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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는 가벼운 재미에 있다. 부담 없이 방심하면서 읽을 수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한 것을 맛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추리소설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재미다.

그렇다. 누가 추리소설에서 고민거리를 얻고 싶겠는가? 지능 전을 펼치는 작가의 도발과 깜짝 놀랄 장면은 백번 기대해도 어깨가 무거워지고 숙연해지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연쇄살인이나 테러 같은 사회 현상은 허용해도 이태백이나 정년퇴직 같은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추리소설에서까지 그런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것을 허용하게 만든다. 그는 추리의 세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깊이를 담을 줄 안다. 그렇기에 여타 작품들처럼 책을 덮은 뒤 주인공의 개성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지배하는 메시지를 공유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은 책장의 마지막을 덮은 뒤 복선이 어떻게 쓰였나 하는 추리의 요소들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책장을 펼치게 하지만 지은이의 책은 다르다. 메시지 때문에 책의 중간 중간을 펼치게 만든다.

<변신>도 그렇다. 인간의 무의식과 뇌라는, 미지의 영역이기에 인간이 언제나 호기심을 품고 있는 그 영역들을 끌어들인 <변신>은 추리소설답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메시지 전달에 애를 쓴 작품이다.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을 살릴 정도로 과학이 발전해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무의식의 세계를 떠돌고 있는 무의식적인 욕망 또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나'라는 존재의 의의는 무엇인지 등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 처음으로 사귄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소박한 희망과 그림을 그리는 작은 취미로 살아가는 준이치라는 남자가 있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상사의 비위를 거스르지 못하는 그는 어린 시절 그 기질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또한 어머니가 죽은 이후에도 그 기질로 살아간다. 한마디로 어른들이 보면 '매가리 없다'고 말할 성격의 남자다.

그러던 준이치가 방을 구하러 다니던 중 복덕방에서 사고를 당하게 된다. 어린아이를 대신해서 강도의 총에 죽게 된 것이다. 평소의 그라면 절대 할 수 없을 행위였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총을 맞고 죽을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과학 덕분에 죽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성인 뇌 이식' 수술 덕분에 살아난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살아난 것이 과학의 기적 덕분이라고 여긴다. 그도 기뻐하고 여자친구도 기뻐한다. 아이를 구한 모범 시민으로 '남자답다'는 말을 들으며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던 준이치가 정말 남자답게 변한다. 소극적이고 나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열정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준이치는 이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반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위 사람들도 그것을 떨떠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준이치를 피하게 된다. 너무 남자다워서 그런지 준이치가 사람을 때리고 생명을 빼앗을 뻔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주인공의 변화된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뇌를 제공한 사람의 기질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 말이다. 준이치 역시 자신이 변한 것이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그 사람을 찾아보는데 <변신>은 그렇게 쉽게 답을 주지 않고 이때부터 작품은 본격적인 미궁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시작한다.

<변신>은 추리소설로서 추리적인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메시지에 대한 공감이 더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작품의 표면에 나타난 추리가 아닌, 주인공이 보여주는 기이한 행동들이 뇌를 이식받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핑계로 한 무의식의 발현인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그러한다.

나아가 작품은 '나'의 존재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그것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것 또한 독자의 몫이다. 내 머릿속에 타인의 뇌가 들어가 있다면 그것도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나도 몰랐던 혹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본능과도 같았던 기질에 의한 행위를 저질렀을 때 그것 또한 나의 행위라고 할 수 있는지 등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질문들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변신>은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을 제공하는 독특한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추리소설로서는 최고의 수식어라고 할 수 있는,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추리를 선보일 줄 아는 작가로 유명한 지은이는 분명 뛰어난 추리 작가다. 놀라운 추리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읽는 이를 위한 생각거리들을 만들 줄 알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정도가 지나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평형상태를 유지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추리소설은 여름이 제 철이라고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예외다. 독특한 맛깔스러움은 사시사철 어느 때나 통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창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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