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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는 죽기 바로 전까지도 사망한 아버지를 위해 진혼곡(레퀴엠)을 쓰다가 류마티스 성 발진으로 35세의 꽃다운 나이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영원히 죽지는 못했다.

그는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영원히 살아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을 받는다. 오스트리아 출신 가수 팔코(Falco)는 그를 주제로 한 노래 '아마데우스'로 미국시장까지 진출했다. 또 체코 출신 밀로쉬 포만 감독은 1984년 할리우드에서 그의 광적인 면에 집착한 대작 <아마데우스>를 만들어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가 없었다면 피가로는 아직도 총각이었을 테고(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남자들은 여자들이 사랑 앞에서 어떤 존재(오페라 '코지 판 투테')인지 눈치도 못 챘을 것이다. 아이들은 마술피리(오페라 '마술피리')의 아름다운 멜로디도 듣지 못할 테고, 음악가들은 별이 반짝이는 밤에 작은 음악(클래식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직')조차도 연주하지 못했을 테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으레 기념품으로 '모차르트쿠겔른'이라 불리는 초콜릿을 사간다. '모차르트쿠겔른'은 이제 오스트리아 초콜릿의 일반명사다. 달착지근한 초콜릿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모차르트 럼, 와인 등 알코올 제품도 있고, 여성들을 위한 향수와 모차르트 티셔츠, 모자 등도 시판되고 있다. 뿐인가. 모차르트 요구르트, 모차르트 우유 등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렇게 그는 250년을 살아왔다.

모차르트의 경제적 가치

▲ All About Mozart! 얼굴이 크게 찍힌 모차르트 초콜릿(좌)와 모차르트 관련 상품들(우).
ⓒ 배을선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에 태어났다. 생존한다면 올해 나이 250살이다. 그는 음악 신동으로 불리며 어린 나이에 이미 콘서트 음악을 작곡했다.

모차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여지듯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핸섬한 음악가가 아니었지만 거의 매일 아침 미용사에게 가서 머리를 손질했으며 그의 목소리는 테너 가수처럼 너무 높아서 매력이 없었다는 소문도 전해진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스타로 대접받는 이유에는 그의 천재성과 성실성을 꼽는다.

▲ 영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모차르트는 새벽 2시까지 작곡했으며 새벽 4시에 다시 일어나 작곡을 시작했다"며 그가 '워커홀릭'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모차르트의 스타성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지닌 천문학적 수치의 경제적 가치다.

현재 전 세계에서 모차르트의 이름이 달려 판매되는 제품은 300여개가 넘는다. 이 제품들의 수익은 매년 5백만 달러(한화 약 60억)에 이른다. 여기에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관광객들로부터 거둬들이는 관광수입과 오페라, 콘서트 등의 고급문화가 산출하는 수익이 더해지면 총수익은 어마어마하다. 죽은 사람의 이름과 그의 유산을 통해 오스트리아는 매년 거대한 경제적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올해 오스트리아는 '2006년은 모차르트의 해'라고 선포했다. 250살을 맞는 모차르트를 위해 12개월 내내 그를 위한 '잔칫상'을 차린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모차르트의 생일잔치를 역사상 가장 성대하기 치르기 위해 약 1억5천만 유로(한화 약2천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2006년, 모차르트의 해

1월 27일부터 비엔나에서 열리는 '모차르트를 위한 파티'(A Party for Mozart)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곳곳에서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를 비롯 그와 관련된 영화, 전시회 및 여러 가지 프로그램 등이 다각도로 선보여질 예정이다.

▲ 모차르트의 해를 맞이하여 여러 미디어들이 모차르트에 관해 다루고 있다.
ⓒ Profil
'모차르트 하우스 비엔나'는 오는 1월 27일부터 모차르트가 살던 그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한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영감을 얻은 '마술피리구역'을 새롭게 선보인다. 또 필름 아키브 오스트리아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비롯 모차르트와 관련된 모든 영화를 상영한다.

뮤지컬 극장으로 유명한 '씨어터 안 데어 빈'은 플라시도 도밍고와 줄리안 라클린 등을 기용해 <돈 지오바니><코지 판 투테><마술피리> 등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공연할 예정이다. 비엔나의 '슈타트오퍼' 또한 '씨어터 안 데어 빈'과 공동으로 세계의 스타오페라 가수들을 무대에 세워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상연한다.

뮤지움 알베르티나는 3월 17일부터 9월 17일까지 '모차르트 2006'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대의 로코코양식, 고전주의, 로맨티시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미술품 등을 전시하며 '신동' 모차르트와 관련된 모든 것, 그의 여행, 그의 작품, 그의 인생에 중요했던 인물 등 관련된 모든 것을 각각의 테마에 맞춰 보여준다.

재즈연주자 칙 코리아(Chick Corea)는 7월 슈타트오퍼에서 '모차르트-정당성'이라는 재즈콘서트를 열며, 심지어 음악가 베르나르드 랑은 <나는 모차르트가 싫어>라는 오페라를 '씨어터 안 데어 빈'에서 11월 선보인다.

이번 또 올 한 해 동안 오스트리아에서만 30권 이상 새로운 모차르트 관련 서적이 출간될 예정이다. 유니버설 클래식의 마틴 키엔즐은 "모차르트는 최고로 잘 팔리는 작곡가"라며 "2006년 또한 모차르트CD 판매량에 낙관적인 기대를 걸고 있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했던 1991년 레코드사 필립스는 25.8% 증가라는 경이로운 판매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오직 모차르트만으로 가득 차 있다"

▲ 기념품 숍. 아예 간판도 모차르트로 달았다.
ⓒ 배을선
그러나 오스트리아 국민 모두가 '2006년 모차르트의 해'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젊은이들 상당수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너무한' 도시로 잘츠부르크를 꼽는다. 부어그테어터에서 음향전문가로 일하는 테드는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며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정원 등 아름답고 관광가치가 있는 곳도 모차르트에게 쏟아지는 관광정책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너무 관광상업적인 도시"라는 이야기다.

