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에 국가보안법도 끼워 넣었으면…."
지난 9일 김원기 국회의장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자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같이 아쉬움을 표했다.
사학법 처리로 기세가 오른 열린우리당 내에서 조심스럽게 국가보안법 폐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당 홈페이지에는 "이 참에 국가보안법도 밀어붙여라"라는 지지자들의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배우 문성근씨는 "그런 식으로 그동안 못했던 것 몽땅 밀어붙여주시길"이라는 문자메시지를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보내기도 했다.
'급한 일'에 밀리는 국보법... "2년 뒤로 넘어갔다"는 전망도
작년 연말 어렵사리 통과된 신문법, 과거사법에 이어 사학법이 처리됨으로써 열린우리당이 내세운 '4대 개혁법안' 중 국보법 폐지안만 남았다. 국보법은 지난 8월 의원워크숍에서 결의한 '11대 입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법사위 상정만도 정치적으로 큰 무리수인데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학법 처리로 돌아온 민심이 국보법으로 다시 돌아설까 걱정인 게 당내 지배적인 분위기다.
국보법 폐지 여론은 아직 반대가 우세한 상황. '중도를 잡아야 하는 열린우리당 입장에선 개혁 지지층의 요구에만 귀기울일 수 없는 처지다. 무엇보다도 국보법을 협상테이블에 올리는 순간, 한나라당의 반발로 나머지 법안들의 처리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당 지도부의 판단이다.
정세균 의장은 국보법 처리를 묻는 질문에 "국회 법사위에서 계속 얘기는 하고 있다"며 "다른 급한 일 때문에 밀리는 것"이라고 곤혹스러워 했다. 민병두 기획위원장도 "11대 과제를 완결한다는 목표로 논의를 해 본다는 입장"이라며 원칙 수준에서 말을 아꼈다.
민 의원은 "내가 국가보안법으로 두 번이나 감옥에 갔다온 사람인데 왜 없애고 싶지 않겠냐"면서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데 수긍했다. 실제로 지도부 회의 테이블에 국보법은 안건으로 올라오지도 않았다.
사학법은 넘었어도 국보법까지는 못 가는 열린우리당의 처지
국보법 폐지에 대해서는 가장 강경한 입장인 임종인 의원도 "올해 국보법이 논의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당내에 (국보법 처리를 위한) 동력이 없다"며 "처리하려면 작년에 했어야지"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임 의원은 최근 사학법 처리로 열린우리당이 상승 국면에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작년 국보법을 처리하지 못한 게 지지층을 잃은 결정적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음 원내대표를 잘 뽑아야 한다"며 내년을 기약했다.
집행위원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작년 국보법의 국회의장 직권상정이 좌절된 것에 대해 "내부 요인이 컸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밀어붙이려 했지만, 이른바 실용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만류했고 의장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고 전했다.
법사위 소속의 한 의원은 "2년 뒤로 넘어간 것 아니냐"며 17대 국회 내 처리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사학법 처리로 잔뜩 고무된 열린우리당. 하지만 이 여세를 국가보안법 폐지로 몰아가기엔 역부족인 처지가 열린우리당의 또 다른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