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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거론한 국가인권위의 활동이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되고 논란이 불거진 사안이라면, 논란이 첨예하진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인권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 결정들도 적지 않다.

또한 개별 사건들로는 그 영향과 파장이 크지 않았지만, 국가인권위 결정이 누적되면서 인권 향상을 꾀한 결과를 만든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교도소 등 구금시설 관련 권고다. 이 밖에도 지난 4월에 결정한 사형제 폐지 권고, 공무원 채용시 키·몸무게 제한은 평등권 침해라는 의견 표명도 인권 개선에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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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진료 개인정보 제공은 사생활 침해
2002년 7월 30일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은 후 진료비 청구를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한 개인정보가 경찰청으로 넘어갔다. 경찰청은 이를 수시적성검사 통보 대상자 선정 자료로 사용했고, 결국 1만2800여명이 영문도 모른 채 검사 대상자로 통보받았다. 실제 검사까지 받은 이들은 뒤늦게 그 연유를 알고서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국가인권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신과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생각할 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는 것만으로 심각한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경찰청에 대해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이를 이용한 운전면허 수시적성검사를 중지할 것 등을 권고했고 경찰청은 이를 수용했다.

이 사건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개인정보 권리가 얼마나 무시돼 왔으며 국가기관의 행정편의주의가 초래한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 이화여대 금혼 학칙 개정
2003년 1월 22일


이화여대가 '기혼 여성은 공부할 수 없다'는 수십 년 된 학칙을 고치게 된 것은 입사지원서의 차별 항목처럼 국가인권위의 권고 없이 '조사 중 해결'된 경우다.

그동안 이화여대의 학칙은 입학할 수 있는 요건으로 미혼이어야 하며 재학 중에 결혼한 자를 총장이 제적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수십 년 된 이 학칙에 대한 문제제기는 한 대학생에 의해 이뤄졌다. 국가인권위는 합리적 근거 없이 '혼인'을 이유로 교육시설에서 특정인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경우 차별행위에 의한 평등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전문가 자문 및 국내외 사례조사 등을 벌였다.

처음에는 학칙 고수 입장을 견지하던 이화여대측은 자발적으로 문제의 규정을 고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학칙 개정 뒤 손자를 둔 할머니 중퇴생들이 수십 년 만에 캠퍼스에 돌아와 뒤늦게 학사모를 썼다. 이대는 학칙 개정에 그치지 않고 육아원까지 설치해 기혼 학생들의 학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 의견 제출
2003년 3월 11일


호주제가 폐지되는 대장정에서 국가인권위는 한 디딤돌을 놓았다.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2건의 호주제 관련 위헌법률심판사건에 대한 의견 제출을 통해 국가인권위는 "호주제는 인권침해적인 위헌 제도"라고 분명히 밝혔다. 즉 "호주제가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로 가족을 호주에게 또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고 가족간에 서열을 매겨 평등한 가족관계의 형성을 침해한다"고 결론지었다.

호주제를 놓고 찬반론이 격렬하게 맞서던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의 의견 표명이 호주제 폐지 운동에 힘을 보탰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지난 3월 초, 국회에서 민법 개정안이 통과돼 호주제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 기업 입사지원서 차별 항목 삭제
2003년 6월 26일

권고가 아닌 조사만으로도 자진 시정 노력을 이끌어 낸 경우다. 국가인권위는 2002년에 50명 이상을 채용한 38개 업체 민간대기업 34·공기업 4의 입사지원서를 통한 채용 차별 실태에 대해 2003년 1월부터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국가인권위는 해당 업체에 입사 지원서 기재 사항 중 개인능력이나 수행업무와 연관성이 적은 항목을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38개 업체들은 모두 자진해서 나이, 학력 등을 삭제하겠다고 알려왔다. 38개 업체의 평균 삭제 항목 수는 17.8개였다. 이 같은 차별 항목 자진 삭제는 이후 다른 기업으로 확산됐다.

2003년 6월 26일에는 2003년도에 채용을 실시한 62개 주요 업체 민간대기업 58·공기업 4의 입사지원서 기재 사항을 분석하고, 해당 업체에 개인능력이나 수행업무와 연관성이 적어 삭제해야 할 항목의 제출을 요청한 결과, 해당업체가 모두 삭제 항목을 통보해 왔으며, 평균 삭제 항목 수는 11.8개였다.

이로써 국가인권위의 입사지원서 차별적 항목 삭제 요청을 받아들여 자진 삭제한 업체는 모두 100개 업체로 늘었다. 특히 공기업의 호응이 컸다. 나이 및 학력 제한을 철폐한 이들 공기업의 지난해 가을 공채 때에는 그간 여러 제한 때문에 응시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수험생들이 대거 몰렸다.

