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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사진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서, 때로는 마치 그 내용이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공선옥의 산문집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를 접하고서, 나는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손에 잡고 있었던 동안 내내, 그 속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지난날의 나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최근까지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공선옥이 겪어왔던 시절이 나의 그것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1963년 생으로 나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성장기의 경험은, 장소를 조금 달리할 뿐 우리 세대의 그것과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가 겪었던 지난 시절의 신산(辛酸)한 삶의 경험은, 실상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에 수록된 글들은, 진지한 관심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어려서부터 일기를 쓰면, 모아두는 법이 없이 어느 날인가 날을 잡아 태워 없애는 습성'을 지녔다는 공선옥이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을 '차마 없애버리지 못하고 책으로까지 엮어'낸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여기에 수록된 글들이 사실은 '지독하고 모질은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생명의 본능으로' 쓴 것이기에, 짐짓 '부끄럽고 환멸스럽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은이의 생각일 뿐, 오히려 나를 포함한 이 책의 독자들은 그녀의 생각들을 접하면서 주변의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을 깊이 자책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한 것은, 지은이가 소외된 이웃들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들과 함께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지은이와 똑같이 '지독하고 모진'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속에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각자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는 '내 이웃의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그저 안락한 나의 생활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사소한 일상으로부터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현대사를, 몸으로 살아왔던 경험이 지은이의 글 속에 절절이 녹아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50여 편의 글을 3개의 주제로 나누어 수록하였지만, 모든 글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은이의 깊은 애정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책의 앞부분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지은이는 '나 자신을 한번도 사랑해 보지 않고 살아왔'으며, '내가 살았던 시절들을 단 한번도 사랑해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한 노동자가 분신해야만 하는 노동 조건과 '그의 영전에 조문을 하는 국회의원이 한 사람이 없'는 현실에 분노하면서, '이런 세상에다 대고 아름다운 노래 따위 나는 부를 수가 없다'고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지은이의 시각은 벼랑 끝에 내던져진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뤄진 문제들이 대체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포착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우리 사회의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애정의 끈을 결코 놓지 않고 있다는 증표인 것이다.

이제 지은이의 시선에 포착된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차근차근 들여다보기로 하자. 어쩌면 언론의 단신란에 겨우 보일 듯 말 듯한 위치에 놓여져 있어, 금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법한 사건들에 대해 지은이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예컨대 먹고살기 위해서 아이를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어느 아버지의 삶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한다. 따져 보면 우리가 애써 시선을 주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은 언제나 그곳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존재하고 있다.

지은이는 그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맛있는 사과를 혼자 먹으면 단순히 사과일 뿐이지만 지금 배고픈 자에게 나누어주면 사과가 사랑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지은이와 같은 세대들은 대체로 그 시절을 그렇게 힘겹게 살아왔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느 농촌이나 조그만 소도시에 살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가진 땅덩이 하나 없이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시절을 가난에 쫓겨 살아야 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하루 한 끼쯤 굶는 것은 다반사였고, 저녁마다 밀가루 음식으로 연명해야 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당시의 어려웠던 시절을 추억으로 생각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남들은 다 별식으로 먹는다는 수제비라는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나의 머리로는 당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지만, 아직 몸으로는 당시의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배고픈 상태는 잘 견뎌도 배부른 상태는 견디지를 못한다'고 말하는 지은이의 심정을 어느 정도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아직도 행복하게 기억하고 있다. 비록 가난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그 시절의 삶이 결코 후회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가난'과 '빈곤'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은 어느 정도 숨 쉴 구멍이라도 있지만, 빈곤은 도대체 그 어떤 대책도 없는, 가난은 가난해도 어딘가 따스한 기운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빈곤은 그야말로 삭막 자체인 것 같은' 것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그러면서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 인정을 나누며 살아가던 이웃들과의 옛 생활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마도 지난 날의 지은이가 겪었던 모습은 '가난'의 경험이었지만, 최근의 도시 빈민들에게는 이미 '가난'이 아닌 '빈곤'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의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절대 빈곤'의 모습은, 어느덧 사회의 구조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간혹 언론 등에서 갈 곳조차 마련해 주지 않고 진행되는 철거에 맞서 극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철거민들의 모습을 접하면서, 나 역시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적지 않았다. 그야말로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서 벌여야 하는 사투(死鬪)를 바라보면서, 사회 일각에서는 그들의 잘못을 나무라기도 한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 그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처럼 쉽게 말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서 전라도의 어느 수몰 예정지를 찾았을 때, 돈이 없어 이사를 못하는 농민을 만나서 가슴 속에 시린 바람만을 안고 돌아섰을 지은이의 심정이 느껴진다. 친환경적인 삶이 좋은 것은 알지만, '절대 빈곤'의 삶 속에서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할 수 없는 이웃들의 문제를 가슴 아프게 떠올린다.

