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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주취난동이 부른 참극

지난 16일 강릉경찰서는 집안 식구들에게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둘러 온 40살의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존속살인)로 14살의 여중생 이모양을 긴급체포했다.

피살된 아버지는 이날도 만취해, 병든 할아버지(74)를 괴롭히고 할머니(70)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이를 만류하는 딸 이양을 폭행했다. 문제는 이양의 대응이었다.

통상적인 청소년의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아버지의 폭력을 잠재운 것이다. 이양은 술에 취해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의 양손을 묶고 방바닥에 있던 넥타이로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하지만, 이양의 행동이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과 증거가 있다. 이양은 손이 묶인 후에도 난동을 부리는 아버지가 두려워 112신고를 해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는 점이다.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조부모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이양은 급기야 넥타이로 목을 조르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범행 후에도 이양은 도주하거나 범행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이양 아버지는 이미 숨져있었다. 여기까지가 사건 당일 발생한 상황이다.

이양의 행동은 과연 '살인'인가?

이 상황만으로 판단한다면 이양의 행동이 자신과 조부모의 생명을 지키려는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난동을 억제하기 위한 폭력사용 끝에 의도하지 않은 사망의 결과를 야기한 '폭행치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경찰은 이양에게서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가 평소에도 술에 취하면 집 기물을 부수고 때리는 등 난동을 피워 아버지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 아버지를 '죽이겠다'라는 적극적 의지는 없더라도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소위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그 사실관계는 누구보다 현장에서 수사를 한 경찰이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한 법률적 검토는 검찰과 법원의 몫이다. 최종적으로 이양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판사의 고유영역이다.

지속된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참작한다면

경찰 조사결과 4년 전 이혼한 이양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함께 살고 있는 이양과 조부모를 때리고 괴롭히는 등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둘러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미 1980년대부터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가정폭력 피해에 오랫동안 노출된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살해하거나 공격하는 일이 빈발하면서 사회문제화 되었고 일부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매 맞는 여성 증후군(battered women syndrome)'이라고 부르며 이들의 살인 등 공격행동에 형사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가정폭력에 오래 시달린 여성들은 그 후유증으로 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그 결과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성계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정신병자 취급한다'며 반발하면서 "장기간의 가정폭력 피해가 있게 되면 설사 그 순간 폭력이 행해지지 않더라도 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경찰이나 외부인이 결코 자신을 돕지 못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기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공격행위는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외국의 사법부에서는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 고의적인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나 '폭행치사'죄를 적용하면서 정상을 참작해 형의 집행을 유예하거나 경한 형량을 선고해 "형식적으로는 유죄선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방면의 효과를 내는" 소위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판결로 대응해 오고 있다.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살인'과는 구분해야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마다 분명한 차이가 발견된다. 특히, 지난번 발생한 모녀의 '택시기사 아버지 토막살해사건'의 경우 비록 오래된 가정폭력이 원인이 되긴 했지만 그 대응이 분명하게 고의성을 띤 살인행위였으며 치밀한 사전준비에 의해 행해졌다.

이번 강릉 여중생 이양 사건은 다르다. 다분히 우발적이며 즉흥적이고 계획이나 은폐의도가 전혀 없었다. 또 다른 점은 피의자의 나이다. 우리 형법은 만 14세 미만의 어린이는 어떤 죄를 짓더라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12세와 13세 어린이에 대해서만 '보호관찰', '사회봉사명령' 등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그만큼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 나이에 행한 행동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처벌이 아닌 개선과 교화를 위한 '보호'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양은 이제 갓 만 14세가 되었다.

비록 엄격한 법의 잣대로만 판단한다면 형사처벌이 가능한 나이지만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실질적인 형사미성년자'라고 할 수 있다. 부디 우리 형사절차가 '차디찬 법률기계'가 아닌 '사람의 향기와 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제도라는 증거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 '가정내 폭력'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보다 적극적이고 분명한 태도로 개입하게 되길 바란다.

여중생이 가정폭력 아버지 목졸라 살해

(강릉=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여중생이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둘러 온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강릉경찰서는 16일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한 혐의(존속살인)로 이모(14.여.중3년)양을 긴급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양은 16일 오전 3시께 강릉시 모 연립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40)가 술에 취해 병환으로 누워있는 할아버지(74)를 괴롭히고 할머니(70)에게는 욕설을 한데 이어 이를 만류하는 자신을 폭행하자 양손을 묶고 방바닥에 있던 넥타이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다.

이양은 경찰에서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가 평소에도 술에 취하면 집 기물을 부수고 때리는 등 난동을 피워 아버지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이날도 평소처럼 심한 난동을 피울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결과 4년 전 이혼한 숨진 이양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함께 살고 있는 이양과 조부모를 때리고 괴롭히는 등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둘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양은 이날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아버지를 끈으로 묶고 제지하는 과정에서 112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도착했을 때 이양의 아버지는 이미 숨져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jlee@yna.co.kr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덧붙이는 글 | 표창원 기자는 경찰대학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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