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책 겉그림입니다.
이 책 겉그림입니다. ⓒ 리브로
그 집의 그 많은 식구들을
다 알지는 못해도
거의 식구, 오리 식구들을 잘 알지.
거기 가면 못물에 떠다니는
거위와 오리가
하늘나라에서 노는 듯해
나도 하늘나라에서 놀게 된다.
거위 세 마리가 얼음을 타듯
물 위를 미끄러져 가면
오리 여섯 마리가 그 뒤를 쪼르르
따라 미끄러져 가고
그러면 나도 오리 뒤를 따라 오리가 되어
쪼즈르 미끄러져 가지.
(48쪽, 염소1)

이 시를 읽어 보면 저수지 아래 못물을 따라 쪼르르 줄지어 따라가는 오리 떼를 떠올릴 수 있다. 또 저수지 둑길 아래에 들풀을 뜯어 먹고 있는 염소 떼들도 생각할 수 있다. 그 염소 몇 마리가 저수지 아래 못물자리까지 내려오면 또 오리 떼들은 저만치 멀리 달아나는, 그런 재미난 모습들도 떠올릴 수 있다. 오로지 자연 들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그런 모습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시골에서 이오덕 선생님은 마지막 생을 사셨다. 뱀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수풀과 덤불을 헤집고 들어가 기어코 두 손으로 산딸기를 한 움큼 따서 나오던 그 천진난만한 모습.

동네 앞 큰 앵두나무에서 떨어진 몰랑몰랑한 앵두 몇 개를 주워들고 티끌이 묻었는지 벌레가 묻었는지 살피면서 한 입에 쏙 넣어 삼키던 그 새콤달콤한 모습. 뒷산 기슭에 떨어진 홍시 하나를 집어 들어 흙먼지를 털어내고 살포시 껍질을 발라내며 한 입 두 입 쏙 빨아 먹던 그 달짝지근한 모습. 가히 어릴 적 티 없이 맑은 모습들인데, 이오덕 선생님은 그런 삶을 그때까지도 사셨다.

하지만 그 시골 들판에선 이제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자연 들풀과 산새소리를 들으며 커야 할 아이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렸단다. 흙 속에서 나뒹굴고 자연이 내 놓은 들나물들도 마음껏 먹고 쑥쑥 자라야 하는 아이들을 이젠 찾아 볼 수가 없단다. 오로지 방 속에 틀어박혀 있거나 아니면 그 지독한 경쟁 사회 속에 내 몰려 있단다. 그 속에서 숨조차 고르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들인가.

이 땅에 아이들은 사라졌단다.
아이들은 죄다 잡혀 가고 끌려가고
어른들에 납치되어 방 안에 갇혀 있단다.
괴상한 공부를 한다고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공부를 한다고
이 좋은 햇빛, 이 좋은 바람,
뻐꾸기 노래 비둘기 장단
꾀꼬리 꾀꼬르릉 소리 한 번 듣지도 못하고
시원한 하늘 한번 쳐다보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굴 찡그리며 온갖 잡동사니를 읽고 쓰고 외우느라고
신경질이 되어 다투면서 아귀가 되고
제 동무를 왕따로 돌려 짓밟아 뭉개고
몸도 마음도 뒤틀려 무섭게 되어 버렸단다.
(77쪽, 넝쿨딸기2)


이 시를 읽자니 입시지옥 속에 살아가는 어린 아이들이 떠오른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짓밟아야 하는, 이 몹쓸 경쟁 사회 속에 내 몰린 아이들이 그저 불쌍하기만 하다. 고등학생들도 중학생들도 그리고 이제는 초등학생들까지도 너나나나 자살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모든 산, 모든 골짜기를 죽이고
모든 목숨의 숨통을 꽉 조이는
이 무서운 쓰레기.
저 아름다운 새소리도 아직도 피고 지는 산꽃들도
죄다 사라지고
천지가 어두운 적막강산이 되어
드디어 지구를 폐기처분하게 될 날이
시시각각 다가온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도 고든박골로 걸어가는 산길에서
떨쳐 버리지 못한다.
(121쪽, 쓰레기 강산)


자연까지 다 썩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쓰레기 강산이란 말이 헛말이 아니다. 시골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온통 쓰레기 천지요, 농약하고 버린 빈병 천지다. 당연히 저수지 물도 썩고 있다. 산은 산대로 죽어가고 있고, 논은 논대로, 밭은 밭대로 다 병들어 있다. 삼천리금수강산이 병든 강산이 됐다.

왜 일까? 사람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온통 죽고 죽이는 살벌한 세상이니 자연도 남아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사람들 몫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버젓이 저지르고 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들인가.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은 마지막 시에서 '노아의 방주'를 만들라고 했던 것일까. 아무도 살지 않는 더 깊은 산골짜기에서 감자와 고구마와 옥수수 그리고 산나물과 산딸기를 마음껏 따 먹으며 마음껏 숨 고르며 살 수 있는 그런 옹글진 방주….

어쩌면 선생님은 그 '옹글진 방주'를 만들기 위해 한 평생을 살아오셨다. 사람이 자연과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지, 자연 들풀 속에서 자라가는 아이들은 또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그 참된 방주를 힘껏 지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방주는 이제 참된 시가 되어, 우리 곁에 고이고이 살아 있는 것이리라.

고든박골 가는 길

이오덕 지음, 실천문학사(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