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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하쉬 호수.
ⓒ 김준희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깼다. 아스카는 어제 이 호텔의 시설이 안좋다고 했는데, 시설이 문제가 아니라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 잠이 들만하면 '앵~~' 소리와 함께 귓가로 날아드는 모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자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찍 일어나서 씻고 어제 사둔 빵과 주스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발하쉬 호수를 구경하러 나섰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언뜻 보았던 발하쉬 호수의 모습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을 여행하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을 몇 분 후에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텔을 나와서 도시를 가로질러서 내려가자 멀리 발하쉬 호수가 보였다. 아스카의 말처럼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이 커다란 호수가 아침햇살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그 모습은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바이칼이나 홉스골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니 파란 하늘 아래로 햇빛을 받아서 빛나는 수면은 오히려 더 커다랗고 깨끗해 보이기까지 했다.

더 아래로 내려가자 발하쉬 호수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의 모래사장을 연상시키는 모래가 있고 그 위로 메마른 나무와 풀이 듬성듬성 자라있었다. 그 주위에는 오전부터 호수가에서 자리 잡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호수가에 있는 큰 돌덩어리와 버려진 고철위에 앉아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난 호수가를 걸으면서 주위를 보았다. 호수의 주변에는 예전에 사용한 듯한 철로가 보였다. 전에 어떤 용도로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철로위에 온갖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고, 그 주위로 부서진 배와 녹슨 자동차와 각종 고철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공장이 있다. 족히 10개는 되어 보이는 공장의 굴뚝에서 엄청난 연기를 아침부터 뿜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커다란 구름처럼 보였다. 공장 쪽으로 걸어가니까 호수 안쪽으로 놓여진, 배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철제 구조물위에 사람들이 올라가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위에는 보드카병과 맥주병과 각종 플라스틱 병이 버려져 있고 녹슨 폐차까지 물속에 방치되어 있다.

호수를 바라보자니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그 위로 공장의 연기가 구름처럼 펼쳐져 있다. 넓은 호수를 배경으로 왼쪽에서는 폐선위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오른쪽의 공장에서는 연기를 쏟아내고 있다.

▲ 호수가의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 못쓰는 철로와 버려진 배.
ⓒ 김준희

▲ 발하쉬 호수. 구름처럼 보이는 것은 구름이 아니라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다.
ⓒ 김준희

▲ 하늘을 덮은 공장의 연기, 녹슨 철제 구조물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버려진 자동차
ⓒ 김준희
난 한쪽에 놓여진 돌 위에 앉았다. 두근거림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사막 가운데의 호수라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호수는 홉스골에서 보았던 그런 푸르른 생명력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물론 이 도시에 와서 본 것만으로 어찌 전체 호수의 모습을 알겠냐마는, 적어도 이 도시에서 본 호수는 매연과 버려진 쓰레기들 때문에 오염되고 망가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발하쉬 시의 인구는 7만명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자 홉스골과의 또 한가지 차이가 생각났다. 홉스골은 그 주위에 작은 마을이나 캠프장이 있을지언정 인구 7만의 도시가 있지는 않다. 적어도 걸어서 5분 거리에 오전부터 엄청난 연기를 뿜어내는 큰 공장을 가진 도시가 있지는 않다.

난 고개를 돌려서 공장을 바라보았다. 저 공장의 정체가 궁금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야 그렇다치고, 저 커다란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는 어떻게 처리가 되고 있는 걸까? 호수에 버려진 자동차와 폐선과 그 사이사이로 자라난 메마른 풀을 보고있자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 속에서는 의문이 생겨났지만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아스카와 아이굴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스카가 12시쯤에 온다고 했으니 슬슬 들어가서 짐을 싸고 숙소를 옮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머리속의 의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을 얻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이 호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뒤쪽에서는 낚시꾼들이 여전히 낚시를 하고 있다. '폐선과 쓰레기투성이의 호수에서 고기가 얼마나 잡힐까?' 일어서면서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 호수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 김준희
12시가 조금 넘자 아스카가 호텔로 찾아왔다. 나는 이 호텔에서 짐을 싸들고 나와서 '발하쉬 호텔'로 향했다. 이곳의 가격은 약간 비싼 가격이다. 하루밤에 2200팅게(팅게는 카자흐스탄의 화폐단위. 1달러는 약 130팅게). 이곳에서 짐을 풀어놓고 나서 우리는 아스카의 집으로 갔다.

