 이상으로 능청맞게 연기를 해내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특히 노년 신사는 '무대에 나온 관객이 할만한 행동' 그 이상의 오버 연기를 보여줘 순간 배우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의외의 상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두 빨리 빚기 시합이 벌어진 대목에서는 만두를 빚는 데 도움을 주러 나온 4명의 관객들이 홀연히 사라져버린 배우들 때문에 당혹해 한다.

어디 그들뿐이랴. 객석에서조차 '저들이 과연 어떻게 공연을 진행해 낼까'라는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지만, 관객에서 배우로 잠시 탈바꿈한 이들은 훌륭하게 공연을 주도해 나간다. 소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즉흥성과 아기자기한 재미가 극대화된 순간이었다.

이런 즐거움은 극 후반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주방장 역할의 배우가 무대에 혼자 남게 된 후 벌어지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잠시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배우의 능청스런 표정과 함께 객석의 반응을 유도해 내는 장면은, 마치 응원단장으로 뽑힌 아이의 손짓에 맞춰 청군백군을 연호하며 400m 이어달리기를 응원하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우리가 지금 공연을 보러온 거 맞아?'라는 물음이 생길 만도 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거리며 웃던 관객들은 급기야 숨이 넘어갈 듯 정신을 못 차리고, 이내 주방장의 지휘에 따라 모든 관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흥겨운 리듬을 타기에 이른다. 나중에는 이 배우의 얼굴만 봐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정도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원한 장면.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듯한 이 순간은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원한 장면.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듯한 이 순간은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 PMC 프러덕션
공연을 지켜보면서 기자의 머릿속을 내내 떠나지 않은 생각 하나. 5명의 출연배우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무대장치. 출연배우들의 의상 또한 변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화려한 의상과 엄청난 무대장치로 포장된 대작뮤지컬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난타'의 성공 가도는 이어질 수 있었을까.

그 대단한 기획력과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난타의 성공은 마케팅과 기획력의 승리'라고 대답했던 PMC프러덕션 송승환 대표 인터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단지 도마를 두드릴 뿐인데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켰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난타'에는 우리 민족의 끼와 흥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것이 해외 공연까지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 음식점에 둘러앉아 회식을 하다 흥이 돋워지면 젓가락 장단에 맞춰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던 그때의 유쾌함이 '난타'를 통해 전해진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에서도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리듬을 타던 기억까지 새록새록 떠오른다.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와 후끈 달아오른 공연장의 열기에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득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래서 난타의 성공 질주는 계속되는가 보다.

덧붙이는 글 |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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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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