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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늘 마음속에 두고 있는 생각은 낙안읍성에 관해 자료를 수집하고 남겨놓는일, 오늘도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서 하나 하나 정리하고 있다.
그가 늘 마음속에 두고 있는 생각은 낙안읍성에 관해 자료를 수집하고 남겨놓는일, 오늘도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서 하나 하나 정리하고 있다. ⓒ 서정일
이제야 펜을 든다. 그리고 글 하나를 남기며 낙안향토지의 저자 송갑득 선생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낙안읍성을 연재하기 시작하던 지난 2004년 12월말 기초자료 조사를 위해 방문한 전라남도 도청에서 책 한 권을 받아들면서 알게 된 이름석자가 바로 송갑득.

송갑득(60)선생. 낙안면 동내리 낙안읍성태생으로 군 생활을 제외하고 한 번도 낙안읍성 밖을 떠나 본적이 없는 낙안읍성 사람이다. 입담이 구성지기 때문인지 구석구석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인지 그가 들려주는 낙안읍성의 얘기는 마르지 않는 큰 샘처럼 늘 새로웠고 신신한 것들이었다.

그가 하는 얘기는 보탬이 없고 빼는 일이 없다. 그가 하는 얘기는 나눔이 있고 깊이의 더함이 있다. 당산나무 아래에 앉아 들으면 구수한 보리차 마냥 시원하고 초가지붕 아래서 들으면 구운 감자마냥 고소했던 그와의 만남 7개월.

제대로 된 자료 하나 찾기 힘들던 시절부터 홀로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하나 하나 모아두었던 자료는 어느새 책으로 엮어져 나와 사람들이 낙안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제대로 된 자료 하나 찾기 힘들던 시절부터 홀로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하나 하나 모아두었던 자료는 어느새 책으로 엮어져 나와 사람들이 낙안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 서정일
7월 27일은 그의 공직생활 마지막 날이다. 낙안읍성에서 청원경찰직으로 관리사무소에서 16년간 근무했지만 들어올 때가 엊그제 같다고 말하며 세월의 무상함에 잠시 머뭇거린다. 낙안읍성내 동내리 마을의 이장으로 민속마을이 지정될 때 마을일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던 그가 청원경찰직을 맡게 된 것은 낙안읍성을 위해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자 하는 생각 때문.

그리고 시작한 관리사무소의 일은 밀려드는 관람객들 뒷바라지에 눈코 뜰 새 없게 된다. 민속마을로 지정된 후의 낙안읍성은 어제의 조용한 시골마을이 아니었다. 아침이면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와 성문을 통과한 관람객들은 구석구석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쓰레기 줍는 사소한 일에서 부터 관람객을 안내하고 뒷바라지를 하며 귀빈을 안내하고 영접하는 일까지 그리고 마을주민들의 교육까지 그의 공직생활 16년 일상생활은 늘 분주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음 구석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것은 낙안읍성에 관한 제대로 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초기, 안내서 없냐는 관람객의 말에 그가 손으로 쓰고 복사해서 나눠주던 자료는 이제는 잘 인쇄된 팸플릿이 되어 매표소에 비치되었고 그때부터 동네 어른을 찾아다니며 긴 시간 수집했던 자료는 어엿하게 '낙안읍성'이라는 이름으로 '낙안향토지'라는 이름으로 책으로 발간되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애정이 없이는 쉽게 할 수 없는 일들.

낙안읍성내 동내리 마을에 살고 있는 송갑득씨, 하지만 4만여평 낙안읍성은 그의 집이며 마당이다. 사소하게 보이지만 그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청소부터 시작하는 건 이제는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일이다.
낙안읍성내 동내리 마을에 살고 있는 송갑득씨, 하지만 4만여평 낙안읍성은 그의 집이며 마당이다. 사소하게 보이지만 그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청소부터 시작하는 건 이제는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일이다. ⓒ 서정일
"낙안읍성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고향이기에 정년퇴직했다고 떠날 리는 만무하지만 이곳이 고향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애정을 쏟고 청춘을 바친 곳이 낙안읍성이다. 이번에 또다시 낙안에 관한 향토지를 만들면서 그가 편집일 을 맡은 건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수집하고 쌓아온 것들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

하지만 왠지 그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이미 그가 16년간 앉아있던 의자는 차츰 이별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고 집처럼 드나들던 읍성관리소 문 앞에서 그가 쭈뼛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시간은 그에게 한발 뒤로 물러설 것을 강요하지만 주민들은 되래 이제부터 진정 낙안읍성을 위해 한발 앞에 나서길 부탁한다.

향토사학자 송갑득, 필자는 그를 이제야 당당하게 향토사학자라 부르고 싶다. 지금껏 읍성 관리사무소 청원경찰이라는 공직 때문에 그에게는 걸맞지만 부르지 못한 말, 향토사학자로 당당하게 다시 서서 낙안읍성에 깊은 샘이 되어 더더욱 큰일을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마을 주민이나 필자나 같은 생각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전국 곳곳에 송갑득선생과 같이 고장을 지키고 가꾸는 향토사학자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은 그들이 풀뿌리처럼 일궈놓은 것들이 소중하고 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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