패션을 전공중인 베로니카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은 모차르트가 아니더라도 슈트라우스 1·2세, 클림트, 쉴레, 세계적인 디자이너 헬무트 랑 등 많다"며 "또 '레드불'과 '헤드' 등 각종스포츠상품도 많은데, 기념상품점이 오직 모차르트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지적한다. 베로니카는 이를 두고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보수적인 집착성"이라고 꼬집었다.

김나지움 저학년생인 13살의 야나는 "임머 모차르트!(immer Morzart: 항상 모차르트)"라고 운을 뗀 뒤 "일년 내내 모차르트와 살 걸 생각하니 너무 지겹다"고 말했다.

실제 모차르트와 관련된 상업성은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판매가 가능한' 전 분야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시판되고 있는 모차르트 우유와 요거트가 대표적인 예다. 또 모차르트 쿠겔른이 인기를 얻자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초콜릿 제품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 & 키치'라는 간판을 내건 양복점까지 생겼을 정도다. 이를 두고 여론과 미디어는 "상업성인가 아니면 관광사업으로의 정당성인가"에 대한 논쟁을 주요하게 소개하고 있다.

▲ 우유와 요거트로 시판된 모차르트.
ⓒ 배을선
잘츠부르크와 비엔나에서 모차르트의 해 공식 콘서트를 지휘하게 될 니콜라우스 하논쿠어트는 주간지 <프로필>과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가 모차르트의 해를 기념하는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모차르트의 생후 250년을 기념해 전 세계적으로 모차르트 열풍이 불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많이 모차르트가 연주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합하지 않은 장소에서 모차르트가 연주되고 모차르트의 이름이 악용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를 향한 열풍은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모차르트를 위한 성대한 1년간의 생일잔치가 제대로 된 모차르트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잔치가 될지, 아니면 경제적 가치로만 포장돼 모차르트를 조국 오스트리아에 끌려 다니는 상표로 낙인찍을지 두고 볼 일이다.

모차르트의 삶과 죽음에 관한 8가지 궁금증

1.안토니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 모차르트의 사인은 류마티스 성 발진. 항간에는 경쟁자였던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설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아직까지 확실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살리에리는 "너무나 어리석은 소문일 뿐이며 결코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2. 상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묻힌 모차르트는 가짜 모차르트?... 1791년 사망한 모차르트는 상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 미스터리로 남아왔다. 소문에 의하면 모차르트가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를 아는 사람이 모차르트의 두개골을 훔쳐내 보관해왔는데 여러 경로를 거쳐 모차르트 재단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리움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러나 두개골의 아래턱이 없어져버린 상태였다. 이 두개골이 과연 모차르트의 것일지 의문이 많았는데 공영방송인 ORF는 1월 8일 <모차르트; 증거를 찾아서> 프로그램을 통해 두개골 DNA결과를 대중에 공개할 예정이다.

3. '영혼'이 '진혼곡'을 주문했다?... 저승사자가 모차르트의 문간에 나타나 발신자불명의 편지('진혼곡'을 작곡하라는)를 전해줬다는 설이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친구였던 그라프 프란즈 봘세그의 부탁으로 '진혼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4. 모차르트는 영원한 소년?... 모차르트의 누나 난네를은 회의록을 통해 "모차르트는 언제나 아이 같았다"고 고백했으며 그의 부인 콘스탄체 역시 모차르트를 "영원한 소년"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1996년 전기 작가인 마이나르드 솔로몬에 의해 입증된 바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가족의 모든 경제적 책임을 지고 있었고 후에는 콘서트기획자, 작곡가, 음악선생 등으로 바쁘게 일하는 '가장'이었다.

5. 항문과 배설물을 시로 승화하는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사촌인 마리아 안나 테클라에게 보내는 편지에 배설물과 관련된 시를 적었다. '좋은 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지직 소리가 날 정도로 침대에 대변을 보세요. 건강하게 주무십시오. 항문을 입까지 쭉 펴세요." 1777년에 쓴 시다.

6. 모차르트는 머리 속에서 작곡을 끝냈다?... 그 어떤 작곡가도 모차르트처럼 빨리 작곡을 하지 못했다. 모차르트는 그의 악보를 이미 머릿속에서 완결시킨 후 종이로 적어내는데 약간의 시간을 더 할애했다.

7. 모차르트는 가난했다?... 모차르트는 말년에 매우 가난하고 병세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프랑스 등의 다른 유럽국가의 궁정에 초대되는 전 유럽의 스타였고, 매우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지금으로 치자면 최고 잘나가는 의학박사가 받는 연봉을 받았다"고 잘츠부르크 예술대학 모차르테움 뮤지움의 총장 가브리엘레 람사우어가 밝혔다. 모차르트는 시쳇말로 '명품'만 입었으며 비엔나 1구의 매우 비싼 플랫에 살았으며 그의 아들은 사립학교에 보낼 정도로 부자였다.

8. 모차르트는 인정받지 못한 천재였다?... 그는 그 당시 이미 인정받는 천재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전 유럽을 순회하며 콘서트를 열 정도로 유명했으며 비엔나 귀족들은 성인이 된 모차르트 역시 매우 아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모차르트는 개인적으로도, 또 이름만 들어도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고 말했다.

* 참고자료 < Profil > / 배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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