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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혹 마음 쓸쓸하거나 흐리거나 바람이 많은 날이면 서울 중구 황학동을 찾는다. 황학동 벼룩시장 때문만은 아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보다 약간 어지럽혀져 있는 방을 좋아하는 나만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 황학동의 현재와 미래
ⓒ 소영무
청계천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커다란 수동 카메라를 들고 이 곳에 왔었다. 그 때 찍었던 흑백 사진 속의 거리는 정말 억새풀밭 같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있었던 고가도로는 철거됐고 맞은편에 있던 금이 간 건물들도 헐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고층 빌딩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황학동을 찾았을 때 하는 일은 두 가지 물건이 사고 싶어서이다. 하나는 70~80년대에 유행했던 <고교얄개>시리즈고 다른 하나는 수동 카메라다. 왠지 검은 교복을 입은 얄개 학생들의 발랄한 웃음과 그 시절이 참 좋았다.

간혹 필카로 사진을 찍고, 학교 앞 현상소에 흑백필름을 맡기곤 했는데 얼마 전에 가보니 이젠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디카의 홍수 앞에 필름카메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필카는 다시 힘을 받아 이어질 것이다. 연필의 사각거리는 느낌이 좋듯이, 사람은 까칠한 필카에서 향수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 비디오 가게
ⓒ 소영무
이 수많은 비디오 중에서 내가 찾는 것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커피 한 잔에 옆 집 주인을 볼러 소주 한 잔 곁들인다. 이도 그냥 좋다.

▲ TV골목
ⓒ 소영무
TV와 오디오, 카메라를 파는 골목이다. 매장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단 그냥 뭘 파는 골목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골목은 가전제품의 바다다. 아래 행운가게 옆에는 어느 여름 날 Canon QL17을 샀던 카메라 가게가 있다. 지금도 아끼는 30년도 더 된 그 카메라를 정성스럽게 닦고 곱게 가지고 있으면 팔아준 아저씨의 참 좋은 웃음이 들린다.

▲ 행운가게
ⓒ 소영무
▲ 클라식제즈락 가게
ⓒ 소영무
작년에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이 멋진 전축을 분양해주셔서 더욱 관심이 가는 골목이다. LP판을 듣고 있노라면 따닥거리는 소리에 잉크냄새가 묻어나오는 향이 있다.

▲ 황학동의 저녁식사
ⓒ 소영무
▲ 하늘 낚시
ⓒ 소영무
이 골목에 사시는 분들은 바쁜 일상으로 쉽게 시간을 내지 못하는 듯 하다. 때론, 여럿이 모여 저녁을 먹는다. 간혹 소주 한 잔 곁들이며 자연적 추위 못지않게 사회적 추위도 녹인다.

이런 저런 풍경 속에서 우리들 역시 가끔 발걸음을 늦춰 하늘을 낚는 저 망을 보는 여유가 있어야 되지 않나 싶다.

▲ 동아서적 내부
ⓒ 소영무
▲ 동아서적
ⓒ 소영무
동아서적. 이 서점은 약 3평정도 된다. 이곳은 의자 하나, 난로 하나, 유선전화 한대를 빼고 모두 책이다. 대부분 참고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외 시집과 역사책, 소설책 등이 있었다. 몇 권의 책을 고른 뒤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점이 너무 좁아 지하에도 책을 두고 있다고 했다. 작은 이 서점의 시간들이 햇볕에 바랜 책 향기같다.

황학동의 겨울밤은 빨리 찾아온다. 서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나오니 6시 반이다.

▲ 경계
ⓒ 소영무
밤하늘이 낮게 내려온 황학동과 동대문엔 경계 아닌 경계가 있는 듯했다. 청계천이 있는 곳은 가로수도 있고 잘 꾸며져 있다. 그런데 황학동이 시작되는 곳부터는 나무 하나 없는 밤거리가 더욱 허전하다.

서울시장이 내세웠던 것은 청계천 복원이 아닌 듯싶다. 단순히 복원이란 미명하에 공원을 만들었고, 높은 건물이 세워진 곳에만 신경을 쓴 듯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우동 한 그릇을 시켰다. 우동을 파는 아줌마의 웃음 때문에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 선물
ⓒ 소영무
황학동 골목에서 만난 좋은 분들이 준 선물이다. 세상이라는 골목에서 다른 한 골목을 만났다. 그 골목이 어우러져 추운 겨울날에도 나는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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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학교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서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함께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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