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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파게티에 필이 꽂힌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부터다. 건조하고 무표정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주인공이 늘 스파게티를 먹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던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무채색 감성을 짚어냈으며, 나도 그에 열광하는 한명이었다. 그래서 내게 일본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로 통했다.

 

10여 년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최근에 알게 된 일본작가 가네하라 히토미. 그녀의 소설은 세상에 속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 있었으며 그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10년 전의 세대와 지금 세대의 젊은이들이 표현하는 상실과 어둠은 참으로 극과 극인 것만 같았다.

 

내게 일본 소설이란 감성이 바닥을 치거나 어둠으로 발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맛본 일본 소설은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의 내게 메인 요리의 깊은 맛을 느끼기 해 준 여러 일본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그 중의 하나다.

 

세계 최초의 뇌이식 수술

 

 <변신>의 겉 표지
<변신>의 겉 표지 ⓒ 창해

뇌이식? 간을 이식하고 안구를 이식하고 안면까지 이식하는 첨단의학 기술은 과연 사람의 뇌까지 이식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은 세계 최초로 뇌이식 수술 후의 상황에서 시작한다.

 

소심하지만 착하게 살아왔던 나루세 준이치(24)는 산업기기 제조업체의 서비스 공장에서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동산 중개소에 일을 보러 갔다 강도를 만나게 되고 어린 소녀를 구하려다 머리에 총상을 당한다. 그로인해 자신의 오른 쪽 뇌를 절단하고 다른 사람의 뇌를 이식받게 된 준이치는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하지만 준이치에겐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화가를 꿈꾸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고 이상하게 피아노 소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하물며 주근깨마저도 사랑스러웠던 애인 메구미를 바라보고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른쪽 뇌를 이식받은 이후 건강한 육체를 회복했지만 얌전하고 겁 많고 소극적이었던 그가 사람들과의 조그만 의견대립에도 화를 참지 못하는 도전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했으며 결국엔 자신도 모르게 살의를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난폭하고 차갑게 변한 준이치의 모습에 회사 동료들과 주위 사람 모두 그를 멀리하지만 애인인 메구미만이 뇌이식으로 변해가는 그의 옆을 지킨다. 하지만 자신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쇼핑을 할 때도 늘 웃어 주었던 준이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 견디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붕괴를 느끼며 혼란스러워 하는 준이치는 자신의 도너(신체를 기증한 자)를 스스로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했던 도겐 박사의 말이 거짓임을 밝혀내며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인격으로 변한다면 그건 나일까? 그일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뇌이식이라는 생소한 영역의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풀어나간다. 드라마 요소와 추리를 적절히 배합해 의학 미스터리라는 다소 어려운 장르를 쉽게 설명해 놓았다.

 

실제로 뇌를 이식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이는 간을 이식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감정과 행동을 좌우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해해 토막내 버리고도 공포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준이치가 선택한 것은 결국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변신>은 평범했던 한 남자가 뇌이식을 받으며 조금씩 정체성을 잃고 괴로워하며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뇌이식으로 인해 과거의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나의 존재여부를 알리는 것은 건강한 육체와 감정 중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현재의 의학기술로 뇌이식이 성공하게 된다면 일어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변신>은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끊임없는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늘 이로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창해(2005)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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