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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엄마가 위 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한 날입니다. 엄마는 여러 날째 속이 답답하다, 소화가 안 된다, 하시면서 제 속을 태우셨습니다. 밥도 못 드시고 죽만 겨우겨우 삼키시더니 먼저 위 내시경 검사를 해보자고 하십니다.

하지만 엄마가 서울에 올라온 그 날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처음엔 동생이 입원한 병실에서 환자 보호자들과 밥을 나눠 먹기도 하고, 제가 집에서 싸간 밥과 반찬을 조금이나마 드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수술을 한 날부터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무슨 밥맛이 있겠습니까만, 끼니를 거르는 엄마를 보고 있는 제 속도 타들어가긴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이십대 중반인 동생이 난소암 판정을 받은 데다 높은 열 때문에 수술이 연기되면서 우리 식구들은 모두 진이 빠져 버렸습니다. 그나마 억지로 동생 앞에서 밝은 척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었는데 정작 수술 날 엄마의 가슴은 완전히 내려앉아 버린 것입니다.

두 시간을 예상하고 아침 7시 30분 수술실로 들어간 동생은 10시가 지나도 12시, 2시, 4시가 지나도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술실 밖 대기실에서 한 끼도 먹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던 우리에게 의사 선생님은, 원 발병은 위암이라면서 위 절제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자궁을 들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에게는 큰 충격이었는데, 의사선생님의 갑작스런 말씀에 엄마는 병원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습니다. 조금은 서럽게 우십니다. 내가 보호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엄마는 참으로 작아져 버렸습니다.

"엄마, 마음 강하게 먹어. 지금 당장 죽는 것도 아니잖아. 수술하면 회복은 된다잖아. 그 다음이 더 중요해."

저는 위로가 되지도 않을 말을 엄마에게 건넸습니다.

엄마는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더 드시지 못하면서 수술실 입구만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수술 끝나고 보자던 산부인과 병동 간호사의 말과는 달리 동생은 수술실 들어간 지 아홉시간여 만에 수술실에서 나와 우리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중환자실로 들어갔습니다.

6시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 되어 엄마가 먼저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엄마에게 면회시간 20분을 다 쓰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채 1분도 되지 않아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동생의 온 몸은 주사 바늘과 호스로 뒤덮였습니다. 참으로 힘들어 보였습니다. 입에 물 묻힌 거즈를 붙이고 있던 동생은 자기가 왜 중환자실에 누워 있냐고 겁먹은 눈빛으로 묻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 옆에 보호자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동생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저 역시 엄마처럼 "내일 다시 오마"라는 말밖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부터였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동생 때문에 엄마와 제가 있을 곳이 없어지자 그 날은 집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밥은 못 먹을 거 같아 밥으로 죽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엄마는 소화가 안 된다고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동생이 준중환자실로 옮기고 그 옆에서 하루 종일 계시는 엄마가 안쓰러워 제대로 된 밥이라도 드시게 하고 싶은데, 엄마는 죽이나 먹을란다, 그렇게만 말씀하십니다. 죽집에서 사 간 죽도 한 그릇 다 드시지도 못하고, 그만 먹을란다고 하십니다.

막내딸이 자기가 무슨 병인지 모르는 채 침대에 누워 호스를 여기저기 끼우고 물도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있으니 엄마 속에 어찌 밥이 들어가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저는 더 속이 상합니다.

저렇게 며칠째 속이 답답하다 하시며 밥도 못 드시는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 겁니다. '혹시 엄마도 위암 아닐까?' 이런 생각이 계속 주책 맞게 떠오르는 겁니다. 속이 갑갑하다는 엄마의 등을 두드리면서도 제 가슴은 먹먹해지기만 합니다.

드디어 엄마가 위 내시경을 받기로 한 날입니다. 내과에 예약을 해 놓고 여전히 하루종일 물 한 모금 드시지 않은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마음속에 불안감이 떠오릅니다. 그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짓습니다. 2,3분이면 된다는 검사는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것 같던지요. '제발 우리 엄마에게 아무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하고 빌어봅니다. 제발이요, 제발.

검사 후 안정을 취하고 있는 엄마를 보니 왜 그렇게 나이 들어보이는지요. 동생 병 간호한 일주일 사이에 십년은 더 늙은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정말로 다행히 엄마의 위는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정말로 다행이란 생각만 듭니다. 일주일 만에 병원 밖으로 나온 엄마는 미장원에 들러 머리를 손질했습니다. 그리고는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렇게도 소화가 안 되고 답답하다고 하시던 엄마는 그 날만은 오랜만에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셨습니다.

된장찌개도 맛있게 드시고, 갈치도 한 토막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도감이 돕니다.

내일은 드디어 동생이 준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는 날입니다. 엄마가 전화를 해서는 내일은 9시까지 병원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동생의 병이 다 나은 것도 아닌데 우리에겐 일반 병실로 옮기는 게 참 꿈만 같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누워 있던 동생이 이젠 일반 병실로 갈 만큼 적어도 겉으로는 회복되고 있다는 거니까요. 내일은 일찍 일어나 엄마가 드실 밥과 반찬을 싸서 병원으로 가야겠습니다.

엄마, 우리 밥 많이 먹고 힘내서, 동생 병 간호 열심히 하자.

덧붙이는 글 |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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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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