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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어머니께 그 말을 처음 들었던 그 아침은 딱 지금처럼 이른 봄이었다. 따스한 봄 햇살을 심술 내는 꽃샘바람 탓에 가벼운 감기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걸신들린 듯 멈출 줄 모르는 재채기는 열 번을 넘기고도 좀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코가 산산조각 나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열댓 번 재채기를 연발한 내 코는 멀쩡하건만 대책 없는 현기증에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뭐 물려줄 게 없어 그놈의 모자란 코를 물려줄까."
"무슨 소리예요?"
"그 재채기 말이다. 너 새벽마다 엄마 재채기 소리 지긋지긋하다 그랬지? 이제 너도 달고 살게 생겼단 말이다."
"그럼 나도 엄마처럼 새벽마다 그렇게 재채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럴 거야. 엄마도 꼭 네 나이 때 외할머니로부터 그걸 물려받았으니까."
"재채기가 무슨 큰 보물이라고 대를 이어 물려받아요?"
학창시절. 내 아침잠을 깨운 건 새벽 미명을 가르는 호들갑스런 자명종도 아니고, 두부 아저씨의 딸랑거리는 방울소리도 아니었다. 바로 어머니의 재채기 소리였다. 밤늦도록 향학열을 불태우느라 식구들 잠든 밤을 홀로 지새운 것도 아니건만, 그때는 왜 그리 새벽잠이 달았을까.
꿀맛 같은 새벽 단잠에 바야흐로 시작되는 어머니의 재채기는 분명 불청객이었다. 첫 번째 재채기는 눈을 뜨라는 소리요, 다섯 번째 재채기는 몸을 일으키라는 소리요, 열 번째 재채기는 이불 개키라는 소리였다.
꽃다운 18살은 재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철이 들면서인가 싶다. 이른 새벽 어머니의 재채기 소리에 눈을 뜰 때면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저렇게 아침마다 재채기를 해대는 어머니는 과연 얼마나 괴로우실까 하는. 하지만 워낙에 빠듯한 살림살이였다. 어머닌들 왜 고달프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어디 찢어져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도 아니고, 뼈가 부러져 거동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재채기가 무슨 대수일까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재채기가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보다 뼈가 부러진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걸 내가 재채기를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절감할 수 있었다. 콧속에 개미라도 들어간 것 마냥 늘 기분 나쁘게 코가 간질거렸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콧물은 또 어떠하며 열댓 번씩 재채기를 해대고 나면 하늘까지 노래질 지경이었다.
내 나이 18살 때이다. 어머니께서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재채기를 나 역시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때가. 무슨 큰 보물이라서 대를 이어 물려받느냐고 콧방귀를 끼었건만, 꽃다운 내 18살은 재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외할머니 딸이어서 그렇듯 난 내 어머니 딸이었기에 이유 불문하고 그래야 했다. 도저히 비켜 갈 수 없는 알레르기의 유전인자는 결국 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어 그렇게 나를 찾아들었던 것이다.
굼벵이 달인 물을 마시다
"이거 마셔라."
"으이그… 냄새! 이거 뭐예요?"
"묻지 말고 약이거니 하고 마셔둬."
"그러게 아무리 약이라도 뭔지 알고는 마셔야 할 거 아니에요?"
악문 어머니의 입은 대체 열릴 줄을 모르고,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는 두 눈에 기가 질려 약사발을 들이켰다. 쓰기는 이루 말할 수 없거니와 삼키고 한참 동안을 기분 나쁜 욕지기에 시달려야 했다. 뒤늦게 알고 보니 굼벵이와 약초를 함께 넣어 달인 물이었다.