집에는 아이굴과 여동생이 아이굴의 어린 딸을 돌보고 있었다. 아이굴은 푸짐한 음식과 함께 나를 맞아주었다. 식탁에는 양고기 볶음밥, 양고기 국, 빵과 여러 가지 잼, 그리고 생선요리가 있었다. 나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아스카가 말했다.

"맥주 마실래?"

나야 맥주를 물보다도 좋아하지만 지금은 맥주를 마시기에 이른 시간이다.

"아니. 그냥 차이 마실께."

나는 생선요리를 가리키면서 아이굴에게 물었다.

"이 생선 이름이 뭐야?"
"이거? 솜이야."
"솜?"
"응. 뼈없는 생선이야."
"뼈없는 생선이라. 키르키즈스탄의 화폐단위가 솜이잖아?"

원래 뼈가 없는 건지 아니면 뼈를 모두 제거한건지 모르겠다. 이 튀긴 생선요리를 하나 집어서 한입에 넣고 씹어보았지만 뼈와 가시가 느껴지지 않았다. 맛도 있고 신기하기도 해서 나는 그 생선요리를 먹으며 친구들과 대화를 했다.

아스카 부부는 4년 전에 결혼을 해서 지금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자신들은 결혼식을 3번 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 대학교 내에서 한번 하고, 무슬림 전통식으로 다시 한번을 하고, 마지막으로 현대식 결혼식을 한번 했다고 한다. 아이굴은 아스카보다 7살이 적은데 카자흐스탄에서 7살 나이 차이는 일반적인 경우라고 한다.

"이 호수 옆에 있는 공장은 무슨 공장이야?"

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거? 금속공장이야."
"금속공장?"
"응. 금, 은, 구리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공장. 이 도시에서 중요한 공장이야."
"그렇구나. 그 공장에서 엄청난 연기가 아침부터 나오더라구."
"맞아. 그 공장 때문에 도시 주민들의 건강도 나빠지고, 호수도 안 좋아지고 있어. 그 매연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거든."

그 말을 듣고서야 알 것 같았다. 어제 저녁에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난 계속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고 있다. 일 년 내내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 내가 웬 콧물을 이렇게 흘리나 궁금했는데 그게 어쩌면 저 공장매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생선을 먹으면서 한손으로는 연신 휴지로 코를 문지르고 있다.

아스카의 말에 의하면 발하쉬 호수는 농도가 낮은 염호라고 한다. 평균 수심이 10미터가 채 못 되는 이 호수는 겨울에 얼기 때문에 차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서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식사를 하고나서 아스카의 차를 타고 '작은 바다'라고 부르는 곳으로 갔다. 아스카의 집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이곳은, 오전에 보았던 고철과 쓰레기와 매연으로 가득 찬 그곳보다는 깨끗하다. 여기서는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고기잡이 배가 오가는 것이 보였다. 물론 여기에도 쓰레기가 있기는 하다. 깨진 술병과 작은 콘크리트 조각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쇳덩어리가 호수 주변에 버려져 있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이곳에서 탁 트인, 바다같이 넓은 발하쉬 호수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곳에는 폐선도 없고 호수에 버려진 녹슨 자동차도 없고 무엇보다도 구름처럼 하늘을 덮고 있는 매연이 없었다. 호수의 뒤를 가로막고 있는 도시의 아파트도 없고 오직 모래밭과 자갈들 그리고 그 너머로 커다란 호수가 보일 뿐이다.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발하쉬의 모습이 이런 것이던가? 아마 그럴 것이다. 울창한 숲과 나무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호수는 아니지만, 사막 가운데의 호수답게 황무지 같은 초원을 배경으로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 작은 바다, 발하쉬 호수.
ⓒ 김준희

▲ 작은 바다 발하쉬 호수, 아스카와 아이굴.
ⓒ 김준희
"내일 오후에 우리집에 와."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굴이 나에게 말했다

"내일 또?"
"응. 내일 '베스빠르막' 만들어 줄께."
"그게 뭐야?"
"카자흐스탄의 전통요리야. 내일 같이 먹자."

친구들의 환대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내일은 나도 뭔가 선물을 사서 친구들의 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일 오후 2시까지 내가 아스카 부부의 집으로 가기로 하고 우리는 호텔 앞에서 헤어졌다. 어느새 저녁이었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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