또한 기독교계 학교에서 '예배 선택권'을 요구하며 단식을 벌였던 한 고교생의 이야기,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당 학교와 기성 세대의 반응을 보면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떠올리기도 한다. 미군 장갑차에 무참히 희생당한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을 기리는 촛불 집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펼치는 학생들을 통해서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출산 휴가가 끝나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후배의 사례를 통해서,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깊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낯선 이라크 땅에서 엉뚱한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 죽어간 한 젊은이를 생각하며 펼쳐 놓는 절절한 심정을 확인하면서, 한때 그렇게 분노했던 사안에 대해 어느덧 무심해져 있는 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그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장애를 가졌던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차라리 죽은 것이 낫다'고 무심히 외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접하면서, 그것이 부모들에게는 비수와도 같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죽음에 대한 예우'를 지키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불법 체류자라는 약점을 쥐고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금조차도 제때 지불하지 않는 사용자들의 횡포를 고발하기도 한다. 지은이가 만난 미얀마 출신의 어느 이주 노동자는, 미얀마가 민주화되어 다시 '버마'가 되는 날 고국에 돌아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고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면서, 그는 자신이 버는 돈을 그대로 고국의 민주화 단체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1970∼80년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며 고단한 삶을 견뎠을 당시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애정을 안고 바라보는 지은이는, 비정규직법안과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정부와 가진 자들의 대응을 보면서 '본질을 망각한 사회'라고 질책하기도 한다. 지은이가 질책해 마지 않는 '본질을 망각한' 현상들이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지난 5월 초에 원정 출산자를 비롯하여 해외에 단기 체류하는 동안 출생해 외국 국적을 취득한 이중국적자들이 앞으로 병역 의무를 마치기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한 국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런데 법이 발효되는 6월 이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이들의 신청이 무더기로 접수되고 있다고 한다. 공직자를 비롯하여 교육계 인사를 포함한, 이른바 우리 사회의 일부 '기득권 계층'이 벌이는 어이없는 행태인 것이다.

이처럼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그것을 사회적인 문제로 환치시켜 표현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아이가 쓴 글을 읽으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지은이는 우리 사회의 '작고 여린 것들을 위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춘천에 사는 지은이가 버스를 타고, 도 경계를 넘어 무작정 종점까지 가서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마음속 화롯불과도 같은 따스한 존재들'로 여기며, 겨울 내내 다시 그곳을 방문하여 인연을 잇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이 되는 일들을 목도하면서, 어쩌면 아이에게는 별 것 아닌 문제가 부모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큰 일이 되어 버리는 현실을 조용히 털어놓기도 한다.

지은이의 글을 읽으면서 옛날 우리의 부모들과는 달리, 요즘의 젊은 부모들은 오히려 아이에게 과잉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닐지 반문해 볼 일이다.

소설가인 지은이는 '소설을 쓸 때만 소설가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어느 일본 작가처럼 자신도 '24시간 내내 소설가'로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작가인 지은이는 '삶과 예술을 논하기에는 사람들은 너무나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이란 '그저 마음으로만 외치는 구호는 아닌지' 반문하며, '예술이 진정 우리네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전사를 자처했던 작고한 시인 김남주를 '천상 시인'이라고 평가하고, 결국 치열한 삶 속에서 만들어진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지은이의 '독서 일기'라고 명명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여름의 폭염 속에서도 이태준의 수필을 접하면서 보내는 여유로운 자세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오랫동안 옥살이를 한 서준식과의 만남과 그의 책 <나의 주장>에 대한 단상들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해방 전후에 남겼던 일기를 책으로 엮어낸 역사학자 김성칠 선생의 <역사앞에서>를 읽고, '지순하고 맑은 영혼들이 역사의 신새벽에 비명횡사해야 했던' 안타까운 우리의 현대사를 되새기기도 한다. 이밖에도 중국 작가인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 그리고 이오덕 선생의 <교육일기> 등을 읽고 그 느낌을 적은 글들에서도 문학을 사랑하는 지은이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제일 마지막에 평안도 출신 시인인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이라는 시를 지은이 자신의 삶과 겹쳐서 읽어내는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덧붙여 책의 서두에 수록된 손석춘의 '추천사'는 공선옥의 글을 읽는 지침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첨언해 두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공선옥, 당대, 2005)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당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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