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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상봉에서 '조국통일만세!'를 부르는 남북 작가들
백두산 상봉에서 '조국통일만세!'를 부르는 남북 작가들 ⓒ 북녘기자단

백두산 해돋이 장관,  어둠을 가르고 마침내 해가 솟다. 이처럼 조국통일도 불쑥 솟아오르기를
백두산 해돋이 장관, 어둠을 가르고 마침내 해가 솟다. 이처럼 조국통일도 불쑥 솟아오르기를 ⓒ 박도

장엄한 해돋이

2005년 7월 23일 새벽 5시 5분, 백두산 상봉에서 동녘 하늘을 바라보자 두꺼운 검은 구름 장막을 헤치고 시뻘건 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이 순간 백두산 상봉에서 해돋이를 기다리던 200여 남북의 문인들이 서로 얼싸안고 '조국통일만세'를 외쳤다. 이곳 안내원들은 이렇게 산뜻한 해돋이는 여간해서 볼 수 없는 대장관이라고 극찬하였다. 이어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 가운데 하나인 '백두산 해돋이 마중 대회'가 열렸다. 먼저 남과 북의 작가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공동선언문이 낭독되었다.

우리 민족 작가들은 6·15 공동 선언을 조국의 유일한 이정표로 삼아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아래 민족, 자주, 반전 평화, 통일 애국의 정신으로 문학 창작에 매진할 것이며, 우리 작가들은 사상과 신앙, 출신 지역과 입장을 넘어 굳게 단합하며 민족 문학 활동에서 연대와 연합을 더욱 활성화해 나갈 것이다(요지).

공동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모든 참가자들은 환호와 박수로 맞았다. 이어 민족작가대회 공동위원장 고은 시인이 마이크 앞에 섰다.

해가 솟아오르자 남의 고은 시인(오른쪽)과 북의 홍석중 작가가 포옹하고 있다
해가 솟아오르자 남의 고은 시인(오른쪽)과 북의 홍석중 작가가 포옹하고 있다 ⓒ 박도
해뜬다
이 삼천리강산 모든 풀잎들
꽃잎 이슬들
아침 햇발 한 살 한 살에 눈 뜬다
물싸리꽃 곰치꽃
우정금꽃
기뻐라

일 백 년 전 하나였던 것
일 백 오십 년 전 하나였던 것
아니 삼백년 전
어느 먹밤 터무니에
오로지 하나였던 것

일 백 년 후
어찌 하나 아니겠냐는 것
…………
- <다시 백두산에서>


북의 박세옥 시인도 이에 답하여 '백두산의 축복'이라는 시에서 "백두산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자"고 노래하였다. 이어 남과 북, 해외동포문인들이 번갈아 나와서 통일염원 기원문과 남북 작가들이 60년만의 만남에 축하메시지를 쏟았다. 그 노래와 말씀들은 백두산 상봉에서 메아리쳐서 남으로 남으로 조국강토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북측의 한 젊은 시인이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아껴왔지만 이제부터는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마음껏 합시다"라고 삼천리강토, 그리고 나라 안팎의 모든 백성들에게 피맺힌 절규를 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이름을 묻자 그는 내 취재 수첩에다가 다음과 같이 써주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합시다. 우리 민족끼리 2005. 7. 23 박경심"

2005 민족작가대회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고, 앞으로 통일의 대장정에 지표가 될 말이었다.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 조선출판

