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이은 비로 충주 들녘이 온통 물에 잠겼다. 길을 새로 닦는 곳들도 빗물에 금이 쩍쩍 갈라졌고, 누렇게 익은 벼들도 폭탄을 맞은 듯 죄다 쓰러졌다. 신니면 들녘을 둘러봐도 그렇고 단월면과 살미면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지나치며 본 목행동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벼들도 많이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쳐 가는데 저 멀리 도로 옆으로 외딴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허름한 집이었다.
서서히 그 집을 지나쳐 갈 때였다. 점점 더 그 집이 크게 들어왔고, 점차 그 집 앞 조그마한 길옆으로 새끼 고양이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 두 분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보였다. 아마도 쓰러진 벼들 때문에 속이 상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냥 지나치기가 그랬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어봤던 나는, 금쪽같은 벼들이 쓰러진 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있을지 알 것 같아, 그 분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에 내려 그 집으로 꾸역꾸역 들어가 몇 마디 말을 건넸다.
“할머니, 벼들이 많이 쓰러져서 속상하시겠어요.”
“뭐, 다들 그렇지요. 나만 그렇겠어요.”
“그러게요. 이번 비는 너무 많이 왔어요. 야속하시죠.”
“그래도 이 할망구 논은 괜찮은 편이예요. 우리 집 논은 더해요.”
“그러셨어요. 할머니는 다른 곳에 사시나요?”
“우리 집은 이 산 너머에 있어요.”
“그럼 놀러오셨나 봐요.”
“그렇지요. 뭐.”
“저도 어렸을 때 농사를 지어서요, 괜히 안 됐다 싶어서 왔어요.”
“그래요, 고마워요.”
“이 할망구야 뭐해, 이 젊은 양반에게 저거나 따 줘.”
사실 나는 괜히 마음이 아파,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분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을 받으려고 갔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어렸을 적 내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던 생각이 쓰러진 벼들 사이로 떠올랐고, 지금은 칠순이 넘어서도 농사를 짓고 있을 내 어머니 모습이 그 할머니들의 얼굴 속에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다가섰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되레 그 할머니들이 무언가를 주겠다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할머니, 그게 뭐예요.”
“이것이 차에 싣고 다니는 '쇠똥오이'에요.”
“그래요. 무슨 좋은 냄새라도 나나요?”
“모르지요 뭐. 다들 차에다 싣고 다닌다니까."
“그럼, 좋은 향수는 안 나겠는데요.”
“모르지요 뭐.”
“아무튼 너무 고맙습니다.”
그 놀놀한 열매가 ‘쇠똥오이’라는데 사실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겉 표면이 오독오독 조금씩 튀어나왔고, 야구공처럼 너무나 작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먹을 만한 것은 아닌 듯했다. 그저 모과 열매처럼 차에 싣고 다니면 뭔가 모양새가 날 듯한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그 할머니들이 내게 베푼 사랑의 열매는 그 무엇보다도 큰 것이었다.
오늘은 그래서 쓰러진 벼들로 마음 상해 있을 그 할머니들을 위로하려다, 오히려 내 어머니와 같은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 때문에 어린 시절 쓰러진 벼들을 함께 세웠던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어머니 같은 그분들에게서 좋은 것도 선물 받지 않았나 싶다. 참 고마운 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