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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넉넉한 밤에 차차 달이 차오르면 동네 친구들과 얘기나누며 걸으면 왁자지껄 몰려갔다.
한가위 넉넉한 밤에 차차 달이 차오르면 동네 친구들과 얘기나누며 걸으면 왁자지껄 몰려갔다. ⓒ 김규환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달이 차오른다. 벌써 마음은 고향에 가 있는 사람도 있을 터. 며칠 뒤 오랜만에 고향 선후배 간에 서먹서먹한 만남이 이뤄질 거다.

반가운 마음에 "어이, 자네 왔는가?"했다간 "야 임마!"라는 소리도 없이 귀싸대기를 후려갈길지도 모른다. 만일 30대 후반에서 40대 중후반 사람이라면 '이상하네. 예전엔 그렇게 친했고 나무하러 갈 때나 꼴 벨 때는 그렇게들 불렀었는데…'하며 덩달아 의아해한다.

후배가 "요즘 자넨 먹고 살만한가?"라고 안부를 물을 수도 있겠다. "야, 너 잘 살고 있냐?"로 들리니 난감한 일이다.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씩씩거려봤자 소용없다. 주먹다짐을 할 수는 없잖은가?

생활이 농촌에서 도시로 바뀐 뒤 늘 쓰던 '자네'가 거의 죽은말이 되었다. 여기에 상호 오해까지 불러일으킨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개는 '자네'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대(下待)하는 뜻으로 낮춰 부르는 말쯤으로 여기니 지난 20, 30년이라는 짧고도 긴 세월이 의사소통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분란의 단초 '자네'

오래 전 나는 초등학교 1년 선배이면서 나이로는 1년 연하인 사람에게 "자네"라 불러서 된통 당한 적이 있다. 그뿐인가. 2년 선배에게 친근한 표현으로 '자네'라고 해서 싸움 일보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다.

내가 잘못된 건가. 내가 교육을 잘못 받았는가 말이다. 국어학 전공자 부럽지 않게 열심히 도를 닦았고 한문학에도 조금은 관심을 기울인 사람으로서 결론을 먼저 내리면 '자네'라는 말은 결단코 내가 잘못 쓰지 않았다.

다만 학교 교육이 있고서부터 차차 사라져가는 말이라는 것일 뿐이다. 이참에 '자네'에 대해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공교육 때문에 함부로 쓰지 못하는 이 말에 담긴 뒤끝을 훌훌 털어내지 않고서는 찜찜해서 올 명절 지내기 힘들 것이 자명하다.

스스럼없이 남편에게 '자네'라고 불렀던 조선 중기

벌개미취 두 송이가 사랑을 나누고 있네.
벌개미취 두 송이가 사랑을 나누고 있네. ⓒ 김규환
자네는 조선시대에도 즐겨 썼다. 아낙이 사내인 남편에게도 종종 썼다는 사실을 최근에 발견했다.

1998년 경북 안동 정상동 분묘를 이장하던 중 조선중기를 살았던 이응태(1556~1586) 일가족이 미이라 상태로 발견되었다. 부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간 남편에게 보낸 구구절절하고 애틋한 편지글에서 '자네'라는 말이 요즘의 '당신', '여보', '자기'처럼 애용된다.

원이 아바님께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요즘말로 해석은 각자 해보자. 그뿐이 아니다. 형 이몽태가 동생인 이응태에게 쓴 시에도 '자네'가 쓰이고 있다.

위아래 가리지 않고 썼던 '자네' 흔적이 오래 남아 있었던 내 고향

그 흔적이 내 고향 전남화순 등 동서를 가리지 않고 남부지방에 아직 남아 있다. '자네'는 낮춤말도 높임말도 아니다. 그냥 평어다. 윗사람만 쓰는 말도 아니다. 위 아래로 막걸리 사발이나 나누었고 나무지게 지고 산꼭대기까지 오가던 사이에서나 씀직한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자네'라고 하면 큰일 난다. 허물없고 이물 없는 사이가 아니라면 '자네'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연장자인 상대가 용인할 정도로 친해야 한다. '어이~'나 '자네'는 한통속이어서 거의 같이 쓰인다. 나이로 보면 상하 10살 내외에서 무난히 쓸 수 있다.

고향에 가면 이런 석양을 만날 수 있을까?
고향에 가면 이런 석양을 만날 수 있을까? ⓒ 김규환
내가 어릴 적 동네 형들은 심심치 않게 모여서 놀았다. 거기에 기막힌 풍경이 있었다. 위아래 10년이니 삼촌이나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이 어울린다. 중간 나이쯤 되는 사람은 손위 형들에게 '자네'라고 부른다. 또한 아래 10년 동생들이 '자네'라고 불러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주고 허허실실 술잔을 돌렸다. 그가 못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일상에서 쓰는 말이었을 뿐이다.

만약, '자네'라는 말을 받아주지 못한다면 당신은 옹졸한 사람이거나 졸렬하다고 자문해야 한다. 이에 화를 낸다면 무식한 티는 내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누군가 그래도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대는 과감히 그와 관계를 청산해도 후회 없으리라.

반갑고 그리운 이 있거든 '자네'라 불러보는 정겨운 추석이길...

오 자네 왔는가
이 無情한 사람아
淸風에 날아왔나
玄鶴을 타고 왔나
자네는 墨이나 갈게
나는 자우차 끓임세.

- 金時羅-


올 추석엔 이렇게 맞으라. 시인도 그리운 사람이 옴에 하대(下待)하지 않고 반가움을 그리 표현했다. 친하지 않았다면 차라도 한잔 내줄 성 싶지 않은 심성의 소유자인지는 몰라도 그가 이렇게 한 데는 그만큼 막역하다는 반증 아니고 뭔가. 여기서 나이나 지위고하가 끼어들 소지는 전혀 없다.

모름지기 사회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말이 사회를 반영한다. '자네'가 대표적인 예이다. 국어사전에 용례가 없으니 빚어진 안타까운 상황이다. 자네[대명사]: 하게할 자리에, 상대자를 가리켜 일컫는 말로 서울 어느 대학 탁상에서 만든 사전의 병폐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다만 죽은 말을 즐겨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말이 쓰인 지난날을 반추는 하고 넘어가서 분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막역지우를 만나거든 차를 세우고 오랜만에 '자네'라고 한번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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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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