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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가리꽃
박주가리꽃 ⓒ 권용숙
내 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박주가리'를 알았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한 여름, 사람들이 덥다고 입고 있던 옷을 하나 둘씩 벗어 던질 때 박주가리 꽃은 연보라색 별 닮은 꽃잎과 솜털 옷까지 겹겹이 껴입고도 햇살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 있었습니다. 나는 삼복더위에 털옷까지 입은 별 닮은 꽃을 처음 본 순간, 올해 꼭 그 열매 안에 들어 있는 씨앗을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박주가리 열매
박주가리 열매 ⓒ 권용숙

마른 박주가리 열매가 터져 씨앗이 보입니다
마른 박주가리 열매가 터져 씨앗이 보입니다 ⓒ 권용숙
내 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박주가리' 씨앗을 훅 불어 날려 보았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박주가리 씨앗은 한 움큼씩 날아갑니다. 나도 바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잠시 바람이 멈추었을 때 박주가리 씨앗을 한 움큼 빼내 훅 불어 날렸습니다. 하얀 비단실 밑에 씨앗 하나씩을 매달고 훨훨 날아갑니다. 내 마음도 잠시나마 세상시름 잊고 둥둥 떠 따라갑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 가서 만날지 약속도 없습니다. 그냥 저 가고 싶은 곳까지 마음껏 날아갑니다. 박주가리 안에 남은 씨앗들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땅위엔 미리 날아간 박주가리 씨앗들이 하얗게 내려 앉아 있었습니다.

ⓒ 권용숙

ⓒ 권용숙

ⓒ 권용숙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비닐하우스 위에 떠 있는 씨 하나만 겨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럴 때 차라리 카메라가 없었으면 싶습니다.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비닐하우스 위에 떠 있는 씨 하나만 겨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럴 때 차라리 카메라가 없었으면 싶습니다. ⓒ 권용숙
내나이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아들에게 자연을 선물 했습니다.

울퉁불퉁 두꺼비 마른 등껍질 닮은 박주가리 열매 두개를 따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가져왔습니다.

"선물이야."

희한하게 생긴 까칠까칠한 열매를 선물로 받은 아들은 선물이란 말에 엷은 미소를 띠더니 금방 알아차리고 껍질을 벌려 씨앗을 날렸습니다. 그 애가 날린 씨앗중 하나라도 양지바른 곳에 날아가 싹을 틔우길 바랍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내 나이 열둘에 처음으로 '박주가리' 씨앗을 훅 불어 날려 보냈습니다."

ⓒ 권용숙

ⓒ 권용숙

ⓒ 권용숙

덧붙이는 글 | 박주가리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입니다. 줄기와 잎 속에 흰 유액이 들어 있습니다. 잎은 마주나며, 뒷면은 뽀얗고, 약간 두꺼운 편입니다. 꽃은 한여름에 피고, 연한 자주색이거나 흰색이며, 안쪽에 털이 빽빽하게 나 있습니다. 꽃잎이 뒤쪽으로 도르르 말리는 모양이 재미있습니다. 열매는 다 익으면 갈라지는 열매, 즉 골돌(follicle)이며 표주박모양입니다. 열매의 크기는 손가락 길이 정도이며, 표면에 사마귀 모양의 돌기가 있습니다. 박주가리 열매가 벌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냥 한번 훅~ 불어보세요. 정말 예쁘게 하늘로 날아간답니다. (네이버 오픈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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