조국은 하나다

남측의 한 문인(정지아)이 돌아가신 김남주를 대신하여 마이크 앞에 섰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 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 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탄생의 말 응아응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말 아이고아이고에 이르기까지
조국은 하나다 라고
갓난아기가 엄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엄마 엄마 위에도 쓰고
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 가지는 인간의 길
오르막길 위에도 쓰고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고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오 조국이여
세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여 이름이여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당신이 맨 먼저 보게 되는 천정 위에도 쓰고
눈을 감으면 한밤에
맨 나중까지 떠 있는 샛별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축복처럼
만인의 배에서 차오르는 겨레의 양식이여
나는 쓰리라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다에 가서 쓰리라 모래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세월이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가슴에 내 가슴에 수 놓으리라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도록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외치리라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벽에 대고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식민지의 낮과 밤이 쌓아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 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백두산에서 바라본 조국강산
백두산에서 바라본 조국강산 ⓒ 박도
김남주 시인이 감옥 안에서 우유 곽에다 은박지에다 못 도막을 갈고 갈아 꼭꼭 눌러 몰래 쓴 이 시를 백두산 상봉에서 다시 들을 줄이야. 그가 감옥에서 명줄 한 올과 맞바꾸며 시를 쓸 때 나는 무얼 하였던가. 시가 낭독되는 내내 온몸이 감전된 듯 부르르 떨렸다. 우리 7천만 겨레의 가슴에다 새길 말은 이 '조국은 하나다'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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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에서 제정하기로 한 제1회 통일문학상은 그에게 바치는 게 살아남은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백두산에서 하산길, 서편 하늘에 달이 지다.
백두산에서 하산길, 서편 하늘에 달이 지다. ⓒ 박도
북측의 안내원들도, 백두산 관리소에서 나온 이들도, 모두들 오늘 같이 상쾌한 해돋이는 연중 며칠 되지 않는다고 감탄하면서 조국통일과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에 상서로운 징조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하긴 이번 행사로 남북의 작가들은 이미 통일의 물꼬가 터지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자 남정현 선생이 몸이 불편하셔서 행사장에는 참석도 못하시고 차 안에만 계셨다.

예까지 와서 백두산 상봉과 천지를 보지도 않고 하산하시면 얼마나 섭섭해 하실까? 해가 오른 뒤라 바람도 좀 잔 듯하여 밖으로 모셔서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드렸다. 선생은 백두산 상봉과 천지의 장관에 무척 감탄하시면서 '조국통일 만세!'를 부르셨다.

불편한 몸으로 백두산에 올라 천지 앞에서 조국통일만세를 부르는 <분지>의 작가 남정현 선생
불편한 몸으로 백두산에 올라 천지 앞에서 조국통일만세를 부르는 <분지>의 작가 남정현 선생 ⓒ 박도
내가 대학시절 선생의 <분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의 기발한 착상과 현실을 뛰어넘는 신랄한 풍자 정신과 억눌린 사람의 한을 대변하고 그를 정화시키는 용기에 얼마나 감동했던가. 그러면서 작가 남정현 선생은 무척 딱딱하고 전투적인 무서운 분으로 여겼는데, 이런저런 일로 여러 차례 만나 뵈자 내 선입관과는 정반대로 마음이 몹시 여리고 새색시마냥 수줍음을 잘 타는 충청도 양반이셨다.

백두산 천지에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버스에 올랐다. 서편 하늘에 달은 그제까지 떠 있었다. 올 때는 어둠으로 미처 살피지 못하였는데 백두산으로 이르는 고원지대에는 상서로운 운무가 걷히고 있었다. 푸른 초원에 고산화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와서 저 고산식물과 울긋불긋한 고산화를 모두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이른 아침의 백두산  초원지대
이른 아침의 백두산 초원지대 ⓒ 박도
한동안 초원지대가 지나자 이깔나무 지대였다. 아직 포장이 되지 않은 임간도로를 달렸다. 아침 공기가 엄청 상큼했다. 옆자리의 심기섭 안내원이 깔깔 웃으며 한 마디했다.

"아니 새벽에 백두산에 오르는 사람이 반바지 차림이 뭐예요. 내 어떻게나 웃었던지 올 한 해 웃을 것 다 웃었습네다."

남측 참가단원 가운데 한 회원이 출발 전날 예비소집 때 집행부에 반바지차림도 좋으냐고 물었다. 분명 집행부에서는 반바지와 청바지차림은 삼가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도 기어이 그 회원은 이른 새벽 백두산을 오르면서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다. 막상 백두산을 오르자 기온도 차고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그는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버스기사들이 덮는 담요를 빌려서 온몸을 칭칭 감고서 다니는 모습이 그의 눈에는 우스꽝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어느 집단에서나 많은 사람이 모이면 괴짜나 튀는 행동을 하는 이가 있게 마련인데, 일률적인 통제사회에서 사는 북녘사람에게는 그런 자유분방함이 도시 '리해'가 안 된 듯 보였다. 버스는 곧 베개봉호텔에 닿았다.

백두산의 숲
백두산의 숲 ⓒ 박도

백두산~삼지연 임간도로
백두산~삼지연 임간도로 ⓒ 박도

덧붙이는 글 | 2005년 9월 1일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사> 사진집을 우당기념관과 필자가 공동으로 '눈빛출판사'에서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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