부릅뜬 어머니의 두 눈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울며 겨자 먹기로 들이킨 게 어디 그뿐이던가. 벌집 달인 물, 캐나다에 계신 이모가 부쳐주신 알로에 원액, 살구 씨에 수세미 달인 물,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무껍질 달인 물까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어머니의 정성은 실로 눈물겨웠다. 기왕지사 달고 살았으니 굳이 어머니는 몸 달게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앞날이 창창한 이 딸자식은 그 지긋지긋한 재채기에서 꼭 해방시켜 줄 것이라 늘 호언장담 하셨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병원 문턱 높은 건 어머니나 딸자식이나 매한가지. 애끓는 모정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민간요법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어머니의 민간요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내 재채기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대물림 재채기의 정체는 알레르기성 비염
내 재채기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싶어 병원을 찾은 건 사회인이 되고서도 한참 뒤였다. 어머니 혼자 꾸리던 살림에 그나마 내 월급봉투가 우리 집 살림을 숨통 트이게 할 즈음이었다.
내 재채기의 정확한 병명은 알레르기성 비염이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란 진단을 받으면서 치료법 또한 특별히 없다는 것도, 유전성 질환이라는 것도 그때 함께 알게 됐다.
나는 만성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즉, 내 재채기는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그 강도가 다소 심한 편이다. 또 재채기의 요인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바로 급격한 체온변화와 먼지이다.
이른 아침에 재채기를 해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아침에 따스한 방에서 서늘한 밖으로 나오니 민감한 내 코가 잠자코 있을 리 만무할 터. 아침 재채기는 당연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원인을 철저히 차단하라
25년 세월. 그렇다고 무턱대고 재채기에 맥없이 당하지만은 않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나름대로 재채기를 방어할 해법 또한 터득할 수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무슨 뜻인가. 먼저 적을 알아야 했다. 내 적은 급격한 체온 변화와 먼지이다. 그렇다면 급격한 체온변화를 피하고 가급적 내 코를 먼지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해법은 바로 내의와 마스크와 청소이다.
나는 가을이 시작되면서부터 우선 7부로 시작하는 얇은 내의를 입기 시작한다. 내의의 장점이야 구구절절 읊어대면 입 아플 터. 항상 적정한 체온유지에 내의는 크나큰 효자 노릇을 한다. 다음으로는 청소인데 바로 먼지 퇴치작전이다.
구석구석 먼지부터 털어내면서 시작되는 집안 청소는 하루도 거를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하루에 서너 번씩 창을 열고 환기를 시켜줘야 함은 세 끼 밥 먹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장롱이며 싱크대, 또 신발장까지 먼지 한 점 티끌 하나라도 다 적이기에 나는 늘 그들과 전쟁을 벌인다.
마지막으로 마스크이다. 유독 민감하고 유독 예민한 내 코. 하지만 민감하고 예민하기에 가끔 '복코' 소리도 듣는다. 가을부터 겨울을 지나 봄에 이르기까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내 코는 마스크의 따스한 보호를 받는다.
그런 이유로 마스크 속의 내 코를 어떤 이들은 복코라고 놀려댄다.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가 비바람에 한없이 약하듯 내 코 또한 마스크의 품을 떠났을 땐, 온 사방에서 침투하는 적들의 공격에 엄청난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요즘 시중에는 알레르기성 비염에 관한 약들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자면, 그 약들은 잠깐 비를 가려주는 우산에 불과할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원적인 원인에 대한 치밀한 방어이다. 그 방어에 유익함을 더하려 애쓴다. 늘 깨끗한 집안, 늘 상쾌한 집안, 즉, 내 생활환경의 쾌적함이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알레르기성 비염,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내는 내 재채기는 분명 병이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병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내 일상을 휘저어 놓을 만큼 고약한 병이 아니어서 또한 다행이다.
또 하나 내 재채기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어머니의 딸이란 분명한 증거이다. 어머니의 딸이어서 좋다. 더불어 아침이면 벽 너머에서 들리는 어김없는 어머니의 재채기 소리가 반갑다. 십 년 뒤에도 아니 더 오래 뒤에도 이른 아침을 깨우는 건 바로 어머니와 내 재채기 소리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