▲ '테러방지법안'(수정안) 반대 의견 표명
2003년 10월 24일


국가인권위는 테러방지법 제정 작업에 대해 두 차례 제동을 걸었다. 먼저 국가정보원이 2001년 11월 28일 발의한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2002년 2월 20일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국정원은 수정안을 마련했지만 2003년 10월 24일 국가인권위는 이에 대해서도 다시 반대 의견을 국회에 표명했다. 국가인권위는 왜 반대하는가.

"현행법과 제도로 테러방지 대책이 가능하기 때문에 별도의 입법 추진은 그 근거가 부족하고, 특수부대 출동 요청 등의 위헌 소지와 그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우려, 정보기관의 권한 강화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될 소지가 많다는 점, 상당수 조항들에 헌법 및 국제인권법 위반 소지가 있다."

국가인권위는 미국 9·11사태 이후 세계적인 '대테러 전쟁' 분위기에서 테러를 명분으로 한 인권침해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러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테러방지법이 최근 다시 거론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가인권위는 이를 주시하고 있다.

▲ 인권위는 2004년 1월 사회보호법 폐지를 권고했다.
ⓒ 사진 김윤섭
▲ 사회보호법 폐지 권고
2004년 1월 13일


사회보호법상 보호감호제도는 이중 처벌, 또 수용된 이들에 대한 처우 등 집행 현실의 문제점으로 인해 제정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인권침해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피보호감호자 중 단순 재산 범죄자가 70~80%에 이른다는 점이나 출소자의 3년 이내 재범률이 지속적으로 약 40%를 나타냄은 '사회보호 및 범죄인의 재사회화'라는 본연의 목적 달성에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보호감호제도가 '제도'로서의 의미를 이미 상실했으며, 현 상황에서 보호감호제도의 개선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국가인권위의 결론은 이 같은 이유에서 내려진 것이다. 국회에서 사회보호법 폐지 및 치료감호제에 대해 활발히 입법 작업이 벌어지고 있으나 많은 사람의 바람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안 핵폐기장 건설 추진절차 행복추구권 등 침해
2004년 11월 9일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민의 의견수렴 절차 없이 핵폐기장 유치를 신청하고, 소속 공무원들을 원자력발전소에 견학시키면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사유서를 받는 등 강제적으로 실시해 지역민과 공무원의 인권을 침해했다."

국가인권위는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건설사업'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관계기관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등을 권고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국책사업을 추진해 온 일반적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 적잖은 의미가 있다.

지역주민의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고 사업추진 과정에서도 지역주민과 마찰 없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 신원조사 위헌적 요소 개선해야
2005년 2월 14일


신원조사는 해외여행이나 공무원 채용 때 실시되는 제도다. 그러나 법률적 근거 없이 국민의 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는 불만이 많았고 국가인권위에 이 같은 내용의 진정이 접수됐다.

국가인권위는 신원조사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고, 국가안전 보장 등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신원조사를 실시하도록 조사 대상자를 한정하라고 권고했다. 또 조사 항목 또한 조사의 목적을 위해 일반적 예측 및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조정하고 배후사상관계 등 연좌제 금지에 위반되는 항목은 삭제하도록 했다. 국정원은 국가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신원조사 항목 가운데 '본인 및 배후 사상 관계'와 원적, 종교 같은 항목을 삭제하고 조사 대상도 축소하는 내용으로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공무원 직급에 따른 정년 차등은 차별
2005년 3월 23일


'5급 이상 일반직 공무원의 정년은 60세, 그러나 6급 이하의 정년은 57세.'

이렇게 차등 규정된 것은 직급에 따른 차별이 아닌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관련 부처는 5급 이상과 6급 이하 간의 업무의 차별성을 내세웠다. "5급 이상 공무원은 주로 정책적 업무 및 관리감독 등 사고와 판단을 요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5급으로 승진할 때는 다른 직급에 비해 엄격한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일단 관리직 공무원이 된 경우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 등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국가인권위가 파악한 실태는 그렇지 않았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중앙부처에서 5급 공무원은 정책 및 관리감독 업무가 아니라 실무를 담당하고, 부처에 따라서는 5급과 6급이 사고와 판단을 요하는 같은 종류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할 때 소요되는 연한도 기관에 따라 최고 8년 3개월이나 차이가 났다. 근무지가 어디냐에 따라 직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가인권위는 이에 따라 "이같이 불분명한 근거로 책정된 직급별 정년 차별을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실업 악화 및 민간기업과의 형평성, 조직 신진대사를 이유로 정년 단일화에 반대하는 의견도 감안했다. 이 같은 주장은 정년 단일화가 실제로는 6급 이하의 정년 연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정년연장이 청년실업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그에 반하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어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국가인권위는 또 만약 공무원의 정년을 통해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이는 전체 공무원의 정년을 조정해야지 특정 직급 이하 공무원을 고용에서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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