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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생에게는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가 있습니다. 그 배우는 지금 <뱃보이>라는 뮤지컬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는데, 뱃보이커버(뱃보이라는 주인공을 대신하여 그 역을 연기하는 사람)이기도 하답니다.

그런데 그 배우가 지난 금요일 처음으로 뱃보이 역을 연기하게 되었답니다. 동생은 신이 났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니, 얼마나 기쁠까요? 동생은 며칠째 공연날만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공연날, 밤 12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그 배우가 얼마나 연기를 잘 했는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나에게도, 또 좋은 기억을 가슴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온 동생에게도 2005년 10월 21일은 저물어 갔습니다. 그렇게 남은 생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하루를 흘려보낸 것입니다.

동생이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동생 옆에서 동생을 지켜보다 보면, 가끔 아찔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던 마음이, 동생이 지금 병원에 무엇 때문에 입원해 있나를 생각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버립니다. 그리곤 답답해져만 옵니다.

어쩌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곤히 자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면서, 가장 힘든 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그 힘든 과정을 견디어 내고 있는 동생을 기특해하면서, 가만 마음을 추슬러 봅니다.

▲ 병원에서 치료중인 동생
ⓒ 이갑순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아침에 일하러 나간 아버지가, 혹은 남편이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가 교통사고일지, 재해일지 혹은 심장마비일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침 일찍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 아이들이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가 교통사고일지, 화재일지 혹은 그냥 사고일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어쩌면 여기저기 숨어있는 죽음들을 이리저리 피해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까스로 그 모든 위험들을 피했다고 해도 결국 죽는 건 마찬가지지만 말입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누가 먼저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나 죽는다고 해서,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른다 해서 그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내일 죽을지도 몰라, 라고 말하며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이불 둘러쓰고 괴로워하지도 않습니다. 내일은 안 죽을거야, 라는 희망을 더 크게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희망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나갑니다. 그러나 이 희망은 따지고 보면 동생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동생의 상황은 나와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이들과도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나의 시간들을 살아가듯이, 동생도 동생의 시간들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굳이 죽음이라는 단어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 10월 2일 청계산, 문화강연 뒤의 동생
ⓒ 이갑순
오늘은 다시 병원을 가는 날입니다. 병원에 가는 것은 동생에게도 그렇고, 나에게도 그렇고 참 마음이 힘든 날입니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지, 의사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지 괜한 걱정들을 미리 하게 되니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병원에 들어가는 순간, 환자가 되어야 하고,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야만 하는 상황, 동생이 사실은 아픈 사람이라는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게 싫은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도 동생과 내 삶의 일부이겠죠. 남들이 점심을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그 순간이 2005년 10월의 어느 하루이듯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께 검사 결과를 듣는 것이 동생과 나의 10월의 어느 하루일 것입니다.

어쩌면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삶은 그렇게 어쩌면 똑같은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흘러가고 있으니깐요. 누군가가 청계천을 구경하러 가듯, 동생도 청계천에 사진 찍으러 가고, 누군가가 책을 읽고 TV를 보듯 동생도 책을 주문하고, TV를 보면서 깔깔거리기도 합니다.

삶은 그렇게 똑같이 흘러갑니다. 굳이 동생의 삶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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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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