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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근 할아버지집 앞, 전혀 생소하게 생긴 모양새, 긴 대나무에 짚풀이 걸려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박동근 할아버지집 앞, 전혀 생소하게 생긴 모양새, 긴 대나무에 짚풀이 걸려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서정일
대문 기둥 사이로 대나무가 기다랗게 가로로 얹어져 있다. 그 가운데 두 무더기의 짚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필경 아이를 낳으면 치는 금줄일 것이란 추측이 가지만 저렇게 생긴 금줄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인지라 관람객들은 고개만 갸웃거리며 지나간다.

낙안읍성 남내리에 있는 박동근(79) 할아버지 집 앞 풍경, 관람객들은 무슨 뜻으로 걸어놓은 것일까? 금줄이라면 참으로 특이하게도 쳐 놨네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선뜻 말 걸기가 어색하기 때문인지 잠시 머뭇거리다만 모두들 지나친다.

"소가 새끼를 낳았어."

싱글벙글하는 박할아버지는 누가 물어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던지 기자의 관심에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것저것 상세히 가르쳐준다.

삼일전에 태어난 송아지(뒷편) 가 엄마소(앞쪽)의 보호를 받고 있다
삼일전에 태어난 송아지(뒷편) 가 엄마소(앞쪽)의 보호를 받고 있다 ⓒ 서정일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산모가 아이를 낳게 되면 새끼를 꼬아 아들이면 '고추'를, 딸이면 '숯'을 군데군데 매달아 대문 기둥 사이에 매 놓는다. 그것을 금줄이라 하며 그 의미는 불손한 사람의 방문을 막는다는 뜻이다.

그 풍속을 그대로 소에게 적용해서 소가 새끼를 낳으면 역시나 대나무에 짚풀을 메달아 놓아 잡귀를 쫒고 액을 막으려는 의도다. 농경사회에서 소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송아지가 태어나면 사람에 버금가는 대우를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이 삼일째지."

송아지를 위해 치는 금줄은 태어난 지 삼일 째까지 대문에 걸어놓는다고 한다. 유달리 삼(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민족이기에 토속적인 신앙의 깊이 있는 의미를 떠나서도 저절로 이해가 되는 숫자 인 삼, 금줄을 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늘 걷는 모습은 보겠다 싶어 대문을 서성거렸다.

송아지 금줄은 삼일째 걷는다면서 박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대문에서 금줄을 걷고있다
송아지 금줄은 삼일째 걷는다면서 박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대문에서 금줄을 걷고있다 ⓒ 서정일
"우리 송아지 좀 찍어주쇼."

박할아버지는 금줄 걷는 모습을 찍겠다는 욕심이 앞선 기자의 손을 다짜고짜 잡아끌고 외양간으로 앞장선다. 부정 탄다는 얘기도 옛말인 듯 카메라에 담아 달라 부탁하는 모습에서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우면 사진에 담아놓고 싶어 하실까?'하는 생각과 함께 송아지에 대한 박할아버지의 깊은 애정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

그리고 연신 자랑이다. 건강하게 태어났다느니 어미 소가 그동안 일곱 번의 새끼를 낳았는데 한 번만 수컷이고 나머지 모두가 암컷이었다느니 어미 소도 최고요, 태어난 송아지도 최고라고 한다. 비록 짐승이지만 생명의 탄생은 그런가보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덩달아 신나고 기뻐하는 경사 중에 경사다.

앵글 속에 잡힌 갓 태어난 송아지는 세상의 빛과 공기를 삼일째 맞이하는 모습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젓하고 늠름했다. 카메라 앞에서 몸에 묻은 먼지를 떨고 오물오물 입을 놀리는 모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송아지야 네 부탁대로 사진 예쁘게 찍었으니 너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덧붙이는 글 | 낙안읍성 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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