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래전 일이다. 나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득, 득… 득, 득…."

맷돌 가는 소리인가 했더니 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를 가는 소리도 아니었다. 참으로 듣기 싫은 소리였다. 나는 이불을 한쪽으로 밀쳤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순간에도 정체 모를 소리는 계속되었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야. 나는 혼잣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한밤중 맷돌 가는 소리의 정체는?

그러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아니 더해만 갔다. 그래, 이왕 일어난 김에 확인을 해야겠어. 나는 불을 켰다. 순간 신기하게도 끊겼던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소리는 맷돌 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를 가는 소리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소리는 큰애가 온몸을 긁어대는 소리였다.

▲ 큰애가 팔을 긁어서 벌겋습니다.
ⓒ 박희우
나는 큰애 몸을 훑어보았다. 어디랄 곳도 없이 손톱자국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몸통은 물론이고 눈 밑에까지 말이 아니었다. 성한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허벅지 부분이 특히 심했다. 나는 아내를 깨웠다. 아내가 무슨 일이냐며 눈을 비볐다. 나는 큰애를 손으로 가리켰다. 어머니란 사람이 애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했느냐며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늘어놓았다.

아내도 화가 났던 모양이다. 자기도 할 만큼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떻게 된 아버지가 자식이 아토피성 피부염인지도 모르고 있었느냐며 원망 섞인 소리를 냈다. 내 충격은 컸다. 세상에 이렇게 무심한 아빠가 있다니. 아이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는데도 나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나도 아내를 도와 아이의 아토피 치료에 진력하기로 말이다.

바닷물, 황토에 새벽샘물까지...아토피와 벌인 전쟁

그날부터 나는 아토피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나는 바닷가에 갈 때면 차 트렁크에 한 말짜리 물통을 넣고 다녔다. 바닷물이 아토피에 좋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물통에 물만 받아오는 게 아니었다.

가능하면 오랫동안 아이를 바닷물 속에 집어넣었다. 입술이 새파랗게 변할 때까지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런 날이면 확실히 저녁에 긁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긁어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뜬금없이 나보고 인근 야산에 함께 가자고 했다. 아토피에 황토가 좋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내 손에 세숫대야를 들려주었다. 나는 아내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야산에는 황토가 많았다. 아내가 모종삽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아내에게 모종삽을 빼앗았다. 세숫대야에 하나 가득 황토를 담았다. 나는 신줏단지 모시듯 황토가 담긴 세숫대야를 들고 집을 향했다.

그날 저녁, 우리 집에는 온통 토인밖에 없었다. 큰애만 황토를 바르면 될 것을 작은애까지 황토를 발랐다. 아내도 얼굴에 황토를 발랐다. 큰애와 작은애가 장난기가 발동한 모양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나뭇가지를 목에 걸치고는 아프리카 춤을 추는 것이었다. 춤추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 나는 눈물을 다 찔끔거려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며칠 못 가 큰애는 다시 긁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내가 물심부름을 시켰다. 누가 그러는데 샘물로 세수를 하면 아토피를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새벽 샘물이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새벽에 산속으로 샘물을 뜨러 갔다. 마치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새벽 샘물을 길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물을 뜨러 가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이번만은 꼭 낫게 해달라고 산신령께 빌었다.

아내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시키기 위해 아침 일찍 큰애를 깨웠다. 그런데 큰애는 그게 싫은 모양이었다. 일어나기 싫다며 앙탈을 부렸다. 아내는 말로 타이르다가 안 되니까 벌컥 화까지 냈다.

"그럼 네 맘대로 해.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든 뭐하든 엄마는 책임 못 져."

그제야 큰애가 얼굴을 찡그리며 세면대로 향하는 것이었다. 나는 행여 물을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릴까 봐 조심조심 세면대에 물을 부었다. 큰애는 얼굴이며 목이며 팔을 씻었다. 아내가 지켜보다가 웃옷을 벗기고는 몸통을 씻겨주었다. 다리도 마저 씻겨주었다. 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효과가 없음을 알고는 내게 더는 물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물론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았다. 알로에가 좋다고 해서 몇 달에 걸쳐 몸에 바르기도 했다. 이것도 안 되니까 식초를 물에 타서 몸에 바르기도 했다. 물비누와 로션이 좋다고 해서 이것도 써보았다. 그러나 모두 별무신통이었다. 병원 피부과에도 숱하게 다녔지만 허사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병이 치료법이 없단 말인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몇 달 전쯤이었다. 큰애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울먹이기부터 했다. 아내가 물으니 아이들이 아토피성 피부염이라고 놀리더라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옆자리에 앉으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예 손을 잡으려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아이의 말을 듣고 나더니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아내는 누구에게 들었는지 승용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병원까지 큰애를 데리고 갔다. 그 병원에서 쓰는 약은 독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도 병원에 갔다 오는 날에는 큰애가 긁지를 않았다. 거기에 용기를 얻었던지 아내는 약이 떨어질 만하면 그 병원을 찾았다. 어떤 날은 점심시간에 걸려 두 시간 이상을 병원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아내 고생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 큰애가 아빠를 놀리고 있습니다
ⓒ 박희우
삼겹살 잔치도 큰애 눈치 작은애 눈치

그러니까 바로 어제였다. 아내가 모처럼 삼겹살을 사왔다. 철판에 고기를 굽는데 냄새가 좋았다. 아내하고 작은애는 상추에 고기를 싸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큰애는 아니었다. 먹지는 않고 내내 지켜만 보았다. 나는 큰애 입에 고기를 넣어주었다. 그제야 큰애가 고기를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너, 엄마가 뭐라고 했어. 고기는 당분간 안 된다고 했지. 왜 말을 안 듣니?"

큰애가 화들짝 놀라 집었던 고기를 내려놓았다. 아내 말은 고기나 밀가루는 아토피성 피부에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러면 고기를 사오지 말았어야지"하며 볼멘소리를 냈다. 아내도 더는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한테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작은애가 며칠 전부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난들 어떻게 해요."

어쨌든 오늘도 우리 부부는 아토피와 험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론 당사자인 큰애는 우리 부부보다도 더 힘들게 아토피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 들어 큰애가 학교에 별 탈 없이 잘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급우들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월 13일이 큰애 생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15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큰애를 축하해주러 왔다. 아내는 감격해서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주었다. 작년과 비교해서 엄청난 변화였다. 작년에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큰애도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조금 있으면 사춘기다. 더군다나 딸애다. 그래서인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도 내 소망은 오직 한 가지다. 지금 쓰고 있는 약이 제발 효험을 발휘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큰애가 긁지 않고 자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도 안 되면 더욱 가열 찬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